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5 천방지축 염라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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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5 천방지축 염라대왕

  Act.5 천방지축 염라대왕
 
  염라의 방은 여태까지 보아왔던 방과 별 다를 바 없었다. 같은 칼라에 장식은 없었고, 컴퓨터가 놓여있는 책상이 하나 있었으며, 그 뒤에 이웃집 아저씨 같이 생긴 사람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염라대왕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턱수염이 수분하게 난 지저분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재판복을 입고 있었다. 입기 싫은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염라는 옷의 소매며 목 언저리를 수시로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염라가 인상 좋게 웃으며 영호를 향해 말했다.
  “자자, 여기 의자에 앉도록 해요. 좀 딱딱할지 모르겠지만 금방 끝날 테니 푸념은 하지 말아요.”
 
  영호는 염라가 가리킨 곳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딱딱한 의자였다.
 
  “마음 편하게 가져요. 긴장하지 말고. 담배 피우겠소?”
  “아뇨, 전 담배 못합니다.”
  “좋은 버릇이로군요. 담배는 육체에도 안 좋지만, 영혼에게도 안 좋다우. 먼저 번에 들어왔던 두 친구는 담배를 좋아하는 편이던데. 나도 담배를 자제하면서 핀다우. 끊는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야. 하하.”
 
  영호는 긴장이 풀렸다. 생각했던 것처럼 염라가 무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담배는 영혼을 지저분하게 하지요.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오. 담배를 피지 않는다면 깨끗한 정신을 가지고 있겠구려. 자, 그럼 이제 살펴볼까요.”
 
  말을 마친 염라는 컴퓨터 모니터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았다. 모니터는 염라 쪽으로 향해있었기 때문에 영호 쪽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이름이 문영오군요.”
  “문영호입니다. 영오가 아니고 영호입니다.”
  “응? 그래요? 컴퓨터 기사가 입력을 잘못했나 보군요. 이런 일은 종종 있죠. 그러고 보니 얼굴도 좀 틀린 것 같군요. 컴퓨터 기사 교육을 좀 시켜야겠는 걸. 자, 이름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어디 이승 때의 행적을 보기로 합시다.”
 
  염라는 키보드 버튼을 눌렀다. 모니터에 영호의 지난 행적이 표시되는가 보다. 염라는 모니터에 얼굴을 고정시킨 채 한동안 있었다. 그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염라가 영호를 쳐다보았고, 말을 했다.
  “생긴 건 얌전하게 생겼는데, 꽤나 못된 짓을 많이 했군요. 하하,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지옥에서 조금 고생하고 나면 되니까. 지옥이라도 그렇게 잔혹한 곳은 아니라오. 익숙해지면 재미있는 곳이지.”
 
  영호는 뜨끔했다. 그리고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해내려 애섰다.
 
  ‘지옥으로 갈 정도로 나쁜 짓을 내가 했던가. 하지만 구세군 냄비에다가도 돈을 넣었고, 사람들에게 크게 해가되는 일을 한 적도 없는데 무작정 지옥이라니. 너무하잖아. 따져볼까?’
 
  “하지만, 사람을 여섯 명이나 죽였고, 그중에는 여자아이도 있었네. 여섯 명 모두 여자들이었고 모두 강간한 뒤에 살해를 했군. 보기 보단 끔찍한 영혼이구먼.”
 
  영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염라를 쳐다보았다. 염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경찰에게 쫓기는 도중에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구먼.”
  염라가 힐끔 영호를 쳐다봤다.
  “잠옷을 입고 온 것을 보니 잠자다가 쫓기게 된 것 같은데. 쯧쯧, 그러기에 안전한 곳으로 도망친 다음에 잠을 자야지. 어쩌자고 살인을 한 동네 여관에서 잠을 자나, 이 영혼아. 그건 그렇고 여자아이를 강간하다니, 자네 대단하네. 이건 볼 것도 없이 지옥행이지. 지옥에 가기 전에 여자 아이 강간하던 일이나 얘기해 주고 가게. 어떻게 옷을 벗겼나? 삽입은 하긴 했나? 재미는 있었나? 반항은 안던가? 나도 여자 아이랑은 아직 섹스를 해 보지 않았는데, 그런 점에서 자넨 나보다 낫게 그려, 껄껄.”
 
  “저, 잠시만요.”
  “그래, 어서 이야기해 보게. 재미있게 얘기 해주면 그만큼 지옥으로 가는 시간이 늦추어지니까. 내 귀도 재미있고, 서로 득이 되지. 하하하.”
 
