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4 잠깐 만난 저승의 친구들

> 자작소설 > 영혼

Act.4 잠깐 만난 저승의 친구들

  Act.4 잠깐 만난 저승의 친구들
 
  방은 4인용으로 되어있는 듯 2층 짜리 침대가 2개 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없었다. 침대에는 이미 2명의 영혼이 자리를 잡고 서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영호가 들어서자 그들은 새로운 방 손님을 쳐다보았고, 이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금방 그 이유가 자신이 입고 있는 잠옷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첫사랑이었던 여인이 통통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인 ‘둘리’의 그림이 가슴팍에 그려져 있는 잠옷이 그들에겐 우스꽝스럽게 보인 것이다.
 
  만화 캐릭터인 ‘둘리’는 그녀가 매우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맨 날 만나기만 하면 이름 대신 ‘둘리’라는 호칭으로 부르곤 했었는데. 잠옷에 새겨진 ‘둘리’ 역시 그녀가 직접 만들어서 붙여준 것이었다. 그녀를 잃고 나서도 이 잠옷은 꼬박 입고 있었다.
 
  “만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양반인 것 같군.”
  보통 키에 등치가 좋아 보이는 남자가 인상 좋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인사부터 해요. 나는 남대우라고 하고, 이 쪽은 이병철이라고 합니다.”
 
  영호는 다른 한 명을 쳐다보았다. 남대우라고 소개한 남자보다 조금 작은 키에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는 그 남자는 들어올 때부터 뭐가 좋은지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문영호라고 합니다.”
  “자자, 이리로 앉아요. 이렇게 저승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이야기나 나눠요. 담배 피우실래요?”
 
  “아뇨, 전 담배 못하는데요.”
  “그래요? 애석한 일이네요. 인생의 유일한 즐거움인 담배를 모르시다니. 저승에서도 담배를 피우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아무튼 이리 앉아요.”
 
  영호는 그가 가리키는 곳의 침대에 덥석 주저앉았다.
  “그래, 형 씨는 어떻게 죽어서 이곳에 왔나요?”
  영호는 대우가 물고 있는 담배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걸 알아차린 대우가 멀쑥하게 웃었다.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잠을 자다가 저승사자에게 붙들려 온 모양이네요. 난 술집에서 술 먹고 나오다가 그만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되었죠. 다행이 옷 속에 담배가 있길래 이렇게 물고 있어요. 이제는 몇 개비 남아있지 않는데 담배 없이 어떻게 저승생활을 할지 걱정이에요.”
 
  생긴 것 답지 않게 여성스럽게 말하는 대우에게 영호는 경계심을 풀었다. 나쁜 영혼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름이 문영호라고 했던가요? 그래 형 씨는 어떻게 죽었어요?”
 
  “직장 선배와 같이 술을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 곤히 자고있는데 예쁘장한 저승사자가 나를 깨우더니 일어나라고 하더군요. 처음엔 도둑인줄 알았는데, 자신은 저승사자고 내가 죽은 영혼이니 저승으로 가자고 하기에 따라 온 겁니다.”
 
  “재미없이 죽었네요. 하하. 저승사자가 일어나라고 할 때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이곳에 오지 않았을 텐데.”
 
  “네?”
  “전에­그러니까 이승에 있을 때, 사후 세계에 대한 책을 본적이 있어요. 그때 읽은 건데, 사람이 죽음을 코앞에 두었을 때 예의 저승사자가 나타나서 일어나라고 한다더군요. 그때 일어나면 죽는 것이고 계속 버티면 다시 살아난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너무 술에 취해 있어서 그 생각을 미쳐 못하고 벌떡 일어났지 뭐예요. 저승사자가 너무 섹시했거든요. 난 술집 여자가 일어나라고 하는 줄 알았어요.”
 
  자신이 말하고도 우스운지 대우는 키득거렸다. 옆에 있는 병철도 같이 웃었다.
 
  “그러기에 여자를 너무 밝히면 안 된다니까요.”
  “그러는 당신도 여자 때문에 이곳에 왔잖아요?”
  “그런가? 하하하.”
  병철의 웃음소리가 여자 같아서 영호는 소름이 돋았다.
  ‘여자 같은 남자들이군.’
  영호는 아차 싶었다. 갓 영혼이 된 영혼들끼리는 생각을 쉽게 읽고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들은 자신의 말에 취해 웃고있는 탓에 영호의 생각을 못 느낀 듯했다.
 
  “이 친구는 어떻게 해서 저승으로 오게 되었냐면...”
  대우가 말문을 다시 꺼내려하자 병철이 가로막았다.
  “그건 내가 이야기할게요. 괜찮겠죠, 문영호 씨?”
  “그럼요.”
  영호는 병철의 여자 같은 말투에 돋아나는 닭살을 느끼면 대답했다.
 
