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결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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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결말 #2

릴레이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천리안 추리문학동호회 회원들

 
  •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초대장을 받은 7명의 남녀들.
  • 이들은 초대장의 글에 이끌려 별장만 떨렁 있는 무인도로 모여든다.
  • 그리고, 계속 되어지는 살인과 공포.
  • 범인은 7명중의 하나라는 것 밖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 누가 연쇄 살인의 범인인가? 그리고 다음 희생자는? 또한 범인은 무슨 목적으로 살인을 계속 하는 것인가?
  •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는 1998년 천리안 추리문학동호회에서 진행되었던 릴레이 소설입니다.
  • 릴레이 규칙 : 1인당 10 문장씩 스토리를 이어서 릴레이 합니다.
  • 일정 횟수까지 진행되면 릴레이는 끝이 나고, 참여자는 기존 글을 토대로 결말을 낼 수 있습니다.
  • 릴레이가 종료되었기에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수정하고, 결말까지 정리하여 올립니다. <1998-10-25>
 
  [결말] 4. 수 이야기
 
  수가 루를 처음 알게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감수성이 예민할 2학년 봄, 전학을 오게된 루는 단순간에 주의로부터 시기와 찬사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그녀가 추동 기업 회장의 무남독녀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추동 기업 회장의 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루는 며칠 사이에 학생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름이 되어 버렸다.
 
  “말도 안돼. 그 많은 돈을 가진 애가 이런 학교에 오다니...”
  “재수 없어. 속으로 우릴 비웃고 있을 게 틀림없다고.”
  “이해할 수가 없어. 뭐가 아쉬워서 재벌 집 딸이 이런 야간학교에 들어온 거지?”
 
  확실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내에서 최고의 갑부로 손꼽는 추동 기업을 배경으로 한 여자가 보잘것없는 야간학교로 전학을 왔다는 것은 소문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소문과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루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생이 해야될 일만 했다. 그렇지만 그녀를 보는 눈들은 곱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루 주의의 학생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그녀에게 빈부의 열등감을 품고 시기하는 집단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녀와 친해짐으로써 사회 생활에 필요한 백을 만들려는 집단이었다.
 
  가난의 쓰라림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수 역시 그 두 부류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었고, 망설임 없이 빈부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집단에 속했다. 부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사치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수에게 있어 루에게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자존심 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부류로 나뉜 집단은 알게 모르게 마찰을 빚었고, 그 결과는 항상 루에 대한 불만과 시기로 끝을 맺었다. 그러한 잡음 속에서도 정작 본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 평범하게 행동했고, 그 역시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고3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수는 루가 야간학교로 오게된 배경을 알게 되었다.
 
  루에겐 평소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인격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 다른 하나의 인격이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을 때 루의 행동은 수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남학생을 유혹하고, 동기를 구타하고, 심한 욕설을 내뱉는 거침없는 행동은 전혀 루 같지 않았던 것이다.
 
  집안에선 루의 그러한 병을 알고 정신병원에 넣으려 했으나 그녀가 완강히 반항한 탓에 집안에서 쫓아내는 걸로 마무리를 지은 듯 싶다. 부자들이 생각하는 발상은 언제나 그렇듯 터무니가 없었다.
 
  그런 루의 배경을 알게된 수는 묘한 계획이 머리에 스며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루는 현재 혼자였다. 생활비 정도야 지니고 있으니 살아가는데 문제는 없었지만, 사회로 진출하면 그녀의 이중인격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것이고 곤란한 경우를 당하게 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집안에서 쫓겨난 신세이긴 하지만 무남독녀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 막대한 재산의 유일한 상속인인 것이다.
 
  그때부터 수는 루에게 접근했다. 대학을 포기하고 직장을 잡으려 했던 계획마저 포기하고, 루가 지원한 대학에 원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4년간의 대학생활 동안 그녀와의 사이를 좁히려 애썼다.
 
  시간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루에게 막대한 재산, 아니 그 일부라도 돌아갈 것이다. 그 때를 위한 일이다. 루가 상속한 후에는 자신에게 그 돈이 오게끔 손을 쓰면 된다.
 
  묘하게 오랜 생활 같이 지내면서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건 수조차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냉담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루란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녀에게 어떤 정을 느끼게 되었다. 그녀가 또 다른 인격체가 되어 사고를 저지르면 어김없이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 처음엔 짜증이 났지만 지금은 어찌된 것인지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루가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그 사건이 터졌다.
  회식 때문에 늦게 귀가한 날, 루는 집에 없었다. 그리고 새벽에 돌아온 루의 몸은 엉망이었다. 곧바로 행크가 등장했고, 그의 능글맞은 입에서 새어나오는 말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있었다.
 
