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6 알 수 없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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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6 알 수 없는 불안감

  Act.6 알 수 없는 불안감
 
  깜깜한 방안에 두 쌍의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방의 정면에는 100여 개의 모니터가 올망졸망하게 붙어있었고, 모니터에는 궁(宮)의 중요한 부분이 각각 디스플레이 되고있었다.
 
  궁으로 들어오고 있는 영혼들의 행렬, 대기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 방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쉬고있는 영혼들과 더불어 방에서 조용하게 자고있는 영호의 모습도 보여지고 있었다.
 
  두 쌍의 눈동자는 영호가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모니터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들은 말이 없었다. 갑자기 빨간 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모니터의 불빛에 반사되어 하얗게 피어오는 담배연기가 천장으로 올라갔다.
 
  “저 영혼인가요? 실수로 잘못 데려왔다는 영혼이?”
  담배를 꼬나 문 염라가 웃음기 없는 목소리로 옆에 있는 자에게 말을 했다.
 
  “그래.”
  옆에 있는 자가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저 평범한 샐러리맨 같군요. 그리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다시 돌려보내면 되지 않나요?”
 
  “물론 그렇게 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지.”
  “그럼 다른 문제라고 있습니까?”
  염라는 담배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자네도 알겠지만,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잖나. 게다가 이미 죽어서 저승으로 올라온 영혼을 다시 되돌려 보내는 권한은 나에게 없다고. 윗분들에게 천상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윗분들이 나를 보는 눈초리가 안 좋아질게 분명하단 말이야.”
 
  “그렇군요. 그럼 달리 해결책이라도?”
  “휴우, 대책이 안 서는군. 시기가 너무 안 좋아.”
  “컴퓨터를 조작하면 어떨까요? 문영오에 대한 파일을 아예 삭제해 버리면.”
 
  “저 영혼을 데려온 저승사자는 ‘쥬리’라고 하는 젊은 여자인데, 컴퓨터에서 문영오의 파일을 삭제하려면 쥬리도 같이 처리해야 한단 말이야. 그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가 더 큰 게 되어서 안돼. 더군다나 쥬리라는 아가씨, 레벨(rebel)의 냄새가 나.”
 
  “레벨? 그렇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군요. 확실한 가요? 쥬리가 레벨이라는 것이?”
 
  “그냥 추측일 뿐이야. 확실치는 않아. 하긴 요즘은 신경이 예민해져서 모든 저승사자들이 레벨로 보이거든.”
 
  염라는 씁쓸하게 웃었다.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레벨에 대해선 새로 들어온 정보가 없나?”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전체적인 규모가 어디까지 퍼져있는지도 미지수이고, 누가 확실하게 레벨인지도 파악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나를 암살하려던 자는 어떻게 되었지?”
  “제 실수였습니다. 너무 방심을 했죠. 주머니에 영혼제거약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가 한눈을 판 사이에 알약을 먹고는 소멸되어 버렸습니다.”
 
  “도대체 영혼제거약은 누가 만들어서 퍼뜨리는지 모르겠군. 이곳에서는 이미 만들고 있지도 않잖아. 그리고 그만한 능력을 가진 영혼이 저승에는 없을 텐데 말이지.”
 
  “그것도 지금 수사중입니다. 조만간 소식이 있을 겁니다.”
  “저승사자들의 지적 능력이 너무 높아진 거 같아. 그렇게 생각지 않나?”
 
  “레벨이 생기게 된 것을 보면 그렇겠지요. 저승사자들의 지적능력을 다소 낮추는 것은 어떨까요?”
 
  “그랬다가는 문영호처럼 잘못 잡혀오는 영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게 될 걸. 그렇게 되면 염라 자리를 내 놓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저승사자들을 일일이 조사해 봐야겠습니다. 그중에 레벨의 위험성이 있는 자들의 명단을 작성해서 미행자를 붙여야겠습니다.”
 
  “자네가 힘 써주게. 요즘은 불안해서 편하게 쉬지도 못한다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무능한 탓에.”
  “아니야. 자네처럼 내 곁에서 많이 도와주는 자도 없지. 자네만 믿을 테니 레벨들이나 빨리 찾아서 제거해 버리게.”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문영호 일부터 빨리 해결해야 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엑스(X)의 도움을 받아야 될 것 같아.”
 
  “엑스라면 이승의 떠돌이 영혼무리들 말입니까?”
  “그래. 예전에도 한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잖은가. 그때도 이번처럼 영혼을 잘못 데려온 것 때문이었지, 아마.”
 