  “L양이라고 하는 아가씨가 있었는데 나와 같은 과 여학생이었어요. 그런데 나를 좋아하고 있었나 봐요. 과 모임으로 술집에서 술을 먹었는데, 지나치게 먹는 바람에 속이 거북했어요. 화장실에서 오바이트를 하고 나오는데 화장실 앞에 L양이 서있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나를 팍 벽에 밀치잖아요. 얼마나 이 어린 가슴이 놀랐는지 몰라요. 더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죠. L양이 갑자기 내 입에다가 자신의 입을 들이밀잖아요. 어머나, 너무 와일드한 거 같죠?”
 
  영호는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쪽지를 하나 건네주고는 도망갔어요. 호호.”
  쪽지라는 단어가 나오자 영호는 가슴 한 구석이 아파 왔다. 미스 정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병철이 계속 말했다.
  “쪽지에 뭐라고 써있었는지 아세요?”
  대우가 끼여들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써있었죠? 정말 이 사람은 복도 많아. 나는 평생가도 그런 여자가 없었는데.”
 
  “에이, 대우 씨하고 나하고 같나요. 아무튼 그래서 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호호.”
 
  대우는 병철의 그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들은 허물없이 웃으며 담배를 피워댔다.
 
  “얼굴도 괜찮고 해서 나는 L양하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어요. 그렇다고 달려드는 호박을 넝쿨째 잡을 수는 없잖아요. 채하면 안되니까요. 그래서 마구 튕겼죠. 나는 따로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서 생각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요, 호호. 정말 난 머리가 너무 좋은 거 같애.”
 
  “이 사람이. 나 같았으면 얼씨구나 하고 여관으로 데려갔을 텐데. 암튼 부럽다, 부러워.”
 
  “가만히 있어봐요. 그 다음 이야길 해야죠. 그런데, 내가 너무 많이 튕겼나 봐요. 두어 달 지나니까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어요. 전에는 시간이 없어서 만나지 못한다고 하면 울며불며 매달렸었는데, 이제는 만나자고 해도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나를 피하잖아요. 정말 슬프더라고요.”
 
  “바람둥이라는 걸 안 거지, 뭐.”
  “사람 마음이란 게 참 묘해요. 그렇게 나를 피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오히려 내가 쫓아다니게 되더라고요.”
 
  “벌받은 거지. 그러기에 달려들 때 잡았어야 하는 거라니까.”
  “피하는 것이 점점 노골적으로 되자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어요. 집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집 앞 공중전화에서 ‘여기 집 앞인데 나오지 않을래?’라고 했더니 안된데요. 난 너무 슬퍼서 그만 울어버렸어요.”
 
  영호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날 너무너무 슬퍼서 포장마차에서 술 많이 마셨어요. 소주를 쉴새없이 마시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어떤 아저씨가 마구 일어나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일어났더니 자기가 저승사자라고 하지 뭐예요, 글쎄. 그때서야 내가 죽었다는 걸 알았어요.”
 
  영호는 쓸 웃음을 지었다.
  대우가 결론을 내듯 말했다.
  “결국은 술 취해서 길바닥에서 자다가 얼어죽은 거네.”
  “그래도 얼마나 슬픈데요. 아직도 슬퍼요. 엉엉.”
  병철은 정말 우는 것 같았다. 영호는 뭐라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아무튼 여자란 건 참으로 요물이라니까요.”
  대우가 한마디했다. 그 말에는 영호도 찬성이었다. 미스 정의 양면성에 대해서 지금은 거의 인정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형 씨는 이승 때 뭐하고 지냈어요?”
  “저요? 조그만 출판사에서 일했었습니다.”
  “애인은?”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애인이 있었으면 이 사람처럼 얼마나 슬퍼했을까. 차라리 홀가분하게 저승으로 여행 오는 것도 괜찮을 거야. 하하.”
 
  영호는 이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이들은 쉴새 없이 이승 때의 이야기를 추억거리라도 되는 듯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이 여자 이야기였지만, 동료들로부터 숙맥이라 판정 받은 영호로서는 여자의 새로운 면을 발견해 들어가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 버렸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는 듯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하루는 꼬박 지난 듯 싶기도 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잠을 자고 싶지 않았기에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를 끊게 한 것은 갑자기 들려온 노크소리였다.
 
  “새로운 영혼인가 보군. 아직 한 자리가 비어있으니까. 들어와요. 이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우.”
 
  문이 열리고 영호를 안내했던 안내원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안내원의 옆에는 아무 영혼도 없었다.
 