  행크는 거금을 요구했다. 거부할 경우 루는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수는 최후의 방법으로 다니고 있는 금융 업체의 공금을 빼돌리기로 결심했다.
 
  운이 없었는지 일은 틀어졌고, 네로란 형사의 취조를 받아야 했다. 이제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놀랍게도 네로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뜻밖이었다. 하지만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라 여겼다. 네로는 분명 그 조건으로 무언가 다른 일을 요구해 올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수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그녀를 찾아온 네로는 허튼 이야기를 내뱉으며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황당할 정도의 그 계획에 수는 거절을 했다. 거절을 한다해도 네로 역시 약점이 있으므로 감히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네로는 만만한 남자가 아니었다.
 
  “만일 루에 대한 걸 경찰에게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행크에게도 상당히 안 좋은 일이 되겠죠. 다혈질의 깡패 행크는 어쩌면 루에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 친구 루는...”
 
  또다시 루로 인해 마지못한 선택을 해야했다. 루의 이중인격에 대한 피해는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막대한 합의금이 들어간 사고까지 수십 번의 해결을 수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공금횡령으로 감옥에 갈 뻔했는데, 지금은 낯선 남자의 터무니없는 부탁까지 들어주어야 할 상황까지 놓이게 된 것이다. 언제까지 루의 뒤치다꺼리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수는 참아왔던 무언가가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초대장을 가지고 정해진 날짜에 그 무인도에 가면 됩니다. 그곳엔 같은 초대장을 받은 몇 명이 있습니다. 그들과 같이 무인도 별장에서 며칠 지내면 됩니다. 일종의 추리게임이라고 생각하세요. 여기에 당신이 해야할 일이 적혀 있으니 그대로 해 주면 됩니다 .”
 
  추리게임? 그딴 것일 리가 없다. 단순히 추리게임을 위해 범행을 눈감아주는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것에는 무언가 다른 음모가 있음이 틀림없다.
 
  “별장으로 들어가면 2층에서 비명소리가 들릴 겁니다. 다들 용감한 사람들이니 2층으로 올라가려 하겠지요. 그러면 당신이 앞을 가로막으세요. 약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겠죠. 그 때 못이기는 척 뒤로 물어나면 됩니다. 우스운 행동이지만 추리게임이니 만큼 긴장감과 수수께끼를 안겨줄 필요가 있으니까...”
 
  애들 장난과 같은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이러한 시나리오 속에 수는 나름대로의 시나리오를 추가할 수 있을 듯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계획을 네로의 시나리오 속에 교묘히 추가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날 새벽에 루 님의 시체가 발견될 것입니다. 하지만 놀란 필요는 없어요. 진짜 시체는 아니니까. 이 부분에선 루 님의 협조가 필요하겠죠. 나무에 목을 맨 단 시체로 꾸밀 예정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루 님의 시체에 기겁을 하겠죠. 그리고 모두들 공포에 떨 겁니다.”
 
  네로의 계획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루의 가짜 시체는 나무에 목을 맨 단 채 발견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동요가 일었다. 하지만 수가 놀란 건 루의 시체가 찼다는 것이다. 루는 정말 죽은 것이었다.
 
  “빌어먹을... 결국 그 자식이 사고를 쳐버렸어...”
  “아뇨. 놀랄 필요는 없어요. 정말 죽은 것은 아니니까. 단지 마취를 시켰을 뿐입니다. 마취를 시켜 차가운 밖에 잠시 내다 놓았을 뿐이죠. 목을 맨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시체를 연상하게 됩니다. 잠깐 만져보고 나서 차갑다라는 걸로 시체확인을 종결하겠죠. 단지 그 뿐입니다. 시체를 옮겨 놓았으니 잠시 후면 마취에서 깨어날 겁니다. 그 뒤에 루 님은 제가 마련해 놓은 비밀장소에서 마지막까지 기다리게 될 것이고요.”
 
  섬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단 둘이 만난 자리에서 네로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는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에 만족을 하는 듯 싶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루 님이 정말 죽은 줄 알았나 보죠? 하하. 당신을 속일 정도니 제 솜씨도 꽤 괜찮은 듯 싶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장에 대한 연기를 하다니, 수 님도 만만치 않을 정도로 침착한 걸요? 후후. 여하튼 한동안은 사람들의 관심이 그 초대장의 색상에 가 있겠죠. 멍청한 추리력을 과시하기 위해 애 쓰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애처롭더군요, 후후.”
 
  그제야 네로가 세운 이 엉뚱한 계획의 목적을 어렴풋이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것을 멀리서 비웃음과 함께 관찰하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그러면서 스스로의 열등감을 해소하겠지. 부자들이 하는 짓거리나 네로가 하는 짓거리는 밥 맛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네로가 꾸민 이 짓의 목적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목적이 무엇이든 이 섬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네로의 책임이 된다. 만일 진짜 살인이 일어난다면 그건 네로의 네로의 책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이 짓거리의 총감독이니 말이다. 설령 루가 죽는다 해도 그 추궁은 네로의 몫일 것이다.
 
