Act.7 위험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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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7 위험한 거래

  Act.7 위험한 거래
 
  겟슈는 모처럼 만에 이승으로 내려왔다.
  한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냈던 곳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그가 살았던 곳은 이미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 있고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지만, 그 터만은 그에게 벅찬 설레임을 주고 있었다.
 
  저승사자로 일하고 있을 때에도 시간을 만들어 가끔 이곳에 오곤 했었다.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을 지켜보는 것이 그에게 있어 작은 행복일 때가 있었다. 그들이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그 역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했었다.
 
  한 때는 영혼인 된 자신을 저주하며 하루빨리 육체를 얻어 사람이 되고 싶어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저승의 생활에 익숙해져 갈 무렵, 그는 자신의 직속 상관이었던 상급 저승사자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고, 염라와 상담을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계속 저승에 머물러 있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저승사자들은 자신의 임기를 마치고 하루 빨리 육체를 얻어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어하는데 자네는 왜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겠다는 건지 알 수 없군. 이유가 뭔가?”
 
  “저도 다른 영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 환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저승사자가 되어 죽은 영혼들을 데려 올 때 저는 인간 생활을 내려보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습니다. 인간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한심한 지를. 그들은 같은 인간을 잔인하게 죽이기도 하고 짓밟기도 합니다.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연인을 괴롭히기도 하고, 우정이란 명목으로 살인도 합니다. 인간들이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했습니다. 그들처럼 어리석고, 잔인하게 살다가 다시 죽는 것보다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습니다.”
 
  “자네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이승이나 저승이나 마음먹은 데로 되는 일은 없다네. 게다가 저승이 이승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는 일이고. 알다시피 신계(神界)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올라갈 직위도 제한이 있어. 고작해야 상급 저승사자가 최고의 직위겠지. 상급 저승사자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은 그리 추천하고픈 일은 아니야. 한순간의 감정을 가지고 평생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는 일이지. 며칠 더 생각해 보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게. 며칠 뒤에도 같은 생각이라면 자네를 형벌로서가 아니고 직업으로서 저승사자의 지위를 다시 내려주겠네.”
 
  “고맙습니다.”
  그 후로 그는 그에게 주어졌던 저승사자의 유효기간 동안 영혼을 데려오는 일을 했다. 유효기간이 끝나자 그는 중급 저승사자로 진급을 했고, 몇 년 뒤에 상급 저승사자로 승진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흐른 어느 날, 염라가 그를 보자고 했다.
 
  “자네는 정말 내 마음에 드는군. 어떤가 내 옆에서 내 일을 도와주기 않겠나?”
 
  단도직입적인 염라의 말에 그는 기뻤다.
  염라의 옆에서 열성적으로 염라의 일을 도와준 덕분에 지금은 염라의 오른팔의 위치까지 승진이 되었다.
 
  저승사자의 일을 하면서도 가끔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충동이 있었기는 했지만 지금은 현재의 직위에 만족을 했고, 저승이 고향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저승의 일은 곧 그의 일이기도 했다.
 
  겟슈는 죽었을 당시의 고향의 하늘에서 너무 머물러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서둘러 엑스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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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지에서 벗어난 야산의 어느 한 곳에, 예전에는 사람이 살았음직한 집 한 채가 놓여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벽과 기와지붕이 다 허물어져 흉가처럼 변해있었다.
 
  겟슈는 흉가 안으로 들어가 이리 저리 둘러보았지만 여기저기 깨어진 벽돌의 흔적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약속시간은 이미 훨씬 지나 있었다.
 
  “약속 시간보다 늦었어, 겟슈.”
  겟슈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검은 가죽 잠바에 가죽 바지를 입고, 온 몸에는 쇠스랑으로 장식을 한 험상궂은 남자가 서 있었다. 겟슈는 마치 보기 싫은 녀석을 다시 봤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하, 그렇게 눈살을 찌푸릴 이유가 없지 않나, 겟슈.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하면 못 써요.”
 
