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결말 #1

> 자작소설 > 릴레이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결말 #1

릴레이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천리안 추리문학동호회 회원들

 
  •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초대장을 받은 7명의 남녀들.
  • 이들은 초대장의 글에 이끌려 별장만 떨렁 있는 무인도로 모여든다.
  • 그리고, 계속 되어지는 살인과 공포.
  • 범인은 7명중의 하나라는 것 밖에는 아무런 단서가 없다.
  • 누가 연쇄 살인의 범인인가? 그리고 다음 희생자는? 또한 범인은 무슨 목적으로 살인을 계속 하는 것인가?
  • "그리고 아무도 없었을까?" 는 1998년 천리안 추리문학동호회에서 진행되었던 릴레이 소설입니다.
  • 릴레이 규칙 : 1인당 10 문장씩 스토리를 이어서 릴레이 합니다.
  • 일정 횟수까지 진행되면 릴레이는 끝이 나고, 참여자는 기존 글을 토대로 결말을 낼 수 있습니다.
  • 릴레이가 종료되었기에 문장을 좀 더 매끄럽게 수정하고, 결말까지 정리하여 올립니다. <1998-10-25>
 
  [결말] 1. 요일 이야기
 
  9월의 날씨는 은근히 쌀쌀하다. 특히 바다 바람은 더욱더 날카롭게 피부에 와 닿는다. 이 바람이 피부에 좋다는 소문이라도 있었다면 달갑게 받겠지만, 지금으로선 춥다는 것 외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직 멀었어요, 아저씨?”
  요일은 결국 참질 못하고 선장에게 질문을 던진다. 흔히들 말하는 통통배라는 걸 능숙하게 몰고있던 지마는 요일의 질문에 간단히 답한다.
 
  “잠시 후면 도착합니다.”
  “아까도 잠시 후면 도착한다고 안 했던가요?”
  선장은 더 이상 대꾸가 없다.
  쀼루퉁해진 요일은 선미의 난간에 서서 수평선 너머에 목적지가 보이기만을 학수고대했다. 간간이 섬인 듯한 것들이 보이긴 했지만 그 방향으로 가지 않은 걸 보면 목적지가 아는 듯 싶다.
 
  갑자기 이 여행을 하게된 자신이 바보스럽게 여겨졌다.
  “인간 내면에 잠재된 공포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T.”
  초대장은 2장이었다. 요일과 그녀의 친구인 핼리의 것이다. 단순히 T라고 서명 외에는 보낸 이에 대한 힌트는 어디에도 없었다. 겉봉에 소인이 있기는 하나 그것 만으론 초대한 사람을 추측할 수가 없었다.
 
  “추리클럽에서 보낸 거 아닐까?”
  핼리가 어설픈 추측을 해 보였지만 일리가 있었다. 해마다 추리클럽에선 가상 추리게임을 실시하는데 그곳에서 요일과 핼리가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했었다.
 
  “그럼, 그에 대한 상품인가? 이런 상품이 있다는 이야긴 없었는데...”
 
  보낸 사람이 누구든 간에 요일은 참여 여부를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금 연재중인 추리소설 마감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 분량은 써 놨잖아? 문장 수정이야 여행 중에 하면 될 거 같은데...”
 
  핼리는 여행에 참가하고픈 모양이다. 늘쌍 조용한 것만 좋아하던 녀석이 먼저 여행에 가자고 하니 뜻밖이었다. 요일은 망설이다 오케이를 했지만, 지금은 조금 후회하고 있다.
 
  “지루해.”
  요일은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핼리는 멀미로 인해 쓰러져 있는 상태였고, 함께 있는 다른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선뜻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가을 바다의 바람은 유난히 쌀쌀했다.
 
  통통배 가판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앉거나 서있었다. 그들 역시 T라는 인물에게 초대장을 받고 이 배에 오른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추리클럽에서 주최한 여행은 분명 아니다. 배에 있는 사람 중에 추리클럽에서 본 사람은 핼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도대체 누가 보낸 거지?’
 
 
 
 
 
  [결말] 2. 레븐스 이야기
 
  군대를 마치고, 병원 일을 알아보고 있을 때 이상한 전화를 받았다. 깔깔한 목소리가 마치 입에 무언가를 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절대 아니었다.
 
  상대방은 간단 명료하게 자신의 용건을 이야기했다.
  어떤 섬에 며칠 동안 가 있어달라는 것, 그리고 준비해 놓은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달라는 것이 낯선 목소리의 부탁 아닌 부탁이었다.
 