  대우가 물었다.
  “무슨 일이죠?”
  “남대우 씨, 이병철 씨, 문영호 씨. 저를 따라오세요.”
  “드디어 시간이 되었나 보군요. 자, 이제 나가죠.”
  ‘이삼일 걸린다더니 벌써 재판인가?’
  그렇게 수다스럽던 대우와 병철은 마지막 남은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이에도 대우는 한마디했다.
 
  “이제 심판의 시간이 다가왔네요.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영호, 대우, 병철은 안내원을 따라 복도를 걸었다. 대우가 영호의 귀에다 대고 말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기대하던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겠죠?”
  영호는 바짝 긴장했다. 드디어 지옥과 천당의 갈림길로 들어서는구나 생각을 하니 이 자리를 피하고만 싶었다.
 
  안내원이 안내한 곳은 처음에 왔었던 대기실보다는 작고 아담한 거실이었다. 이승의 법원과는 달리 기다란 의자 대신 소파가 차례대로 놓여있었고, 판결을 기다리는 영혼들 몇 명이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영호를 비롯한 세 명은 빈자리를 찾아 나란히 앉았다.
 
  영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런 장식이 없었고, 방에는 방금 들어왔던 문과 세 개의 문이 더 있었다. 한 개의 문은 화려한 것으로 보아 염라대왕이 있는 방과 연결된 문 같았고, 다른 두 문은 각각 검정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천당과 지옥으로 가는 문 같았다. 그는 점점 두려워졌다.
 
  옆에 앉은 대우를 보니 그는 뭔가를 집중적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영호는 대우의 시선을 쫓아보았다. 대우가 시선을 고정시킨 곳은 앞쪽 소파였는데, 소파에는 세 명의 영혼이 앉아있었고, 그 중 한 영혼은 벌거벗은 채로 앉아있는 예쁜 아가씨였다.
 
  대우가 조용히 속삭였다.
  “저승에서도 볼거리가 많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저승으로 올 때는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오나봐요. 주머니에 담배가 들어있는 채로 내가 이곳에 온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저 여잔 아마도 벌거벗고 남편 몰래 애인이랑 바람을 피다가 남편에게 죽어서 온 것 같네요. 후후, 아무튼 보기는 좋은 걸요.”
 
  대우의 침흘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영호는 관심 없다는 듯 다른 영혼들을 살펴보았다. 벌거벗은 아가씨와는 반대로 심하게 일그러진 모습의 영혼도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듯 싶었다.
 
  염라의 방문이 열렸으므로 영호를 비롯해 대우, 병철은 시선을 그쪽으로 옮겼다.
 
  나온 영혼은 피곤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였다. 무엇 때문인지 고개를 푹 숙인 힘없는 모습인지라, 보는 영호로서는 안쓰러울 정도였다.
 
  같이 나온 안내원은 오싹할 정도로 인상이 좋지 않았다. 비록 질 좋은 옷을 입고 있었기는 했지만 험상궂은 얼굴을 감추지는 못했다. 그 안내원은 중년 남자를 검은 문으로 안내했다. 중년 남자는 애원하는 듯한 눈빛을 안내원에게 보냈으나 안내원은 냉정했다. 검은 문을 열고, 중년 남자를 주시했다. 포기한 지친 영혼인 중년 남자는 힘없이 검은 문으로 들어섰다. 안내원은 남자가 들어가자마자 문을 꽝하고 닫아버렸다. 그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 영호는 깜짝 놀랐다.
 
  ‘내가 저 문으로 들어가면 어떤 기분일까?’
  검은 문으로 들어가는 남자의 모습 때문인지 어수선했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대우 역시 벌거벗은 여자에게 신경을 끊고 초조한 듯 손을 만지작거렸다.
 
  다음으로 호명되어 불려간 영혼은 깔끔한 신사복을 입은 늙은 남자였는데, 뜻밖에도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영호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내려고 애를 썼다.
 
  옆에서 대우가 속삭였다.
  “저 사람은 보나마나 지옥으로 갈 거예요.”
  영호가 물었다.
  “누군지 아십니까?”
  “누군지 몰라요? 그 외 K라고 국회의원 있잖아요. 얼마 전에 세금 횡령 건으로 매스컴에서도 요란했잖아요.”
 
  그제야 그 늙은 남자가 일주일 전에 뉴스며 텔레비전에서 떠들던 K 국회의원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금 횡령뿐만 아니라 유명 여자 영화배우 및 모델들과 대마초를 흡연하고, 섹스까지 했다는 사건까지 들통이나 꽤나 유명해진 사람이었다. 그 사건이 밝혀지고 며칠 뒤에 그의 별장에서 변사체로 발견이 되어 또다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인물이었는데,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보나마나 피해자들의 식구들에게 죽임을 당했거나, 배후 조직에서 더 시끄러워질까봐 해치웠을 거예요. 저런 사람들은 죽어도 싸요.”
 
