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08. 제목없는 채팅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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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08. 제목없는 채팅 러브

행복 카페 이야기

Happy Cafe Story

이야기 여덟

제목 없는 채팅 러브

이정세 지음

 
  카페 안
 
  그 형이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은 1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추운 날 밤이었다. 날씨도 어지간하게 추워지고 카페 안에 손님도 없고 해서 일찌감치 문을 닫고 쓰던 소설의 마무리를 지우려던 참이었다.
 
  “오랜만이네, 형.”
  “응, 오랜만이지? 카페는 잘 되가니?”
  “그럭저럭.”
  “그래? 음, 카페 언제 문 닫니?”
  “지금 닫았어요, 왜요?”
  “그럼 지금 우리 집에 오지 않을래?”
  쓰던 소설이 막혀 어떻게 마무리를 지을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고, 오랜만에 전화한 형의 부탁이라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겠노라 대답을 하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맥주 2병과 불에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1시간이나 걸리는 그의 집을 찾았다.
 
  두 달만에 보는 형은 바람이라도 맞은 듯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자주 만나는 형은 아니었지만, 글을 쓴다는 핑계로 개인적으로 사람 만나기를 피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이야기 거리를 제공해 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소설 거리라도 있는 거예요? 갑자기 오라고 하고.”
  “부탁이 있어.”
  자리에 앉아 맥주를 서로 따라 준 뒤 한 잔 걸치고 나서 그 형이 꺼낸 첫 단어가 ‘부탁’이란 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조그만 충격이었다. 그 형은 나에게 ‘부탁’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기 때문이다.
 
  “무슨 부탁인데요?”
  형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서랍을 열어 요란하게 프린터 된 A4용지 몇 장을 내게 내밀었다.
 
  “내가 쓴 소설이야.”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어 형이 내민 원고를 받아 들고는 쭉 훑어보았다.
 
  “형도 소설 쓰기로 했어요?”
  “그냥 심심해서. 그거 네가 편집 좀 해줄래? 나는 워낙 글재주가 없잖니.”
 
  “무슨 내용인데요?”
  형은 대답을 하지 않고, 그냥 맥주만 들이킬 뿐이었다. 나 역시 더 이상 물어 보지 않고 따라 놓은 맥주를 입게 갖다 대었다. 형이 느닷없이 물었다.
 
  “사람을 좋아해 본 적 있니?”
  나는 맥주를 내려놓고 피식 웃었다.
  “새삼스럽게 그건 왜 물어 봐요?”
  “내가 요즘 그래. 내 성격 탓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를 깊게 알게 되면 될수록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고 우울해져.”
 
  취한 것도 아닌데 형의 말을 앞뒤의 구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형의 다음 말을 기다려 보았다.
 
  “한 여자를 알게 되었어. 처음에는 그냥 동생이거니 했지. 그리고 그렇게 지낼 생각이었어. 오빠와 동생 사이로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안되지 뭐니.”
 
  술기운에 힘입어 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흔히 들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본인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더군다나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저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야기가 본인에게는 가슴아프게 느껴지리라는 것을 알지는 못해도 짐작은 할 것이다.
 
  소심한 사람. 내성적이고 사람 앞에서는 말도 잘못하는 사람. 언제나 공상에 얶매여 현실을 착각하는 사람. 컴퓨터라는 이상한 매체에 매료되어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까지 포기한 사람, 그리고 삼각 관계로 인해 끝내는 마음의 상처를 받고 뒤돌아 서고 만 첫사랑의 슬픔을 간직한 사람.
 
  내게 좋은 일이 있어 몇 병의 술병을 사 들고 올라치면 권하는 술만 겨우겨우 먹던 그가 벌컥 들이키며 늘어놓은 이야기는 3류 멜로쯤으로 밖에 들이지 않았다.
 
  소설 쓰는 것을 취미라고 가지고 있는 나에게조차 그것은 좋은-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소설 줄거리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에게 어떤 조언을 구하기 위해 늘어놓는 말도 아닌 듯하다. 내가 다른 사람의 일에 조언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더 잘 알기에.
 