  단지 그 내용뿐이었다면 ‘미친 놈’이란 소릴 내뱉고 전화를 끊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온라인 구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만한 사례를 하겠다고 말했다.
 
  다음 날, 레븐스는 자신의 통장에 적지 않는 금액이 입금된 걸 확인했다.
 
  낯선 남자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부탁을 들어준다면 입금된 액수의 2배를 더 주겠다는 말을 했다. 솔깃한 제한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불법적인 행위의 가담이라면 많은 돈을 준다해도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섬에서 하게될 일은 일종의 심리 연극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떤 인물의 심리 상태를 알기 위한 것이죠. 정신병으로 앓고 있답니다.”
 
  납득이 갈만한 설명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정체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다는 점은 의심이 갈만했다. 그러나 그만한 돈이라면 충분히 할말한 일인 듯 싶었다.
 
  “간단한 일입니다. 루라는 여자의 약혼자 역을 해 주면 됩니다. 그녀는 정신병을 앓고 있고, 치료하는 도중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이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놀라실 까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그 섬에 살인이 일어날 겁니다. 물론 진짜 살인은 아닙니다. 조작된 살인이니 놀라지 마시고 시나리오대로 연극만 해 주시면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편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가 알려준 시나리오는 순서에 맞게 잘 진행되었다.
  상대방이 편지로 보내준 붉은 색 초대장을 들고 섬에 도착해 루라는 여자의 약혼자임을 주장했다. 수라는 인물이 반발하고 나서는 것도 시나리오 그대로였다. 조금 걱정은 했지만 시나리오대로 진행되니 재미가 있기도 했다.
 
  불에 탄 시체를 옮기는 건 조금 소름이 끼치긴 했지만 그럭저럭 무난히 진행을 되었다. 핼리의 시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핼리의 시체는 진짜였다. 그리고 그 후로 벌어진 몇 번의 사건들, 시체들. 분명 장난이 아닌 실재 상황이었다.
 
 
 
 
 
  [결말] 3. 네로 이야기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나약하다.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때론 힘으로, 때론 지식으로, 때론 말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 애쓴다. 약점이 드러날라치면 어김없이 주먹을 휘두르고 권력을 남용하고, 말로써 상대를 짓누른다. 그런 우스운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경찰 생활을 해 오면서 그러한 것을 보아왔다. 정의감에 사로잡혀 경찰이란 직업을 택했고, 소신 있는 책임감을 수행해 왔었다. 경찰은 그에게 있어 영웅이었다. 정의의 사도였고, 슈퍼맨이었으며, 절대자였다. 하지만 그것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뭡니까, 과장님? 그 녀석은 범인이 틀림없다고요! 그런데 어떻게 한 달도 안돼서 다시 거리를 활보하는 겁니까?”
 
  네로의 다그침을 과장은 단 한마디로 물리쳐 버렸다.
  “증거 불충분이야. 자네가 몇 개월간 노력한 것은 알지만, 법은 증거를 필요로 해.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은 무죄일 수밖에 없어.”
 
  “제기랄.”
  형사 생활에 관록이 붙을수록 현실 세계에 대한 비참함은 날로 쌓여만 갔다. 아무리 범인을 잡고 또 잡아도 말발이 좋은 변호사를 선임하면 무죄란 이름으로 풀려났다. 경찰을 꿈꾸던 때의 환상은 환상 그 자체로 끝나버렸다. 정의의 사도도, 슈퍼맨도, 절대자도 현실과 타협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그 역시 현실과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
 
  “손님이 많군요? 물장사도 할만한가 봐요? 그런데, 요즘 이곳에 미성년자를 고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던데...”
 
  이 말에 유흥업소 주인은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곧바로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나약함을 커버했고, 네로는 직위로써 자신의 나약함을 커버할 뿐, 그 어떤 의미도 없다. 현실과 타협함으로써 그들도 편하고, 자신도 부를 누릴 수 있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정의의 사도도, 슈퍼맨도, 절대자도 아니었다. 꿈을 잃은 나약한 인간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이 섬에 와서 인간의 나약함을 다시금 느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나약함을 커버하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목소릴 높이고, 남을 의심하고, 헤픈 추측을 일삼았다. 진실을 갈구하면서도 목숨 부지에 여념이 없다. 진실을 찾는다 해도 자신의 목숨은 살릴 수 없다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음이 틀림없다.
 