  “하지만, 그런 범죄자들과 협상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직 하지. 시한폭탄을 만드는 셈이니까. 자네가 엑스에게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네. 하지만 조용하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은가. 윗분들에게 이 일이 알려지기 전에 서둘러 해결하고 싶네. 겟슈, 자네가 엑스를 만나주게나.”
 
  겟슈는 공손하게 염라의 부탁에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나가세. 나는 쥬리라는 아가씨를 만나봐야겠어. 지금쯤 회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걸세. 귀여운 아가씨지. 컴퓨터실에 조회를 해보니 요즘 그 아가씨 감정리듬의 기폭이 상당하다고 하더군. 조금 불안한 아가씨야. 어쩌면 레벨이 아니라 하더라도 곧 제거해야 될지도 모르겠네. 저승사자에게는 감정은 금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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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응접실에서 홀로 기다리는 쥬리의 표정은 초조해 보였다. 염라와의 개인 면담은 예상하고 있던 일이지만 막상 그때가 되니 두려워졌던 것이다. 그녀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잠시 후, 면담을 신청했던 염라의 모습이 방으로 쓰윽 들어왔다. 쥬리는 일어나 경례를 붙였다.
 
  “아아, 단둘이 있을 때는 예의 같은 건 집어치우라고 했잖나.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자고 부른 것이니 긴장하지 말게.”
 
  쥬리는 염라의 심정을 읽기 위해 표정을 살폈다.
  염라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왜 쥬리 양을 보자고 했는지는 알고 있겠지?”
  “문영호 때문인가요?”
  “그래.”
  “제 실수였습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죄송합니다.”
  “아아, 괜찮아. 내 측에서 너무 무리하게 일을 시킨 것이 잘못이지. 저승으로 오는 영혼들의 숫자는 날로 늘어나는데 저승사자의 숫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지. 저승사자의 수를 늘리고 싶지만 합당한 영혼들이 너무 없어서 늘릴 형편도 안돼. 지금 이렇게 쥬리 양을 보자고 한 것은 추궁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 문영호라는 영혼이 정말 실수로 데려온 것인가 궁금해서 보자고 한 거네.”
 
  “전적으로 제 잘못입니다. 피곤한데다가 사는 곳과 이름이 비슷해서 잘못 데려온 겁니다. 처벌이라면 달게 받겠습니다.”
 
  “음...”
  염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좋아. 피곤해서 잘못 데려왔다는 말을 믿어야겠군. 흔한 일은 아니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컴퓨터를 정비해 보니 컴퓨터에는 이상이 없었네. 전적으로 쥬리양의 잘못인 것 같아.”
 
  “네.”
  “그럼 서둘러 수습을 해야 할 듯 싶군. 쥬리 양이 과중한 업무로 인해 실수를 한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근무 수칙에 위배되는 일을 했으니 처벌은 가해질 거야. 규칙이 그러니 어쩔 수 없네. 각오는 하고 있어야 할거야.”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래. 자네처럼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저승사자들이 많았으면 좋겠군. 요즘은 레벨들이 상당히 늘어난 것 같아서 늘 불안하거든. 레벨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겠지?”
 
  “네. 알고 있습니다. 반란을 꾀하려는 조직 말씀이시죠?”
  “잘 알고 있군. 예전엔 정신능력이 뛰어난 몇몇 저승사자뿐이어서 컨트롤 하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꽤나 세력이 커진 것 같아. 나를 암살하려고까지 시도한 것을 보면 말이지. 사실 나도 당황했다네. 자넨 설마 레벨은 아니겠지?”
 
  염라가 노골적으로 물어보자 쥬리는 당황했다.
  “아닙니다. 어떻게 제가 그런...”
  “저승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
  “2개월 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군.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영혼이 레벨일리가 없지. 난 자네를 믿고 있으니 안심하게나. 혹시 주위 동료들에게 레벨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있으면 말해주겠나?”
 
  “레벨이 저승에서 반란을 꾀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염라는 쥬리의 말을 믿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들은 자네처럼 갓 저승사자가 된 영혼들에게 나를 없애면 빠른 시간 내에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로 유혹하고 있다네. 그런 터무니없는 말에 넘어가서는 안돼. 설령 반란이 성공해서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저승의 규칙은 바꿀 수가 없는 절대적이니까 쉽게 이승으로 돌아 갈 수는 없는 일이야. 어서 빨리 이승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순진한 영혼들을 현혹시켜 자신의 희생물로 하려는 의도겠지. 자네는 제발 그런 말에 넘어가지 말게.”
 