  “······ 그래서 그 소설을 쓴 거야. 내 마음을 정리해 볼까 하는 의미에서. 그런데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했어. 어떻게 지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나 혼자서는 안되겠더라. 그래서 너한테 부탁을 하려고. 그 소설 편집해 줄 수 있겠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없이 맥주를 마셨다. 형도 우울한 듯 가져온 맥주를 다 들이키고는 졸린 듯 눈을 깜박거렸다. 원래 술을 못하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계속 마셨으니 오죽하랴. 새벽 1시가 되자 형은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망설인 끝에 형의 집을 나오고 말았다. 형의 집에서 자려 했지만, 아침 일찍 카페의 문을 열어야 하고, 또 형이 썼다는 소설도 읽고 싶었던 것이다.
 
  행복 카페란 간판이 붙어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온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형이 건네준 원고를 악어 클립에 꽂아 놓고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들어갔다.
 
  술기운이 돌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정신이 맑았다. 그리고, 형이 오늘따라 슬퍼 보이는 이유를 알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편집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낮보다는 밤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에 글을 쓰기가 더 편했다. 펜에서 수동 타자기로, 그리고 다시 컴퓨터로 작성하기 시작한 나의 소설 쓰는 일은 학교 다닐 때부터 꾸준히 이어 온 버릇이다.
 
  소설가가 되는 꿈은 오래 전에 버렸고, 지금은 취미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 소설은 나의 만족일 뿐이다. 머리 속에 맴도는 무수한 무형의 이야기를 눈에 보이는 유형의 이야기로 만듦으로 해서 얻어지는 그 만족을 좋아한다.
 
  편집 작업이 완료되자 여자 손 같다는 놀림을 많이 받은 손을 키보드 위로 골목대장처럼 휘젓고 다녔다. 형의 쓴 소설의 원고를 읽으며 타이핑 해 가던 나는 그 이야기에 점점 빨려 드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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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내가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란 이름을 붙여도 좋을 듯 싶다. 밖으로 외출하는 일이 없는 내가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길은 컴퓨터 통신을 이용하는 것뿐이라는 걸 안 것은 1년 전 이맘 때 쯤이다.
 
  그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그 신비로움과 재미에 푹 빠져 밤을 새우는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 날도 어둠이 깔린 밤이 다가오자 버릇처럼 컴퓨터 전원을 켜고 하이텔이라는 대형 호스트 컴퓨터에 접속을 시도했다. 접속을 알리는 신호음과 함께 아이디와 암호를 물어 보는 화면이 나타났다.
 
  아이디와 암호를 입력한 뒤, 몇 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채팅 장으로 향하였다.
 
  컴퓨터를 통한 대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 대화를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니터 화면에 나열되었다.
 
  우습게도 얼굴도 모르고 목소리도 모른 채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이름과 아이디뿐이다. 그 많은 사람들 중 나는 김미경이라는 이름의 사람과 채팅을 하게 되었다.
 
  “어디에 사시나요, 미경 님?”
  “집은 서울이고 인천대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여기는 온양입니다. 서울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죠. 학교가 인천이며 통학하시나요?”
 
  “네.”
  “힘드시겠네요. 무슨 과예요? 제가 맞추어 볼까요?”
  “호호, 그래 보세요.”
  “말씀을 잘하시는 것 같으니 영어 영문과?”
  “어머, 족집게.”
  “맞나요? 나는야 하이텔 귀신.”
  “호호”
  “하하”
  그녀는 학교신문 기자라 하였다.
  어느새 나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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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에서의 만남이 자주 이루어졌다.
  하루에도 몇 천명이 오고가는 채팅 장에서 미경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이제 말을 놓게 되었고, 한 살 어린 그녀와 오빠 동생 사이가 되었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른 채 우리는 알게 된 것이다.
 
  매일 통신상으로 만난 서로의 일을 이야기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 보고, 이것저것 재미있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새로운 활력이 솟는 걸 느꼈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나에게 있어 미경은 좋은 동생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미경이 고맙게 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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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만나면 재미있을 것 같아.”
  미경의 말에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까지 올라가 미경과 만나서는, 아니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에서 알게 된 사람과 직접 만나게 되는 일은 비일비재하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약점일 수도······.
 
  얼른 화제를 바꾸었지만, 마음속은 뭐가 불길한 예감으로 쿵쿵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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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첫사랑이 있고, 나약한 나에게조차 첫사랑은 있다.
  어두운 공간 속에 한 얼굴이 나타난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 가며 좋아했던 여자의 얼굴. 나는 그 곁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밑을 내려다보니 몸 전체를 삼키는 늪이 존재하고 있다. 그 늪은 점점 어떤 남자의 얼굴로 형상화된다. 내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사랑이란 이름을 붙여 가며 좋아했던 여자를 가로챈 남자의 얼굴이······.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 온다.
  두 개의 얼굴이 마주보며 웃는 모습을 뒤로한 채 무작정 뛰었다. 바로 그 순간 두 개의 커다란 불빛이 나에게로 무섭게 달려들었다.
 