  네로 자신이 권총이 있다고 밝힌 순간 그들은 겁을 먹었다. 같은 피해자란 동료 의식이 있었다면 그들은 오히려 안심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나약한 존재이므로 남을 믿지 않을 것이다. 권총이라는 절대적 무기를 그들은 적으로 간주해 버린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식사 준비되었어요.”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들어온 은요일의 말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집을 피우던 그녀는 겁에 질린 토끼 마냥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고집을 부리더니 이제는 순종이란 무기로 대처를 한 것이다.
 
  피식~ 하고 네로는 웃고 만다.
  “조금 있다 가지요. 고마워요.”
  네로는 그렇게 말을 하고, 은요일을 물러나게 했다.
  공포에 질려도 본능을 억제하지는 못하는가 보다. 아니 어쩌면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본능이 더욱 드세게 이성을 밀어내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배가 고픈 건 참기 힘들다.
 
  네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의 테이블에 앉아 분위기를 살펴보니 침체된 분위기가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들은 조용히 자신의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침묵을 일관했다.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침묵으로 자신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걸 막고 있는 것이다. 있지도 않은 권총의 존재가 그들의 심리를 두려움으로 가득 메운 것이 틀림없다. 같은 피해자라는 동료 의식 속에 권총의 존재가 들어서자 그들은 스스로 패를 가른 것이다. 이제 네로라는 존재를 두려워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
  네로는 스스로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들 속에는 자신도 포함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지금의 상황은 네로 자신을 당황과 혼란의 상태로 몰고 있으니 말이다. 네로 역시 두렵기는 그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니다.
 
  “저어...” 봄비가 침묵을 견딜 수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이 곳에서 탈출은 불가능 한가요?”
  어색한 침묵이 깨지자 그들은 자신들의 보호를 위한 수단을 바꾸기 시작했다.
 
  봄비의 질문에 대답을 한 건 레븐스였다.
  “글쎄요. 우리가 타고 왔던 배도 사라졌고, 지나가는 배들도 없는 것 같으니... 그렇다고 이 섬에 주기적으로 배가 오는 것 같지도 않고요.”
 
  은요일도 침묵이 깨진 게 마음에 드는지 한마디했다.
  “하지만 이 섬에는 이렇게 별장이 존재하잖아요? 그렇다는 건 사람들이 오고간다는 이야기인데... 별장에 다급한 일이 생기면 사용할 긴급 보트 같은 것이 있을지 몰라요? 아니면 육지와 연락을 하기 위한 무전기 같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이 인간인 듯 싶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도라의 상자가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 네로는 판도라의 후손들이 품고 있는 희망을 끝까지 짓밟고 싶어졌다.
 
  그가 말한다.
  “긴급 보트 같은 것은 없습니다. 이 섬을 샅샅이 수색한 것은 기억하시죠? 보트가 있었다면 그 때 발견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전기는 지하 창고 - 핼리 님이 살해당한 그곳에 있기는 있었지만, 부서져 있었어요. 고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이 찾아왔을 것이다. 네로는 속으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기대했다.
 
  “뗏목이라도 만들어서 탈출해요!”
  봄비는 끝까지 희망을 품으려 했다.
  “나무는 섬에 많아요. 그리고 별장 안에는 필요한 도구나 연장도 있을 거예요. 그걸 이용하면...”
 
  “뗏목을 만드는 게 영화나 소설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설령 뗏목을 만들었다 쳐도 육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어요. 이 섬은 육지에서 한참 떨어져 있습니다. 나침반도 없이 무작정 바다로 나갔다가는 미아가 되기 십상이죠. 나침반이 있다해도 부족한 식량과 4명이라는 인원이 무사히 육지에 다다른다는 보장은 없어요.”
 
  네로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희망을 꺾는 신(神)의 역할을.
 
  “왜?” 봄비가 참지 못하고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왜 자꾸 그런 말씀만 하시는 거죠? 그렇게 부정적인 말만 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잖아요? 나는... 나는 이 섬에서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고요!”
 
  고개를 숙인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치밀어 오른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희망이 꺾인 비둘기 마냥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희망을 잃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자 네로는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합니다.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저 역시 이 섬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뗏목을 만들자는 이야긴 현실성이 없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들의 안전이라고 생각됩니다.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겨서는 안되겠죠.”
 