  영호는 어제 살아있을 때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들이 떠올랐다. ‘조’에 가까운 세금 횡령과 함께 몇십 명의 여배우, 여모델과의 섹스, 대마초 흡연에 대한 기사들. 문 선배가 시발시발 하면서 욕하던 것이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지옥으로 가겠죠?”
  그 동안 가만히 있던 병철이 한마디했다. 대우는 분명히 그럴 거라 하면서 말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그 둘은 다시 수다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판결은 오래 걸리는 것 같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나자 안내원과 함께 K 국회의원이 나왔지만, 대우의 예상대로 검은 문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안내원은 당당하게 흰 문을 열었고 K 국회의원을 들여보내는 것이었다.
 
  영호와 대우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저 안내원 눈이 삔 거 아냐? 아니면 색맹이던가. 어떻게 만인이 공인하는 나쁜 놈을 천당으로 보낸단 말이야? 이건 비리야, 비리. 비리라고. 안 그래요, 문영호 씨?”
 
  “정말 그렇군요. 염라대왕이 실수할 리가 없을 텐데. 아니면 저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인데 누명을 썼거나 다른 이유로 그렇게 보도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소설도 아니고 그런 일이 실재로 있겠어요? 말도 안돼. 비리야, 비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호 역시 의문이 생겼다. 며칠동안 떠들썩했다는 것은 K 국회의원 사건이 사실로 판명 났기 때문일텐데.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대우는 작은 일에도 꽤나 흥분하는 타입 같았다. 그는 K 국회의원 다음으로 들어간 영혼이 천당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찍어 본 다음,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비리’라고 하면서 병철과 영호에게 떠드는 것이었다. 영호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우가 호명되어 나갔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V’자를 그려 보이고는 염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영호와 병철은 대우가 나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대우가 나온 것은 들어간 지 20분이 지나서였다. 꽤나 흥분했는지 씩씩거리면서 나온 그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이었다.
 
  영호는 그가 천당표를 받았는지 지옥표를 받았는지를 그의 표정에서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대우는 우리 쪽을 가리키며 안내원에게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안내원은 처음에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끈질김에 질렸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대우가 영호 쪽으로 다가왔다.
  “인상만큼이나 안내원 성질 더럽네요. 잠깐 이야기만 한다니까 안된다잖아요. 지옥 가서 한동안 고생할 사람인데 잠깐동안 짬도 못내 주냐고 했더니 허락해 주네요.”
 
  영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대우 씨는 지옥으로 갑니까?”
  “그래요.”
  “어머나.”
  병철이도 놀란 듯했다. 하지만 대우는 의외로 웃고 있었다.
  “지옥 갈 사람이 웃다니...”
  영호는 ‘미쳤나 보군’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그보다는 대우에게 허락된 짧은 시간 동안에 염라의 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는 것이 더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대우도 알았다는 듯이 간단 명료하게 말해주었다.
 
  “염라 씨가 되게 웃기데요. 들어가서 한동안 웃었어요. 그래도 지옥이라니 기분이 되게 찜찜해요. 그래도 어쩌면 나한테는 천국일지도 몰라요.”
 
  병철이 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이에요?”
  “여자들만 있는 지옥으로 가거든요. 이승 때 여자들을 많이 울렸다고 그리로 보내는가 봐요. 이제 가야겠네요. 저 무섭게 생긴 안내원이 자꾸 째려보는 걸요. 들어가서 불만스러운 것은 마구 따져요. 염라가 보기 보단 꽤 멍청하니까요. 그럼 잘들 있어요. 환생해서 봅시다.”
 
  대우는 손을 흔들며 안내원이 열어 준 검은 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호는 한동안 어안이 벙벙했다. 대우가 하고 간 말들을 다시 되새기면 뜻을 해석하려 했다. 결국 영호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염라에게 따지라는 말과 자신은 여자들의 지옥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대우 씨는 좋겠다. 나도 그곳으로 가고 싶은데.”
  다음으로 불려간 영혼은 병철이었다. 병철이는 조용하게 염라의 방으로 들어갔다.
 
  15분 뒤에 나온 병철은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영호에게 보여주며 웃었다. 그 역시 검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대우처럼 여자들만 있다는 지옥으로 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저승이란 낯선 곳에서 저승사자 쥬리만큼이나 말을 많이 했던 친구들이었는데.
 
  ‘쥬리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안내원이 영호를 호명했다. 이번에도 ‘영오’란 이름으로 호명되었기 때문에 인상을 찌푸려야 했다.
 
  ‘저승에서도 한번 이름을 잘못 기재하면 계속 그렇게 불려지는가 보군. 염라에게 따져봐야겠어.’
 
  안내원이 염라의 방문을 열어 제겼다. 영호는 스스럼없이 그곳으로 들어갔고, 안내원이 문을 닫았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