  꿈에서 깨어난 것은 그 때였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있었고, 심장은 심하게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우선 걷잡을 수 없는 것은 자꾸만 찾아 드는 불길한 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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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보내 줄래, 미경아? 얼굴보고 싶은데.”
  “사진? 응, 그래. 그럼, 오빠도 사진 보내 줘.”
  “글쎄, 난 요즘 찍은 사진이라곤 증명사진밖에 없는데.”
  “그럼, 그거라도 보내 줘.”
  “그래, 알았어.”
  미경이에게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다.
  증명사진만 있지는 않았다. 전체 사진도 있기는 했지만 차마 그 것을 보내 줄 수 없기에 거짓말을 하고 만 것이다. 최소한 증명 사진은 얼굴만 담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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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편지에 담아 보내고 나서 문뜩 내가 미경이를 좋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예라는 답을 얻어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미경이에게 할 수는 없었다.
 
  내 자신이 미경을 동생으로서 좋아하는지 이성으로 좋아하는지 몰랐기 때문이며, 그 말을 듣고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를 미경에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종류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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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석이란 존재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 것은 유석이 미경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하고 부터이다.
 
  언제부터인가 유석과 미경과 나는 하이텔의 거대한 채팅실에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유석은 몇 번의 채팅만으로 미경을 좋은 여자라 단정하고,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없이 해 버린 것이다.
 
  유석은 미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나 역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미경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경이 대답했다.
  “나도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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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송해요 어떻게 하지요?”
  유석과 단둘이 채팅 할 기회가 생겼을 때 유석이 타이핑한 글이 화면에 모습을 들어냈다.
 
  “유석이 뭐가?”
  “형이 먼저 미경이랑 사귀려고 한 것 같은데 제가 가로채서요.”
 
  얼떨떨한 기분을 표현할 길이 없다.
  유석이는 나를 경쟁자로 보고 있는 듯했다. 미경이를 사이에 놓고 줄다리기하는 삼각 관계로 말이다.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와 미경과 유석이 삼각 관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삼각 끈이 매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나는 미경을 동생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유석의 존재로 인해 이성의 상대로 느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내가 바라던 것은 아니였는데·····.
 
  미경을 동생으로 좋아할 뿐이라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말을 유석에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일까? 그렇다면 나도 미경을 이성으로 좋아한다는 말인가.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그런 말을 꺼낸 유석이 왠지 싫었다.
  유석이 말했다.
  “죄송해요, 정말.”
  일이 점점 이상하게 꼬여 가는 것을 안 것은 그 대화가 있고 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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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석이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넌 어때?”
  심각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듯 물어 보았다.
  미경이 대답했다.
  “응, 그런 것 같아. 그런데 좀 부담스러워.”
  “부담스러우면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그래야 하는데 할 수가 없어. 유석이는 나한테 매달려 있는 것 같던데.”
 
  “그럼 어쩌려고?”
  “모르겠어.”
  “그냥 이대로 지내면 너나 유석이나 크게 상처받을 지 몰라. 부담스러우면 부담스럽다고 딱 잘라 말해.”
 
  “그럼 너무 불쌍하잖아.”
  미경이 그런 면에서는 마음이 약한 것을 알았다.
  유석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고, 미경이 부담스러워 하는 모습 역시 역력하게 보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경은 상대방이 마음 아파할까 봐 부담스럽다는 말을 못하는 듯했다.
  그래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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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석과 단 둘이 채팅을 하게 되었을 때, 내가 말했다.
  “미경이가 너를 좋아한다고 생각해?”
  “아뇨. 지금은 단지 좋은 호감 정도만 가지고 있겠죠. 지금 잘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 가지 가정을 해 볼까?”
  “어떤?”
  “유석이 하이텔 채팅 장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고 가정하는 거야. 유석은 그 여자를 단지 통신에서 만난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데 여자 쪽에서는 유석에게 호감이 갔던지 좋아한다는 등의 말을 암시적으로 해. 그렇다면 유석은 그 때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좀 부담스럽겠죠.”
  “그럼 어떻게 하겠어?”
  “부담스럽다고 말을 해야죠. 그리고, 채팅을 하지 않고요. 처음에는 상대방이 가슴 아파하겠지만 나중에 더 큰 상처를 받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유석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군.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글쎄요. 그건 잘······.”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없는 사람이면 두 사람을 잘 아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지 않을까?”
 