  “그럼 이제 어떻게 하자는 거죠?”
  은요일이 물어왔다. 그녀는 어리지만 당찬 면이 있다. 어쩌면 그녀 역시 네로처럼 지금의 상황을 두려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즐기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겠습니다, 지금으로썬.”
  결국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은요일은 아직도 흐느끼고 있는 봄비를 소파에 앉혀 놓은 뒤 식사 뒤처리를 했고, 레븐스는 응접실을 왔다갔다하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네로는 봄비와는 다른 소파에 몸을 가누고는 몇 년 전에 있었던 공금횡령 사건을 떠올렸다.
 
  그 사건은 모 금융 업체에서 일어났었다. 업체 측에선 고객들의 눈을 의식해 비밀리에 사건을 조사했고, 그 사건은 네로에게 맡겨졌다. 수라는 인물을 처음 만나게 된 건 그때였다. 그녀는 그 사건의 용의자였다.
 
  네로가 보기에 그녀는 자신의 나약함을 말로써 커버하는 분류에 속했다. 당당한 눈빛을 똑바로 보내며 진부한 표현을 배제한 - 요점만으로 가득 찬 문장을 나열했다. 당돌하고 딱딱하며 차가운 이미지가 그녀의 첫 느낌이었다.
 
  그녀는 어스름한 작은 공간에 불빛이라곤 백열등 밖에 없는 취조실에 거친 낯선 남자와 마주 앉아 있어도 조금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네로는 그녀를 관찰하고 싶어졌다.
  “그럼, 공금 횡령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그 점에 대해선 이미 말씀 드렸을 텐데요? 횡령 사건이 있으면 그건 당신들이 파헤쳐야 할 문제 아닌가요? 전 그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밝혀지면 당연히 죄 값을 치를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저의 인격을 모독한 대가를 받을 겁니다.”
 
  당돌한 여자였다. 네로가 조사한 바로는 그녀가 이번 공금횡령의 범인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하게 이야기를 했다. 죄를 인정하는 것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은 가만히 있을 테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태도였다.
 
  사건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흐지부지 흘러갔다. 수는 풀려났고, 네로는 상사에게 추궁을 당했으며, 사건은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이미 그 때는 네로의 손에 의해 절대적인 증거가 소멸된 상태였다.
 
  사람들을 모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그 때부터였다.
  예전부터 구상해 오던 시나리오를 구현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 첫 번째 인물로 수를 선택했다. 냉철함, 차가움, 그리고 당당함이 골고루 섞여있는 그녀야말로 이 시나리오의 주요 인물로선 적격이었다.
 
  수를 택한 이유는 비단 그 뿐만은 아니다.
  그녀에겐 루라고 하는 유일한 친구가 있었다. 수를 조사하는 도중 알게된 이 루란 여자는 이중인격이라는 묘한 정신병을 지니고 있었다. 평소엔 얌전하고 말없는 문학소녀 같은 여자로, 어쩔 때는 거칠고 차가운 악녀로 둔갑을 한다. 루란 존재를 관찰하면 할수록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었다.
 
  현실적이고 딱 부러지는 성격의 수와 이중인격을 지닌 루. 어딘가 모르게 매치가 되지 않는 파트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의 사이는 절친했다. 아니 친하다기보다는 수가 루에게 지나칠 정도로 헌신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 싶다. 루가 악녀로 변하여 거리에서 갖은 사고를 치고 다니면 수가 어김없이 모든 일을 수습해 나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런 관계를 유지하며 지낸 듯하다. 이에 대해 수의 불만이 있을 즘도 하지만, 네로가 관찰하는 중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다.
 
  여하튼 두 캐릭터는 네로를 흐뭇하게 했다. 시나리오를 그들에게 맞게끔 수정하는 일 또한 즐거움의 하나였다. 하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들을 어떻게 시나리오에 참여시키느냐 하는 문제였다.
 
  “그런 일에 제가 참여할 이유는 없는 것 같군요.”
  공금 횡령을 무마시켜준 대가로 그녀를 끌어들이려 한 계획은 순전히 네로의 실수였다. 수는 만만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증거가 이미 사라진 상태라는 것과, 네로 역시 범인을 놓아준 약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수는 딱 부러지게 거절했다.
 