  “알겠습니다.”
  “자네 파일을 내가 살짝 들쳐 보았네.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 친구의 애인과 같이 죽었더군.”
 
  쥬리는 말없이 있었다. 갑자기 슬픈 감정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자네처럼 슬픈 사연으로 올라온 영혼들을 보면 나 역시 가슴이 아프다네. 하지만 이승에서의 일이 어디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 않나. 너무 이승에 있었던 일로 연연해서는 안되네. 잊을 건 잊어버리는 것이 마음도 편하다는 말을 하고 싶네. 자네처럼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 충실하다는 것은 좋은 영혼을 가졌다는 증거이니 말이야. 언제라도 마음이 괴로우면 나에게 이야기하게. 며칠동안 쉴 수 있도록 휴가를 줄 테니까. 저승사자는 감정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건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감정을 다스려 보게나. 자네가 마음에 들어서 하는 말일세.”
 
  “감사합니다.”
  “그래. 쉬고있는데 괜스레 불러서 시간을 빼앗은 것 같군. 내가 처벌담당자에게 이야기를 해 놓았으니 심한 처벌은 없을 거야. 이제 가서 쉬도록 하게나.”
 
  “알겠습니다.”
  쥬리는 경례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염라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보면 볼수록 귀여운 아가씨군. 위험할 정도로 순진해 보여서 탈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염라는 깊게 담배연기를 들여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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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호는 어느 한 순간에 눈을 확 떴다.
  보이는 것은 연푸른 빛의 천장뿐이었다.
  영호는 곁눈질로 옆을 보았다.
  비어있는 2층 침대가 놓여있었다.
  주위에는 그 혼자 뿐이었던 것이다.
  조용했다. 그리고 썰렁했다.
  영호는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것이 사라져있기는 바랬지만 다시 눈을 떴을 때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그는 저승에 있었고, 이것은 현실이었다. 허탈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그는 자신이 얼마만큼 잤는지 알고싶어서 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지만 시계는 없었다. 자고 있을 때 끌려왔기 때문에 손목에도 시계가 있지 않았다. 답답했다.
 
  언제부터인가 사회생활에 물들면서 익숙해져버린 시간관념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기에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는 지금은 그에게 있어 고통의 순간들이었다.
 
  답답함을 해소할 의도로 문을 열어보려 했지만 잠겨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고 침대에 덥석 주저앉아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생각했다. 결국 이승에 있었을 때의 일을 하나씩 떠올리는 것밖에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지나간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늘 등장하는 미스 정과 첫사랑 때문에 마음이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언제쯤 나를 다시 돌려보내 주는 걸까?”
  영호는 방안을 샅샅이 수색해 보기로 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대우와 병철의 수다 때문에 살펴 볼 틈이 없었고, 다시 되돌아왔을 때는 다시 돌아간다는 기쁨 때문에 그런 여유가 없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사소한 것에라도 신경을 써야 시간이 잠시라도 빨리 흘러갈 것 같기에 방안 수색에 온 정렬을 쏟아 부었다.
 
  침대 머리맡에 전화기 비스름한 것이 있다는 것 빼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신문도 잡지도 없는-손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는 방이었다.
 
  영호는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었다. 예쁘장한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301호실. 말씀하세요.”
  “저는 언제쯤 돌아갈 수 있나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엉뚱한 대답에 놀란 듯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영호의 귀속으로 들어왔다.
 
  “아, 문영호 씨로군요. 잠시 후에 염라대왕님의 면담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럼 쥬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쥬리?”
  “나를 데려왔던 저승사자인데요.”
  “저승사자와의 면담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럼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전화는 야멸차게 끊어졌다.
  ‘젠장.’
  영호는 초조했다. 염라가 조만간 나를 만난다고는 하지만 그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가 없었기에 그 초조함은 배로 늘어났다. 그는 염라와 이야기를 나누던 때의 일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아차 싶었다.
  저승에 갓 올라온 영혼의 생각은 상대방에게 쉽게 노출된다는 쥬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염라가 자신의 생각을 모조리 읽을 수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거짓말을 했을지 모르니 두고보자고 한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아까보다 더한 초조함이 엄습해 왔다.
  어쩌면 이승으로 못 돌아갈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영호는 자신을 데려온 쥬리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뭉큼의 욕을 퍼 붇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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