  “언제나처럼 밥 맛 없는 녀석이로군.”
  엑스는 뭐가 좋은지 키득거리기만 했다.
  겟슈에게 있어서 엑스는 그의 업적에 최초로 빨간 줄을 그어 놓은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가 저승사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그의 눈을 피해 이승으로 도망쳤던 처음이자 마지막 영혼이었다. 야쿠자의 원조 격인 야마구찌 구미의 조직대장으로 있던 엑스의 영혼을 데려오는 것은 초보였던 그에게는 다소 벅찬 일이기도 했다. 그의 직속 상관이었던 중급 저승사자가 다른 사자와 함께 내려가라고 한 것을 그는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자만한 것이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적개심이 남달리 많았던 엑스의 영혼은 일반 다른 영혼과는 차이가 있었음을 겟슈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막상 영혼이 되어버린 엑스는 이승에서 품었던 적개심을 저승에 대한 적개심으로 전환했고, 저승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겟슈의 눈을 피해 이승으로 도망쳤다. 겟슈는 그를 쫓아 다시 이승으로 내려갔으나 엑스는 이미 흔적을 감추고 만 뒤였다. 그로 인해 겟슈는 생전 처음으로 저승의 처벌을 받았다. 육체가 없는 영혼에게 가해지는 정신적인 고통은 상상을 불허했다.
 
  그 일로 인해 엑스에 대한 적개심이 날로 커져만 갔다. 겟슈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아니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엑스를 잡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할 때, 자청하고 나선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였다.
  엑스는 어느새 이승에 떠돌고 있던 영혼들을 모아 조직화시켜 놓았던 것이다. 일명 집단 엑스라 불리는 그들의 조직은 순식간에 영역을 확장했고, 어디서 구했는지 저승사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겟슈를 포함한 수색대 전원은 집단 엑스에게 패하고 분노를 삭이며 다시 저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엑스에 대한 수색은 무기한 연기되었고, 겟슈는 엑스를 다시 잡기 위한 기회만을 틈틈이 노려왔다.
 
  그 사이에도 집단 엑스는,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이승으로 내려온 저승사자를 포획하거나 영혼들을 잡아가는 형식으로 점점 거대화되어, 이제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큰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겟슈가 염라의 신임을 얻어 상급 저승사자가 되었을 때, 저승을 위협하는 집단 엑스의 토벌을 명목으로 토벌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오히려 집단 엑스에게 상당량의 무기를 대어주는 역할밖에 되지 못했다.
 
  토벌대에게 지급되었던 영혼충격총이 고스란히 집단 엑스에게 넘어가 버리고 만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의 실력은 겟슈의 상상 이상이었다.
 
  울분을 참으며 토벌대를 재구성하려 할 때 염라가 와서 그를 말렸다.
 
  “겟슈, 자네 심정은 이해하지만 더 이상 토벌대 조직은 삼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이유가 뭔가요?”
  “더 이상의 토벌대 조직은 그들에게 힘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와 무기 조달의 역할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생각이네. 알다시피 저승의 군대조직은 미미하네. 아예 형편없다고 하는 편이 옳겠지. 전래적으로 저승에서는 이승처럼 전쟁이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군대의 필요성이 언제나 배제되었지. 고작해야 도망간 영혼들을 다시 잡아오는 정도의 힘뿐이었어. 그런데 집단 엑스의 두목 격인 엑스는 이승에서의 전적이 무척이나 화려하네. 특공 부대에서 군인의 강인함을 익혔고, 야마구찌 구미라는 일본 최고의 범죄조직에서 사람들을 다루는 기술을 배운 놈이야. 그런 놈이 이승에서 떠돌던 영혼들을 조직화시켜 놓았다며 당연히 치밀하고 파괴적이겠지. 단순히 몇 명의 저승사자들만으로는 그들에게 실전 연습만 시켜주는 셈이 되지 않겠나? 그리고, 어쩌면 엑스가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고...”
 
  “도움이라고요?”
  “그래. 그들은 이승으로 도망쳐 버린 영혼들을 거의 대부분 모았어. 그 이야기는 무언가? 그러잖아도 저승사자들의 숫자가 모자라는 판에 도망친 영혼을 붙잡는 일에 인력을 소모할 수는 없는 형편이잖나. 그런데 고맙게도 그들은 도망친 영혼들을 모으고 있어. 비록 조직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말이지.”
 