  “공금 횡령은 행크라는 남자와 합의를 하기 위해서죠? 행크에게는 앵크라는 동생이 있었고, 그 동생을 유혹하여 폭행을 한 것은 루. 행크는 동생의 복수를 하겠다고 했지만 그 형제는 사이가 좋다고 할 수도 없는 사이. 그는 복수라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을 테고, 당신은 곤경에 처한 친구를 위해 공금 횡령도 마다하지 않았죠. 알아보니 그 행크라는 자는 뒷골목에서 알아주는 꼴통이더군요. 그를 따르는 똘마니도 몇 명 있고...”
 
  네로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수에게 말했다.
  “경찰은 아직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만일 루에 대한 걸 경찰에게 알리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행크에게도 상당히 안 좋은 일이 되겠죠. 다혈질의 깡패 행크는 어쩌면 루에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 친구 루는...”
 
  확실히 이 말은 효력이 있었다. 동요하는 듯한 기색이 수의 얼굴에 역력히 들어 난 것이다. 그녀가 말했다.
 
  “내게 무엇을 원하는 거죠?”
  이로써 수와 루를 참여시키는데 성공했다. 수가 참여를 하니 루도 참여하게 됨은 물론이다.
 
  루와는 별도의 만남이 있었다. 그녀의 사악한 다른 인격은 네로의 시나리오를 흡족해 하는 듯 했다. 네로는 그러한 루를 좀더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차곡차곡 진행되는 계획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나머지 인원을 채우는 일이었다. 문뜩 생각난 것이 추리학교였다. 몇 년 전에 고문 자격으로 참가했던 추리학교에 생각에 미치자 그는 당장 작업에 착수했다.
 
  그 곳에서 실시한 가상 추리게임의 우승자가 적당할 듯 싶었다. 그들은 어설픈 추리실력을 뽐내며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들일 것이다. 그걸 깨버리는 것 또한 재미있는 일일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가 아닌 실재 상황에서 그들의 어설픈 추리력이 얼마나 빛을 내는지 궁금했다.
 
  우승자 명단은 쉽게 손에 들어왔다. 추리학교는 그의 관할에 있었고, 조사할 것이 있다는 명목 하에 담당자는 의심 없이 명단을 넘겨주었다.
 
  “작년 우승자는 레븐스라는 남자로 정신과 레지던트 생활을 했으며 현재는 군복무 중. 올해의 우승자는 은요일이라는 여대생 추리작가.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이로써 시나리오 참여자는 수, 루, 레븐스, 은요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레븐스는 군복무 중이므로 제외시킬 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그가 정신과 레지던트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정신병을 가진 루와 정신과 의사의 로맨스라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게다가 이 시나리오를 실행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그쯤이면 군복무 기간이 끝날 것이다.
 
  네로 자신까지 포함해서 모두 5명의 인원이 결정 났다. 인원이 더 필요했다. 네로는 은요일의 친구이자 올해 준우승자인 핼리도 포함시키기로 했다. 얌전하고 말수가 적은 것이 탐정 역으론 제격이었던 것이다.
 
  봄비를 계획에 추가시킨 것은 몇 달이 지나서였다. 약점을 취재해 그것을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 네로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부류의 여자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로써 시나리오에 등장할 7명의 캐릭터가 완성되었다.
  지마라는 인물을 마지막에 추가시킨 것은 시나리오 무대가 될 무인도를 물색하던 중 갑자기 떠오른 착상이었다. 주인공들을 무인도로 데려다 준 뒤 배의 고장으로 일행에 참여하게 된다는 엉뚱한 발생으로 생각해 낸 것이다. 게다가 뱃사람답게 뚝심이 있고, 듬직하지만 생각하는 깊이가 낮다는 것이 일행에 참여시켜도 흠이 되지 않는 이유였다.
 
  무인도 별장을 물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렵게 발견하기는 했다.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고립된 장소라면 시나리오를 실행하기에는 충분했다. 굳이 무인도를 고집한 것은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과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한 배경으로 진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우연히 집어든 그 추리소설에서 이번 시나리오의 많은 영감을 얻은 건 사실이다. 그 소설에서는 법으로 처벌하기 힘든 죄를 지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재판관이 등장한다. 네로의 시나리오에선 나약한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보호 장구를 벗기고 그들의 본성을 드러내는 신(神)이 등장할 것이다.
 
  이제 설정된 캐릭터를 시나리오에 참가시키기 위한 미끼를 준비해야 했다. 자신의 생활이 있는 사람들을 낯선 여행에 끌어들이기 위해선 그만한 미끼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지마는 돈으로 해결을 했다. 약간의 시나리오 일부를 주고 그대로만 해주면 거대한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는 쉽게 응해 주었다.
 