  “음, 그런 말을 왜 하시는 거죠? 남자 대 남자로 화끈하게 말해 주세요.”
 
  그제야 나는 사실을 말했다.
  “좋아. 사실을 말하지. 미경이는 지금 유석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어.”
 
  “정말 인가요?”
  “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어. 그 말은 사실이야.”
  “그렇군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충고 도요.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둘러 대화를 중지해 버린 유석은 내 이야기를 분명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했다. 그리고, 내가 과연 잘한 일인가 하는 의문도 들었다. 나는 미경의 오빠이므로 둘 사이를 좋게 만들어야 했던 건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둘 사이를 갈라놓아야 할 뚜렷한 이유도 없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작정 둘은 갈라놓으려는 내 의도를 뭘까?
  “나는 미경을 좋아하는 것일까? 이성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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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이 있은 후, 그 둘의 사이는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변해 갔다.
 
  유석은 여전히 미경과 단둘이 있기를 원하는 눈치였고, 실제로 단둘이 있는 시간 또한 많아졌다.
 
  이제 내 자신이 제 3자의 입장에 선 느낌이었다. 전에는 유석이 제 3자였고, 나와 미경이는 언제나 주인공이었는데······.
 
  미경이 역시 유석을 좋아하고 있다는 느낌 마저 들었다. 아마도 유석의 솔직하고 순박함에 미경의 마음이 동요된 듯 싶었다.
 
  나는 미경이 유석을 좋아하는지에 대해서 확인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만일 미경이 유석이를 좋아한다면 나 역시 입장을 달리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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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석이랑 잘되어 가니?”
  빈말처럼 내뱉은 질문이지만 대답은 신중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응, 유석이 요즘 정성이야. 집으로 하루에 3번씩 전화를 하기도 하고, 다음 달 6일에 서울 올라올 일 있는데 그 때 만나자고 하더라.”
 
  “그래서 만날 생각이야?”
  “글쎄, 생각 중이야.”
  미경의 대답을 애매모호 했다. 유석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닌 듯하지만 그렇다고 친구로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자주 같이 대화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불안감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감정은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에게서 느낀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의 뒤에 일어났던 결과 역시 두려웠다. 어쩌면 이번 일도 그 때와 같은 결과가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나를 좋아하니?’
  라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참았다. 내가 해서는 안될 질문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곰곰이 떠오른 생각들. 마음을 어지럽히는 감정. 미경을 오빠로서 좋아하리라 다짐했던 감정이 유석의 등장으로 인해 바뀌어 갔다. 아니 그것은 핑계일 지 모른다. 애초부터 미경을 오빠로서가 아닌 이성으로 좋아한 것은 아닐까? 단지 처음 사랑의 실패로 인해 그 감정이 두려워 밖으로 내놓지 않고 안으로 감추려 한 것은 아닐까? 나 자신도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도저히.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미경에 대한 가정. 그것이 질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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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경아, 다음주 수요일쯤에 너 만나러 서울에 갈 생각인데, 괜찮겠어?”
 
  “수요일에? 그 날 학교 신문사에서 모임이 있는데. 하지만, 오빠가 온다면 모임이 중요한가, 뭐.”
 
  “그래. 그럼 수요일에 만나기로 하자, 좋지?”
  “알았어. 무척 기대가 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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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안.
 
  새벽 6시가 되어서야 글쓰는 작업을 중단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형의 소설에 매료되어 버린 듯했다. 조금만 편집하고 잔다는 것이 전부 편집해 버렸던 것이다.
 
  형의 소설은 여기에서 끝나 있었다. 아쉽게도 결말이 안 지어진 상태였다. 이 소설의 결말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 끝에 형에게 물어 보기로 결심을 했다.
 
  술기운은 이미 사라졌지만, 새벽 내내 앉아 있었던 탓에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카페 안에 마련된 작은 방으로 몸을 들여놓고,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그 형이 쓴 소설의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가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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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밤이 되자 나는 손님이 없음을 확인하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카페 문을 닫았다. 그리고, 밤새 편집한 소설을 프린트하여 그걸 들고는 형의 집으로 찾아갔다.
 