  “그렇다면...”
  “그들과 대립을 하기보다는 타협을 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들을 잡기 위해 몇 안 되는 저승사자들을 희생시키느니 그들과 타협을 해서 도망친 영혼들을 되돌려 받자는 말이네. 그 편이 우리에게 더 득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이 쉽게 타협을 할까요?”
  “타협의 조건이 맞는다면 그들도 거절하지 못할 걸. 그들은 우리에게 도망친 영혼을 되돌려 주는 대신 우리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면 되는 거지. 영혼에너지와 이승에서의 그들 조직에 대한 일은 절대 터치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 세운다면 그들도 승낙할 거네.”
 
  “그들에게 영혼 에너지를 준다는 말씀입니까?”
  “영혼들을 되돌려 받는다면 그만한 대가를 주어야겠지. 이미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들은 이승에서 장시간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은 그들도 체험으로 알고 있을 거네. 결국 이승에 계속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다른 영혼을 흡수하거나 멀쩡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조금씩 흡수할 수밖에는 없지. 그들에게 잡힌 영혼들의 일부분이 그들의 에너지로서 흡수되고 있을 거라는 추측은 그리 어려운 게 아냐. 어차피 그들의 에너지가 될 바에는 우리가 에너지를 공급해주고, 그 영혼을 되돌려 받는다면 손해는 되지 않을 거라는 게 내 의견이네. 자네 생각은 어떤가?”
 
  “그러다가 그들의 조직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면 어찌합니까?”
 
  “일개 영혼들의 집단이 저승을 말아먹을 수 있을까? 저승의 세력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기반이 약하지는 않다네. 지금이라도 저승에 있는 모든 힘을 그들에게 퍼붓는다면 그들은 우후죽순처럼 없어질 거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상당량의 인원을 투입시켜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저승에 커다란 혼란이 오게 돼. 난 혼란으로 저승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원치 않네. 될 수 있는 한 일을 좋게 해결하고픈 심정뿐이지. 그리고 그들에게는 최후의 약점이 있다네. 한 명의 힘으로 조직된 단체는 그 머리만 잘라 버리며 금방 흔들리게 되어 있어. 최후의 경우에는 그 머리를 잘라 버리면 되는 거라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들이 필요해. 상부상조한다면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으니까. 이제 자네를 설득할 수 있는 말이 없군. 최종적으로 자네 의견을 듣고 싶은데, 어떤가?.”
 
  그 말은 분하게도 타당성이 있었다. 겟슈는 염라의 말에 승복하고 말았다. 재조직된 토벌대는 해체되었고, 염라의 뜻을 겟슈가 직접 엑스에게 전하게 되었다.
 
  뜻밖의 제안에 기뻐서 웃어 재끼는 엑스를 보고 겟슈는 주먹을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엑스는 염라의 조건을 흔쾌히 승낙했다.
  염라가 엑스에게 영혼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대신 엑스는 도망친 영혼들을 잡아 되돌려 주었다.
 
  평균적으로 연간 12퍼센트나 되는 영혼들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탈출을 하거나 저승사자에게 끌려가는 도중 도망을 쳐버린다. 집단 엑스와 계약을 한 뒤로 그 수치는 5퍼센트로 줄어들었고, 염라는 윗분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염라는 매우 만족해하는 듯했으나 겟슈는 언제나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는 이 거래가 위험한 거래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족해하는 염라에게 반감을 내비칠 수 없기에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언제나 기분 나쁜 엑스의 웃음소리가 그의 귀로 파고들었다.
  “키득키득,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 온 것 같은데...”
  겟슈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엑스에게 팽개치듯 던졌다.
  “오우, 이런. 이렇게 귀중한 것을 내팽겨 치다니 자넨 정말 버릇이 없군.”
 
  엑스는 가방을 열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었다. 손가락 만한 투명 유리 캡슐의 뚜껑을 연 엑스는 병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를 콧구멍으로 들여 마셨다. 갑자기 얼굴이 환해진 엑스는 통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저승의 영혼에너지는 맛이 있군. 칙칙하게 썩어버린 영혼을 흡수하는 것보다는 백 배, 천 배 맛이 있어. 하하하. 그럼 이제 기분도 좋고 하니 협상을 해 볼까. 그래 무엇을 원하나, 친구?”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데려와 주었으면 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
  엑스는 뜻밖이라는 듯 겟슈를 쳐다보았다.
  “이번엔 대상물이 다르군. 이미 죽어버린 영혼이 아니고, 살아있는 영혼을 달라니. 그 가엾은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문영오라고 하는 사람이야. 자세한 것은 이 안에 있어.”
  겟슈는 서류 뭉치를 역시 내팽개치듯 엑스의 앞에 던졌다. 엑스는 코웃음을 쳤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데려가는 것은 저승사자들의 일인데 왜 우리에게 시키는 거지? 이유가 뭐야?”
 