  봄비 역시 별 무리가 없었다. 그녀는 약점이 있었고, 그것이 드러나는 걸 두려워했다. 협박편지 하나로 그녀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갓 제대한 레븐스는 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선뜻 내켜하진 않았지만 순순히 응해줬고, 만족스럽게 레븐스를 끌어들였다.
 
  호기심 많은 여대생 추리작가도 그리 큰 문제는 안되었지만, 핼리는 경우에는 좀더 세심한 주의를 요했다. 그에겐 약점이 될만한 것이 없었고, 이번 시나리오에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강렬한 미끼가 필요했다.
 
  미행은 네로의 주특기 중 하나였고, 그 결과로 핼리의 약점을 잡을 수 있었다. 핼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성격이었으며, 주의의 평판도 괜찮은 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성적 욕구가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조심스럽게 음란 서적과 음란 비디오를 구입하는 장면에서 그의 약점을 만들어낼 계획을 세웠고, 그 계획은 어렵지 않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입이 무겁고, 약간의 연기력이 있으면 좋겠는데, 쓸만한 애가 있나? 사건 수사에 필요해서 그러니 협조 좀 해 주게.”
 
  네로를 두려워하는 유흥업소 주인은 손쉽게 아가씨 한 명을 소개시켜 줬다. 배우가 꿈이었다는 그 아가씨는 풍부한 돈을 쥐어주자 어떠한 짓이라도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유흥업소 아가씨는 핼리에 접근을 했고, 교묘하게 유혹을 한 뒤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나서 강간을 당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네로가 지시한 대로 연기를 했다.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핼리가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는 순진하게도 네로의 미끼를 아무런 의심 없이 덥석 문 것이다.
 
  봄비에게 이 사건을 목격하도록 꾸민 것도 계획의 일부였다. 나중에 그녀의 진술에 사람들은 더욱 당황해 할 것이다. 핼리가 미끼를 물기 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제보를 했고, 건수가 생긴 봄비는 속는 셈치고 그 장소에 나타났다. 핼리의 강간에 그녀는 돈이 생길 건수에 즐거웠을 것이다. 또한 핼리를 궁지에 몰아넣은 강간이 조작된 것임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뜻밖의 행운이라 생각했겠지만 네로는 그쯤에서 그녀에게 압력을 가했다. 그녀의 약점을 이용하여 이번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터치를 못하도록 말이다. 그녀가 그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만이 네로에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변조된 음성으로 그녀에게 제보를 주고, 압력을 가했으므로 네로에 대해 그녀가 알리는 없다. 섬으로 가는 배에서 봄비가 핼리와 강간 사건을 조작한 여자의 얼굴을 보고 흠칫해 하던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었다.
 
  “커피 드시겠어요?”
  네로의 공상을 봄비가 깨버렸다. 현실로 돌아온 네로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공포에 짓눌려 울음을 터뜨린 봄비를 쳐다본다. 마음의 안정을 찾았는지 그녀는 원래의 침착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고, 서비스라도 하듯 모두에게 커피를 권하고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여자로군.’
  문뜩 이 섬에 와서 저 여자에게 커피를 얻어 마신 적이 몇 번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의외로 상냥한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그녀는 가끔 히스테리 컬한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공포에 질린 듯한 그녀의 모습에 만족감이 들기는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가 생각한 그녀의 이미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커피를 대접하는 자상함을 보이고, 가끔 히스테리 컬한 발작 증세를 보이며, 남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갈취하는 여자라... 재미있는 여자야.’
 
  그녀가 추리게임의 우승자였다는 건 네로조차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뜻밖의 우연이었지만 네로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현상이었다. 그로 인해 그들은 엉뚱한 추리를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계획처럼 순조롭진 않았다. 뜻밖의 사건을 예상치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처럼 치명적이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 시발점은 핼리의 살인이었다.
 
  ‘시나리오에는 살인이 없었어.’
  시나리오에 살인 흉내는 있었다. 하지만 진짜 살인은 없었다. 물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한 끝에 살인을 저지르는 행각에 대한 예상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살인들은 그것과는 성질이 달라 보였다. 누군가 고의로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핼리의 살인과 지마의 살인, 그리고 수의 행방불명. 모든 것이 틀어진 시나리오였다. 게다가 그 범인은 권총까지 훔쳐갔다.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빌어먹을. 이건 내가 세웠던 시나리오가 아냐! 누군가가 방해를 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그 자가 누구지?“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