  내가 내민 프린터 물을 본 형의 놀라며 말했다.
  “빨리 했네? 밤 샌 건 아니지?”
  “아니긴 왜 아니겠어요? 근데 결말은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음, 사실은, 아직 결말을 몰라. 그녀와 만나기로 한 수요일이 아직 안되었거든.”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였나 보다.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씁쓸해 하는 형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아직 만나지 않은 거예요? 난 벌써 만난 줄 알았는데. 근데, 형. 정말 미경이란 여자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가실 거예요?”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 그냥 이대로 앉아서 모니터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답답하거든. 게다가 난 삼각 관계를 무척 싫어하잖니. 그래서 빨리 결론을 내고 싶어.”
 
  “하지만······.”
  “너에게 다시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난 사실 소설에 소질이 없어.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을 내지 못할 거 같아. 그래서 너에게 부탁하려고 해. 네가 이 소설의 결말을 써 주지 않겠니?”
 
  형의 부탁을 들은 나는 곤욕스러운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하지만, 형의 진지한 말투와 소설의 결말을 서둘러 쓰고 싶어하는 형의 마음을 이해하였기에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며칠 뒤, 그 형이 부탁한 소설 ‘제목 없는 채팅 러브’의 결말을 내가 직접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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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수요일이 되자 서울행 기차에 올랐다.
  감상적이기는 했지만 장미꽃 한 송이를 사 들고 겨우 시간에 맞추어 기차에 오르니 기차 안의 따스한 공기로 인해 안경에 김이 서렸다.
 
  1시간 30분 후에 서울역에 도착하였다.
  약속 시간 보다 25분쯤 늦게 도착한 미경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튼튼해 보였다. 튼튼하다는 표현을 쓴 것은 하이텔 채팅 장에서 느꼈던 이미지가 가냘팠던 탓일 것이다.
 
  미경 역시 자신이 상상했던 나의 이미지랑 실재 모습이 무척 틀렸다는 말을 했다.
 
  1시간 30분 동안 기차에 실려 서울까지 온 장미꽃을 미경에게 건네주었다.
 
  우리는 조금은 한산한 지하철을 타고 종로로 갔다.
  괜찮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커피와 레몬차를 시킨 뒤,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 채팅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들.
 
  “참 오빠 사진 아직 못 받았어.”
  “그래? 우체부 아저씨가 좀 늦나 보지.”
  사진이란 단어가 나오자 쓸 웃음이 나오려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자칫 잘못하면 커다란 실수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장소를 옮겨 식사를 한 뒤, 추운 바람 부는 거리를 지난 대학로로 들어섰다.
 
  사람들 사이로 천연덕스럽게 걸어다니며 모이를 먹는 비둘기와 부러운 솜씨로 초상화를 그리는 거리의 화가들, 그리고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거니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미경은 잠수함이란 카페에 들어가자고 했다.
  지하에 있는 잠수함은 방안 장식을 정말 잠수함처럼 꾸민 이색적인 곳이었기에 흥미로웠다.
 
  소극장 같은 스크린이 있고, 헤비메탈 음악이 흘러나오는 뮤직 비디오를 틀어 주고 있다. 무지막지하게 귀를 때리는 음악이었지만 듣기 좋았다.
 
  스크린에 기타 연주를 하는 장면이 나오자 미경이 말했다.
  “유석이도 기타 잘 치더라.”
  전화 수화기로 유석이 미경에게 자신의 기타 솜씨를 들려준 적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나는 이때다 싶어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너도 유석이에게 호감이 있나 보구나?”
  웃으며 미경이가 말했다.
  “응, 유석이 좋은 애야.”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시끄러운 음악에 귀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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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이답게 오락실에 들려 손놀림을 부드럽게 하고 이른 시간이기는 했지만 호프집에 들렸다.
 
  휴가를 받은 듯 군복을 입은 몇 명이 옆자리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한 군인이 애인인 듯한 여자가 곤욕스럽게 앉아 있는 것을 슬쩍 바라보다 맞은 편에 앉은 미경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순진해 보였다.
  깨끗했고, 맑게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은 생각 않기로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다시 오고갔고, 나는 다시 물었다.
  “유석이랑 만날 거야?”
  “음, 글쎄. 만날 수 있으면 만나야지. 만나고도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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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락된 시간이 다 흘러갔다.
  예의바르게 미경은 내가 서울을 떠나는 순간까지 바라다 주었다. 좋은 아이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을 때 씁쓸한 감정이 다시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미경은 유석에게 좋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그것을 확인했다.
  씁쓸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한가지로 정해진 것이다. 괴로운 일이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므로 슬프지는 않았다.
 