  “그게 아니고.”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그의 이름이 제대로 호명된 적이 없었다. ‘문영호’가 아닌 ‘문영오’로 호명되지 않았던가. 게다가 파리보다 조금 큰 생물체는 죽여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런데 동물도 아니고 사람을 여섯 명이나 죽였다니. 그리고 숙맥이라 놀림을 당하면서까지 지켜온 총각보고 강간까지 했다는 것은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 된 것이다. 이것은 따져야 할 문제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 이야기하기 싫다는 건가? 쩝, 하긴 코앞에 지옥을 두고 그런 이야길 재미있게 할 영혼이 드물지. 자네 마음 이해하네. 강간하고 온 영혼들은 많으니까 다른 영혼에게 듣지, 뭐. 자넨 못생긴 여자들에게 강간당하고 칼에 찔리는 고통의 지옥으로 보내줄 테니 즐겨보게나. 10년 동안 강간당하고 칼에 찔리는 맛도 괜찮겠지.”
 
  영호는 말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봐, 안내원. 이 분을 지옥으로 안내하게.”
  안내원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잠깐만요. 염라대왕님.”
  “응? 왜? 갑자기 이야기하고 싶어졌나? 하하, 이 영혼이. 자, 그럼 이야기 해보게. 난 그런 이야길 좋아한다고. 재미있게 해준다면 몇 년 감해줄 수도 있다오.”
 
  “그게 아니고... 전 영오가 아닙니다.”
  염라의 한쪽 눈이 치켜 올라갔다.
  “무슨 씨나라 까먹는 소린가? 영오가 아니라니? 방금 전에 문영오, 아니 문영호라고 하지 않았나?”
 
  “문영호는 맞습니다만, 전 문영오가 아니란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아하! 지옥이라는 말을 듣고 너무 흥분한 모양이로군. 가끔 자네 같은 친구들이 있기는 있지. 죄를 저지르고도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발뺌하는 친구들 말이야. 이름이나 사진이 잘못 입력되는 경우가 있기는 해도 이 컴퓨터는 말이야, 정확하다네. 지나간 행적이 거짓으로 입력되는 경우는 없다우. 그랬다가는 컴퓨터 담당 부서에 있는 담당자들의 영혼이 모두 소멸되거든.”
 
  “그 사진을 봐보세요. 저하고는 전혀 틀리잖습니까?”
  염라는 모니터에 비친 사진과 영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조금 틀리긴 하구먼. 하지만 이 사진이 예전에 찍힌 사진일 수도 있고, 자네가 성형 수술을 했을지도 모르지 않나. 음, 원래 사진은 죽기 바로 직전에 찍게 되어있는데, 이 사진은 이상하구먼. 컴퓨터 기사들을 아무래도 문책해야겠어. 일을 너무 소홀히 하는 것 같아. 쩝.”
 
  “그 사진 속에 있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
  염라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영호를 쳐다보았다. 영호는 말주변이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무래도 저는 잘못 온 거 같습니다. 저는 문영오가 아니라고요. 처음 호명되었을 때 알았어야 하는 건데. 아무튼 전 문영오가 아니고 문영호입니다. 영혼을 잘못 데려온 거라고요.”
 
  여태까지 웃으며 말하던 염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영호는 자신의 말을 염라가 이해한 줄 알고 안심했다. 그제야 그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었다.
 
  “저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여섯 명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이나 친구들로부터 여자 경험이 없다고 숙맥이라 놀림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어떻게 강간까지 했다고 하십니까. 만일 그 컴퓨터에 입력된 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제가 잘못 잡혀온 게 틀림없습니다.”
 
  “영혼을 잘못 데려왔다?”
  “네. 바로 그겁니다. 저는 문영오가 아니라고요. 처음엔 그저 제 이름이 잘못 불려지는구나 생각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에요. 전 문영오라는 사람 대신 잘못 잡혀온 문영호입니다.”
 
  염라는 영호는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길이 영호에겐 두렵게 느껴졌다.
 
  ‘만일 염라가 내 말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돼지? 그렇게 되면 난 전혀 모르는 사람의 죄를 뒤집어쓰고 지옥에서 10년 동안 고통 속에서 보내게 된다. 안돼. 그럴 순 없어.’
 
  흥분한 영호가 의자에서 일어나자 안내원이 다가왔다. 염라가 손을 들어 안내원을 말렸다.
 
  염라는 아까처럼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사진 속의 인물하고 자넨 너무 차이가 있군 그래. 나도 꽤나 영혼 보는 눈이 있다고 자부를 하는데 자넨 살인자처럼 생기지는 않았어. 그런 것을 보면 자네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넬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네. 이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거든. 게다가 자네가 연극에 도통을 해서 연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제 말은 사실입니다.”
  “아아, 그래. 난 자네 말을 믿어요. 그러니 진정하고 앉게나. 저승도 소위 민주주의 정책에 따르고 있으니까 자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절대하지 않을 거네.”
 
  염라는 전화기의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온 사자를 불러오게.”
  ‘쥬리를 부를 셈이로군. 어쩐지 그 여자 푼수처럼 행동하더니 결국엔 영혼을 잘못 데려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 아무튼 그 여자가 오면 진실이 밝혀질 테고 나는 다시 살아나겠지.’
 