  수는 지금이 적당한 기회라 생각했다. 루는 마취 상태로 자신의 방에 누워있을 것이다. 조용히 숨통을 끊어 놓으면 아무런 흔적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에겐 루는 죽은 인물이 되어있다. 다시 죽는다 해도 새삼스러울 게 없다.
 
  지금 루가 죽는다면 수에겐 득이 될 것은 없다. 애초에 계획했던 유산 따위가 돌아올 리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녀의 뒤처리를 해줌으로 받게되는 스트레스와 압박으로부터는 벗어날 수 있다. 이 터무니없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도 그녀 때문이 아닌가? 심지어 감옥에도 갈 뻔했다. 그녀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더 이상 위험 속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그녀를 죽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던 차에 레븐스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갑자기 등장한 레븐스는 루의 약혼자임을 내세웠고, 그로 인해 수는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루는 여태껏 같이 살아오면서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약혼자란 존재는 뜻밖의 인물이 아닐 수 없었고, 이건 네로가 알려준 시나리오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 때부터 혼란이 시작되었다. 레븐스의 등장은 수란 인물을 부각시켰고 답변이 준비되지 않은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게다가 레븐스와 묘한 대립 상태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또한 더욱 당혹스런 일은 루의 시체가 불에 탄 것이었다.
 
  “그냥 갑작스런 발상이었습니다. 이미 죽은 시체를 태우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군요. 물론 진짜 루 님은 아닙니다. 섬에 오기 전, 시체 보관실에서 비슷한 체구의 시체를 미리 훔쳐 갔다 놓은 겁니다. 그리고 레븐스 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래야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죠. 후후. 꽤나 당황했나 보군요? 평소엔 냉철하던 분이 당황하니 신기할 걸요?”
 
  네로는 악마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제야 수는 자신 역시 네로의 장난감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네로는 도와달라는 말로 그녀를 꼬드겼지만 결국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그의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더 이상 이 역겨운 연극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루 때문이었다. 그녀를 제거하고 나면 계속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사람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모든 책임을 네로에게 전가시킨 뒤, 섬을 떠나면 그만이다. 계속 남아 네로에게 유희를 제공하고 싶진 않다.
 
  수는 당장 자리를 피해 루가 있을 방으로 향했다. 빨리 목적을 달성하고 섬을 떠나고 싶었다. 책임은 네로가 지게 된다. 수는 피해자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는 루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녀로 인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그녀만 없었다면 이 빌어먹을 곳에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수는 루가 있는 방문을 거칠게 열어 제겼다.
 
 
 
 
 
  [결말] 5. 지마 이야기
 
  몇 번씩이나 불어닥친 태풍으로 인한 피해액을 환산해 보려다 점점 불어나는 액수에 가슴이 미어져 그만 두었다. 태풍이 피해갈 것이라 보도했던 기상청에 전화를 걸어 가진 욕 다 퍼붓고 싶었지만 그런다 한들 망가져 버린 양식장이 다시 풍성해질 리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지마였다.
 
  담배만 연신 피워대며 한숨 푹푹 쉬고 있을 때 나타난 것이 그 남자였다. 뚱뚱한 듯하지만 근육질의 몸을 가진 그는 말수가 적은 타지 사람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만 그가 제시한 금액은 그러한 음산함을 무마시키기엔 충분한 액수였다.
 
  남자가 원하는 건 별장이 있는 작은 섬으로의 안내였다. 어떤 갑부집 젊은 놈이 꽤 많은 돈을 들여 지은 별장이었는데 지마가 그곳까지 사람들을 운반해 주었기 때문에 항로는 눈을 감고도 찾을 정도였다.
 
  “그 젊은 놈은 수시로 젊은 여자들만 별장으로 초대하는 거 같더라고요.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식 아비가 하는 사업이 부도가 나 망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수송을 맡아서 하던 제 부업도 끊기고 말았죠. 근데 그 별장을 사신 건가요?”
 
  남자는 지마의 질문에 고개를 한번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자는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으려는 듯 했고, 말을 할 때도 일부러 목소리를 변조시킨 듯 엉성한 말투로 이야기를 했다. 게다가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여 얼굴을 감추는 듯한 인상을 비췄다.
 
  “혹시 간첩 아닐까요? 그 별장을 아지트 삼아서...”
  “이 사람아! 지금 세상이 어느 땐데 간첩이야, 간첩은?”
  아내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지만, 수상한 냄새가 나는 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남자는 요상한 제의까지 해왔다.
 