  내가 더 미경의 근처에 있는 것은 나 자신을 슬프게 하는 일이며, 언젠가는 미경에게조차 부담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유석이에게도 부담이 될 것이다.
 
  오늘 여행의 목적이 무엇이었던가? 미경이의 마음을 알고 싶어 떠난 여행이 아닌가? 그리고, 이제 미경이의 마음을 알았다.
 
  이제 두 사람이 서로 좋아하고 있음을 안 지금, 망설일 것이 없다. 애초부터 난 미경을 동생으로 좋아했고, 그 감정이 깨져 버렸으니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사라진다 해도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사람은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는 것이므로.
 
  기차가 나의 고향 온양 역에 도착했다.
  온양 땅에 발을 밟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의 기억을 모두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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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페 안.
 
  새삼 나에게 글쓰는 재주가 없음을 한탄했다.
  그 형과 미경이가 만나기로 한 수요일이 지나고, 그 형의 소설의 결말을 다 쓴 뒤, 다시 읽어 본 나는 이마를 찌푸리고 만 것이다.
 
  ‘이런 3류 작가 소리밖에 더 못 듣지.’
  ‘이것은 진실을 바탕으로 한 거짓 이야기다.’
  나는 속을 생각했다.
  새로 수정하고 싶은 맘도 없었다. 이 소설은 그냥 이대로 끝내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잊어버리려 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결말. 그것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이 소설의 결말 부분(미경과 만난 이야기)은 그 형이 아닌 내 체험담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 형의 체험담인 냥 쓴 것은 왠지 찜찜한 기분을 면할 수가 없었다. 그 형의 부탁을 괜히 들어준 것일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려 주인을 찾았다.
  그 형이었다.
  “소설가 양반, 잘 있었어?”
  “날 소설가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잖아요.”
  “쿡쿡, 미안. 다름이 아니고 내 부탁 들어준 거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
  “나 대신 미경이를 만나 준 거 말이야. 그리고, 미경이 마음을 알아봐 준 것도 고맙고. 덕분에 난 지금 마음이 편해.”
 
  “글쎄요. 형은 어떤지 모르지만 난 아직도 찜찜하단 말이에요.”
 
  “이제는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얶매이지 말아야겠어.”
  “그건 잘 생각한 것이지만, 음, 그럼 앞으로 미경 씨와는 연락 안 할 건 가요?”
 
  “그럴 생각이야. 통신에서 만난 사람은 역시 통신에서 끝내야지. 얼굴이나 목소리까지 안다는 것은 통신 친구가 아니야. 참, 오늘 미경이가 저번에 보냈던 사진이 왔더군. 보지도 않고 태워 버렸어.”
 
  “글쎄, 난 잘 모르겠어요. 형 생각을 말이야.”
  “그럼 잘 생각해 봐. 그럼 잘 있어.”
  웃으며 전화를 끊었지만 그 형 역시 마음은 착잡할 것이라 생각했다.
 
  9일 전 나에게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전화한 사람. 그리고, 미경 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느닷없이 자신의 소설을 편집해 줄 것을 부탁한 사람. 자기 대신 미경 씨를 만나 달라며 간곡히 부탁을 했던 7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처음엔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 형의 말을 듣고 보니 공감이 갔다. 미경 씨를 만나서 그녀의 마음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사람의 형편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은 본인도 나도 알고 있었다.
 
  첫사랑이라 이름 붙인 여인과 그녀를 가로 챈 남자가 다정하게 입맞춤을 하던 장면에 충격을 받아 정신없이 도망치듯 달려가다 어두운 골목에서 튀어나오던 자동차에 들이박혀 두 다리의 뼈가 으스러져 버린 사람. 그로 인하여 첫사랑의 슬픔과 평생 불구가 되어 버린 고통을 휠체어에서 느껴야 했던 사람. 그리고, 또다시 상처받는 것이 싫어 사랑이란 감정이 될까 봐 미경이란 여자를 잊기로 한 사람.
 