  “이유까지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잖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었으니 당신도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기만 하면 된다고.”
 
  “후후, 얇삭한 놈이군. 음,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와 같은 일을 부탁한 적이 있는 거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군.”
  엑스는 생각을 해 내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하, 그래. 이제 생각나는군. 영혼을 잘못 데려왔었지, 아마. 그래, 맞아. 그래서 우리에게 원래 죽어야 할 영혼을 데려달라고 했었어. 우리는 멋있게 그 일을 완수했고 말이야. 그런데 이상하군. 그런 일이라면 저승 측에서 직접해도 될 일인데 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거지? 이렇게 귀중한 영혼에너지를 주면서까지 말이야.”
 
  “알 필요없어. 당신은 그저 시키는 데로만 하면 돼.”
  “내가 추측을 해 볼까? 영혼을 실수로 잘못 데려간 것은 커다란 사건이지? 염라의 윗분들이 알게 되면 승진에 지장이 있을 테고 말이야. 그렇다고 실수로 데려간 영혼을 원래대로 돌려보내고 새로 잡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하려면 윗분들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우리에게 부탁하는 거지? 우리가 원래의 저승으로 가야 할 영혼을 데려오면 그것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는 속셈으로 말이야. 그렇게 되면 잘못 데려간 그 불쌍한 영혼은 어찌될까, 상당히 궁금하군. 자네들이 흡수해 버리나?”
 
  “쓸데없는 소리.”
  “자네가 놀라는 것을 보니 내 추리가 맞는 모양이로군. 역시 내 머리도 쓸만하단 말이야. 그런데 이를 어쩌지. 불행하게도 우리는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야금야금 먹을 수는 있어도 영혼을 통째로 육체에서 뺄 수 있는 능력이 없단 말이야. 그래서 자네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겠는걸.”
 
  “거짓말하지 말아. 당신 밑에는 예전에 저승사자로 일하던 영혼들이 상당히 있을 텐데. 그들에게는 영혼에게 약간의 고통을 가하는 능력과 육체에서 영혼을 빼어내는 능력이 있어. 저번에도 그들의 힘으로 영혼을 데려온 것이 아닌가?”
 
  “자네도 나만큼이나 머리가 좋구만. 하지만, 이번 제안의 대답은 NO 야. 별로 내키지 않아. 혹시 모르지. 영혼에너지를 더 많이 준다면 생각해 볼 수 있을지.”
 
  “이 더러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지저분하게 옷을 입은 몇 명의 영혼들이 겟슈의 주위를 포위하고 있었다. 겟슈는 공격 자세를 취했다.
 
  “하하하. 미안, 미안.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어. 나를 포함한 내 동지들은 저승에서 공급해주는 영혼에너지로는 만족을 못하게 되었거든. 그렇다고 칙칙한 영혼들을 흡수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우리는 영혼에너지 없이도 살 수 있는 저승으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네. 아마 자네는 그 계획의 첫 희생물이 될 것 같은데, 정말 미안하군.”
 
  겟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엑스의 조직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불안감은 늘 있었지만 저승을 노릴 정도로 커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집단 엑스는 겟슈의 상상외로 거대해진 듯했다.
 
  겟슈가 분노로 이를 갈며 말했다.
  “저승은 자네처럼 보잘것없는 주먹구구식의 영혼 조직에 무너질 정도로 약한 곳이 아니야!”
 
  엑스가 비웃었다.
  “과연 그럴까? 우리들의 조직은 자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해졌어. 이승에서 날고 긴다던 녀석들의 영혼을 상당히 보유했거든. 그리고 지금 저승 역시 불안한 상태라는 것도 알고 있지. 레벨들이 생겨났다며? 그들의 조직 역시 예사롭지 않다고 하던데.”
 