  영호는 염라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 이런 것일까? 새삼 대우에게 감사를 했다. 대우가 ‘따져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순진한 그는 얼떨결에 지옥으로 가 버렸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문이 열리고 쥬리가 들어왔다.
  쥬리는 피곤한 표정으로 영호를 힐끔 한번 보더니 염라에게 경례를 붙였다.
 
  염라가 말했다.
  “자네가 이 친굴 데려왔나?”
  쥬리가 다시 영호를 쳐다봤다. 그 표정이 너무나 딱딱했기 때문에 덜컥 겁이 났다. 이 여자가 아니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하지?
 
  “맞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데려온 영혼이라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래? 이 영혼 이름이 뭔가?”
  “문영오입니다.”
  영호가 반박했다.
  “난 문영오가 아니고 문영호입니다.”
  염라가 말했다.
  “이 친구가 자신은 문영오가 아니고 문영호라고 하더군. 자네 근무카드를 보여줄 수 있겠나?”
 
  “네.”
  쥬리는 주머니에서 손바닥만한 수첩을 꺼내 편 다음, 염라에게 건네주었다. 염라는 그 수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더니 다시 쥬리에게 돌려주었다.
 
  “좋아. 자네하고는 잠시 후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쉬고있는데 불러서 미안하네. 약간의 착오가 있어서 그러니까 이해하고 가서 쉬도록 하게.”
 
  “네.”
  쥬리는 경례를 붙이고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그녀는 나가기 전에 힐끔 영호를 쳐다보았다. 영호는 그 표정 속에서 걱정스러운 듯한 쥬리의 감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영호의 신변에 대한 걱정인지 실수한 자신에게 처해질 형벌에 대한 걱정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염라는 웃는 표정을 조금 사그라뜨린 채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건 사소해 보이면서도 대단히 커다란 문제를 야기 시킬 수 있는 사건이라네. 아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 안 해도 되네. 이승의 유명한 철학자가 말했었지.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이 일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할 일이 무척 많다오. 하루에도 수백 명을 판결 해야하기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지. 물론 내 밑의 재판관 그룹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그들의 관리 역시 내 몫이지. 그 일만으로도 이렇게 바쁜데 자네처럼 실수로 오는 까다로운 사건까지 생기게 되면 정말이지 내 머리털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오. 아무튼 자네 말이 사실이라고 판명되면 곧바로 이승으로 돌려보내 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제 말은 사실입니다.”
  “알아요, 알아. 하지만 방금 들어왔던 아가씨가 실수로 자넬 데려왔는지 아니면 컴퓨터의 오류인지, 그리고 자네가 거짓말을 하는지 원인을 규명해야하네. 우리로선 당장 해야 할 일이지. 그때까지만 참아주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이봐, 안내원.”
 
  안내원이 다가왔다.
  “이 친굴 방으로 다시 안내하게.”
  염라가 영호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그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도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오. 그때도 사실이 규명되자마자 그 영혼을 다시 돌려보내었지. 그러니 안심하라고. 약간의 시간 뒤에 진실이 규명될 테고 그 뒤에 자넨 다시 육체로 돌아가게 될 테니. 그때까지만 참아주게. 참아줄 수 있겠지?”
 
  영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외에 다른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영호는 안내원의 안내를 받아 다시 301호의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문을 닫고 안내원이 나가자 그는 침대맡에 덥석 주저앉고 말았다.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다시 내 육체로 돌아갈 수가 있겠구나.”
  즐거워야 당연한데 전혀 그렇지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올 때보다 더 두려워졌다. 이유를 생각해 내려했지만 알 수 없었다. 그는 일어나 방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다시 앉았다.
 
  몇 분전까지만 해도 담배를 피워대면 시끄럽게 여자 이야기를 하던 두 친구가 있었던 자리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그들은 지금쯤 지옥에서 수다를 떨고 있겠지.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기 위해선 잠이 최고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잠자다 말고 이곳에 왔고, 잠옷까지 입고 있으니 잠을 자기에는 최고 아닌가. 그런데도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지금 누워있는 이 방이 자꾸 뭐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호는 인상을 찌푸리면 그것이 뭘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생각이 나질 않았다.
 
  포기하고 죽기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미스 정에게 보냈던 쪽지. 곽 과장의 쌀쌀한 말투, 미스 한의 고마운 도움, 문 선배의 충격적인 말들. 모든 것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한시라도 잊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생각도.
 
  ‘염라에게 내 첫사랑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가르쳐 줄까? 졸립군. 깨어나면 염라에게 물어봐야겠어. 첫사랑에 대해서...’
 
  영호는 어느새 잠에 빠지게 되었다.
  잠에 빠질 무렵 그는 이 방이 뭐 같은지 떠올랐다. 그가 떠올린 것은 바로 감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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