  내가 그 형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 것은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도 있었지만, 그 전에 그 형이 미경 씨에게 자신의 얼굴이노라 보낸 사진이 알고 보니 내 사진이었기에, 괘심 하기는 했지만 형의 마음을 이해 못한 것도 아니었고 해서 그 부탁을 들어 준 것이다.
 
  나는 형인 척하고 형을 대신해 미경 씨를 만났고, 유석을 좋아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리고 좋아한다는 확신이 서자 씁쓸한 마음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돌아오자마자 형의 집을 방문하여 그 이야기를 해 주었지만 형은 예상했었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형은 나에게 그 소설의 결말 부분을 써서 달라는 말을 했다. 나는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 형은 미경 씨에 대한 일을 쉽게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 세상은 잊어버리면서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로 득실거리기는 하지만 그 형은, 글쎄, 쉽게 잊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문뜩 미경 씨와 헤어지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말들, 내가 과연 잘한 행동이었을까?
 
  형은 미경 씨와 만나 그녀가 유석을 좋아하는 지만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이미 썼던 소설의 결말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소설에 쓰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나는 그녀에게 형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해 버린 것이다. 그녀가 놀라던 표정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었다. 씁쓸하게 웃던 그녀의 미소 역시.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 형은 미경 씨를 좋아하고 있어요.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요. 그 때문에 자신이 불구인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이죠. 그리고 미경 씨와 유석이라는 분 사이에서 느껴지는 질투와 갈등을 말하지 못한 거예요. 선택은 미경 씨가 해야겠죠.”
 
  미경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형의 전화번호를 주고, 선택을 하게 되면 형에게 직접 말하라는 말을 끝으로 그녀와 헤어졌다.
 
  씁쓸한 하루였다. 행복한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이번 소설의 결말은 너무나 씁쓸해서 슬퍼지는 듯했다. 그날 밤 사랑이라는 감정을 영원히 갖지 않으려 하는 형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형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은 그로부터 3일 뒤였다. 형의 느닷없는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너, 서울에서 미경이에게 왜 쓸데없는 말을 한 거야?”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기뻤다. 화를 내면서 말하는 형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미경 씨는 형을 선택한 것이다.
 
  “잘 됐구나, 형?”
  “나쁜 녀석.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고······.”
  형의 밝은 목소리는 나에게조차 웃음을 주는 듯했다. 형은 미경 씨에게 온 전화 내용을 이야기해 주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전화했어. 물론 아직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미경이를 좋아하니까. 그리고 미경이도 나를 좋아 한데. 좋은 오빠로서 말이야. 고맙다. 넌 역시 행복을 주는 녀석이야.”
 
  나는 빙그레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더욱 기쁜 것은 형의 소설을 씁쓸하게 끝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며칠 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던 형의 소설을 재편집하기 시작했다. 씁쓸한 결말이 아닌 행복한 결말로서 말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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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93년 1월 달은 군 입대를 앞두고 하이텔 채팅실에서 살았었다. 그 때 알게 된 여인이 바로 미경이었다. 이 소설처럼 우연하게 그녀를 만나게 되었고, 유석이란 존재로 인해 갈등에 빠졌었다. 아마 첫사랑의 실패로 내 자신이 너무 소심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묘한 상황을 탈피하고자 군 입대 며칠 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향했고, 소설과 같은 결론을 얻고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제목 없는 채팅 러브’를 써서 그녀에게 메일로 보내었다. 이별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별 선언의 뜻으로······
  군 입대를 하고 나서 그녀의 이름은 차츰 기억에서 사라졌다. 단 한 명만을 위해 썼던 소설이라 프린터 해 놓은 것이 없었다면 영원히 사라질 뻔한 소설이었다. 하드가 깨지는 바람에 파일이 다 날아가 버려 안타까워하던 참이었는데, 다행히도 프린터 한 것이 남아 있어 지금에서야 행카 시리즈로 재편집했다.
  요즘은 채팅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실 나는 채팅을 1회용 만남으로 치부해 버린다. 그만큼 의미 없는 만남이란 생각 때문에. 그렇지만 채팅으로 인해 아름다운 추억을 글로써 남겼다면 역시 나쁜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휴우. 나의 슬픔 경험이 남들에게 공감이 가고, 그들만은 행복하게 이루어졌음 한다. 그것이 행복을 주는 이가 갖는 의무이겠지. 오늘밤은 그렇게 어두워지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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