  “한 달 뒤에 사람들이 단체로 이 섬에 오게 될 겁니다. 그때 그 사람들을 섬까지 태워다주고 배가 고장난 척 하여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만큼의 보수는 충분히 해 드리겠습니다.”
 
  갈수록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수상쩍게 쳐다보는 걸 눈치챘는지 남자는 신분증을 보이며 자신이 형사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말로는 범행 용의자들을 별장으로 옮겨놓고 무슨 연극 같을 것을 통해 수사를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거기에 지마가 잠깐 참여를 하면 좀더 수월한 수사가 될 것이라고 남자가 말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는 경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변상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안심을 시켜 주었다.
 
  지마는 망설이는 듯 했으나 남자가 제시한 수고비에 쾌히 승낙을 해버렸다. 남자는 그 섬에서 해야할 몇 가지 일들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한달 후,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6명의 남녀가 섬에 가려고 나타났으며 그 중엔 네로란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보진 않았지만 한달 전의 남자가 네로일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섬에서 한다는 그 수사가 어떤 내용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지만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저 그가 말한 몇 가지 내용만 충실히 이행해 나갔다. 그가 요구한 것은 무언가를 감추는 듯한 분위기를 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가 3년 전에 대한 것을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을 하라고 시켰다.
 
  “사실 나는 루의 친구였다오. 단지 그냥 친구 말이오. 루는 수와 친구였소. 수는 통신을 했었죠. 그들은 서로 통신 비밀번호를 알만큼 절친했답니다. 그런데 사건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지요. 수가 어느 날 통신에서 어떤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오. 둘은 빠른 속도로 친해지게 되었지요. 어느 날 만나기로 했어요. 요새 시트콤에서도 나올만한 스토리가 일어났어요. 수가 그날 일이 있어서 루가 대신 나가게 된 것이오. 루와 그 남자는 친해졌고, 루는 수의 ID를 가로챘지요. 비밀번호도 바꾸고 말이오. 수는 분개했죠. 수는 화가 나서 루를 협박했어요. 루는 옛날에 정신병 치료를 받아서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이미 약혼까지 한 둘의 사이가  깨질지도 모르는 것이었죠. 그래서 말이오, 루는 수를 없애기로 한 거요. 사실 봄비도 루와 나의 친구였소. 루는 돈으로 봄비와 나를 꼬셔서 그녀를 없애기로 한 거요. 루가 수를 불렀고, 나와 봄비가 벽돌로 그녀의 머리를 찍었소. 다행히 수는 죽지 않았지만 말이오. 우리는 그 사건 이후로 다른 도시로 이사가서 그걸 몰랐소. 하지만 나중에 그걸 알게 되었소. 아마 수는 여기 오기 전에 루를 죽였을 거요."
 
  긴 문장이긴 했지만 한달 동안 연습한 것이라 별무리 없이 이야기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잠시만요. 지마 님, 통신이라고 하셨나요?”
  요일이 물어왔다.
  “그래요. 수가 3년 전에 통신을 했었죠. 그 일 때문에 지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고...”
 
  “지금 생각해보니 3년 전쯤에 저와 핼리가 통신을 한 적이 있어요! 천리안으로 했었죠. 흐릿하게 기억나는 게... 그 때 어느 방에서 두 남녀가 서로에게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했었던 게 기억나는데.... 혹시 아이디가...수니짱 아니였나요?”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기 때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랐다. 지마는 그냥 생각나는 데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맞아요. 그게 수의 아이디였죠. 그런데 어떻게? 혹시...”
  “그래요. 그 방에 저와 핼리가 같이 있었어요. 수는 자기가 죽을 뻔한걸 그 방에 같이 있었던 우리의 탓으로 돌린 건지도 모르죠. 그 방에 같이 있었던 사람을 모두 죽일 생각으로 우릴 초대한 건지도 모르죠....”
 
  날카로운 요일의 질문은 무사히 피한 듯 싶었다.
  연극이라곤 했지만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였다. 루라는 여자가 목을 매거나 불에 타는 것도 형사가 꾸민 연극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핼리의 죽음은 뜻밖의 공포로 엄습해 왔다. 그의 시체는 진짜였던 것이다. 연극치고는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부터였다.
 
  네로에게 달려가 어찌된 것인지 물어보았지만 그는 단지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다’고만 말할 뿐 더 이상의 이야긴 없었다. 지마는 직감적으로 네로 역시 핼리의 죽음으로 인해 당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분명 핼리의 죽음은 네로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일임엔 틀림이 없었다.
 
  섬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어 배가 있는 곳으로 향했지만 배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어진 뒤였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단순히 돈 몇 푼에 살인자가 있는 무인도에 갇혀 버리고 만 것이다. 갑자기 절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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