  겟슈는 또다시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그런 것까지...”
  “우리들의 정보통 역시 만만치 않다고. 내분이 일어난 나라를 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니까. 아, 이런. 시간이 너무 흘렀군. 이제 자네의 영혼을 내가 흡수해야 할 시간이야.”
 
  겟슈의 가까이에 있던 영혼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겟슈는 살짝 피했으나 반대쪽에서 달려드는 영혼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겟슈를 잡은 영혼은 손으로 그의 오른팔을 꽉 잡았다. 순간 고통이 겟슈의 오른팔로부터 몸으로 전달되었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하하하, 그 동안 나를 괴롭히던 친구가 사라져 가는군. 고통을 즐겨보게, 친구. 이제 곧 나에게 흡수되면 고통도 느끼지 못할 테니 말이야, 하하하.”
 
  엑스의 웃음소리는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겟슈를 벌벌 떨게 만들었다.
 
  다른 영혼들이 합세하여 겟슈에게 달려들었다. 겟슈는 꼼짝달싹 못하고 영혼들에게 둘러 쌓이고 만 것이다. 팔이며 가슴이며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겟슈는 정신이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정신이 흐려지면 저 빌어먹을 놈에게 흡수 되어버린다.’
 
  겟슈는 있는 힘을 다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사정 볼 것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핑하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 달려들었던 영혼 하나가 뒤로 주춤하더니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악마의 소리를 내며 웃던 엑스가 웃음을 멈추었다. 달려들며 공격을 하던 영혼들도 겟슈에게서 한발자국씩 뒤로 물러가고 있었다.
 
  겟슈는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오른손에 들고 있는 무기를 맨 처음 자신의 오른팔에 고통을 가한 영혼에게 겨냥하고는 사정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 영혼은 비명한번 질러보지 못하고 하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상황은 역전된 듯 영혼들은 더 이상 공격을 못하고 두목인 엑스만 힐끔거리고 있었다.
 
  겟슈는 엑스에게 총구를 겨냥했다. 엑스가 소리쳤다.
  “이봐, 잠깐, 잠깐 참으라고. 이봐, 친구.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들어보란 말이야.”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어. 이 개 같은 자식.”
  “좋아, 좋아. 자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쏘아보라고. 하지만 나를 쏘게 되면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가지 못하게 돼. 그렇게 되면 자네 역시 불리할 텐데. 그래도 좋나? 어?”
 
  겟슈는 방아쇠를 당기려는 손가락에 힘을 풀고 총구를 내려놓았다.
 
  “쥐새끼 같은 놈.”
  “휴우. 큰일 날 뻔했군. 나 역시 자네의 총에 어이없이 사라지고 싶지는 않거든. 정말 대단하군. 영혼제거총이라니. 도대체 그걸 어디에서 구했지? 저승에서도 위험하다는 이유로 오래 전에 생산중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너 같은 놈을 위해 가지고 다니고 있지.”
  “빌어먹을. 아무튼 좋아. 자네의 부탁은 들어주겠네. 내일까지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다 주면 되는 거지? 응?”
 
  “허튼 수작하지 않는 게 좋아. 다음 번에 다시 만나면 없애 버릴 테니까.”
 
  “무섭군. 자네가 무서운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악마처럼 보이는군. 좋아, 좋아. 내일 이 시간에 여기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때는 허튼 수작하지 않을 테니 그 위험한 물건은 꺼내놓지 말게.”
 
  겟슈는 영혼제거총을 주머니에 넣고, 무서운 눈초리로 주위에 있는 영혼들을 훑어보았다. 영혼들은 겁에 질리듯 몸을 움츠렸다.
 
  겟슈는 천천히 몸을 상승시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 높이 사라져 갔다.
 
  겟슈의 존재가 사라지자 엑스는 영혼들에게 소리를 쳤다.
  “이런 개 같은 놈들. 고작 한 명에게 당한단 말이야? 이런 썩어빠질 놈들.”
 
  영혼들은 두목의 고함소리에 몸을 더욱 움츠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내 생애에 최고의 수치다. 겟슈 놈, 다음 번에 보게 되면 단단히 혼내주고 말겠어. 두고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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