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07. 추남일기; 삐삐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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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07. 추남일기; 삐삐팅

행복 카페 이야기

Happy Cafe Story

이야기 일곱

추남 일기; 삐삐팅

이정세 지음

 
  삐삐를 왜 샀는지 모르겠다.
  그냥 남들 삐삐 받는 모습이 신기해, 나 역시 삐삐 받고 싶은 충동에 샀는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는 거금을 들여 삐삐를 구입하게 되었고, 두툼한 허리띠에 차고 다녔다.
 
  한동안 일하던 컴퓨터 매장을 그만두고, 백수가 되었을 때 간혹 울리던 삐삐를 볼 때면 신기한 맛이 들기도 했다. 삐비빅거리는 소리나 두툼한 뱃가죽을 뒤흔드는 진동이 있을 때면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삐삐를 들여야 보지만, 언제나 삐삐의 LED화면에 나타나는 숫자들은 친하게 지내는 후배들의 전화번호들뿐이었다.
 
  “삐삐팅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
  소설 구상을 하기 위해 주로 찾아가는 행복 카페에서, 맞은 편에 앉은 후배가 대뜸 꺼낸 말이었다.
 
  “삐삐팅?”
  “몰라요, 형? 삐삐 가진 사람들끼리 삐삐로 하는 폰팅 같은 거예요. 심심하면 한번 해봐요. 재미있을 거예요.”
 
  내가 아직까지도 변변한 여자 친구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후배가 꺼낸 말에 나는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삐삐팅을 해서 만난 여자와 오랫동안 사귈 수 있을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텐데요, 뭐. 자, 여기에다가 소설가 기질 발휘해서 한번 써봐요.”
 
  그러면서 테이블에 놓여있는 낙서장을 내 앞에다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낙서장에 네모난 사각형을 그려 넣어 눈에 확 띄는 공간을 만든 뒤에 안에다가 내용을 써넣기 시작했다.
 
  저와 삐삐팅 해요.
  012-439-91xx.
  이름: 삐삐팅 치신 분에게만 살짝.
  성별: 남자예요. 여자분만 치세요.
  나이: 대화에 나이가 필요한가요?
  외모: 대화에 외모는 필요 없죠?
  심심하신 분만 삐삐치세요.
 
  내용을 다 쓴 나는 후배에게 한번 보여주었다. 후배는 키득거리며 웃었고, 괜찮다는 말을 했다. 나는 머쓱해져 낙서장을 테이블 구석에 밀어 넣고, 과연 이것을 보고 삐삐를 칠까 의문을 가졌다.
 
  그 날 이후로 삐삐팅에 대한 생각이 머리의 일부분에 박혀 버렸는지 작품 구상을 위해 행복 카페를 찾을 때면, 어김없이 낙서장에 삐삐팅 하자는 내용을 서슴없이 써넣었다. 이제는 행복 카페의 각 테이블에 놓여 있는 낙서장마다 내 삐삐번호가 들어가 버린 듯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12월의 들뜬 연말이 끝나고, 1월 달도 중순으로 접어들자 쓰고 있던 소설 ‘영혼’도 마무리 지어졌고, 약간은 여유가 생겼다.
 
  그 사이에 행복 카페의 낙서장을 보고 삐삐가 온 적도 있었다. 모두 합해서 3명. 전부다 가 고등학교 2학년의 여학생이었고, 통화내용도 거의 비슷했다.
 
  “행복 카페입니다.”
  “호출하신 분요?”
  “호출번호가 어떻게 되지요?”
  “9142인데요.”
  “9142호출하신 분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호출하셨어요?”
  “네. 낙서장보고 삐삐 쳤어요.”
  “아, 그렇구나.”
  “근데 몇 살이세요?”
  “24살인데요. 좀 많죠?”
  “어머, 정말 많으시네요.”
  “그 쪽은 몇 살인데요?”
  “고2 에요.”
  “그럼 지금 방학이라 시간이 많겠네요?”
  “너무 많아서 심심할 정도예요. 뭐하시는 분이세요?”
  “백수예요. 집에서 놀면서 간혹 소설 끼적이죠.”
  “소설가세요?”
  “아마추어 소설가라고 하는 게 맞겠죠.”
  “그렇군요. ······.”
  “······.”
  “음, 있지요. 제가 지금 좀 바쁘거든요. 이따가 저녁 때 다시 삐삐 쳐주시겠어요?”
 
  “네, 그래요. 그럼.”
  전화 내용은 그런 식이었고, 저녁 때 다시 그녀들로부터 삐삐가 오지는 않았다.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 때문일까? 하긴 24살이면 20대 중에서도 중반인데, 고2의 팔팔한 애들이 사귀려 할 리가 없지. 그리고, 내 나이에 어울리는 20대 초반의 아가씨들이 할일 없이 카페의 낙서장에나 있는 삐삐번호를 보고 호출할 리도 없잖아? 그제야 난 괜한 짓을 했다는 걸 알았다.
 
  소설 공모 마감 일이 바짝 다가오자 나는 써놓았던 소설 ‘영혼’을 지겹게 읽어보며 마무리 편집을 해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술이라도 같이하자는 내용이었다. 편집하는 일에 짜증도 나던 판이어서 옷을 입고 약속장소로 갔다.
 
  ‘별난 집’이라는 별난 이름의 닭갈비집에서 만난 우리는 닭갈비를 시켜놓고 잡다한 이야기를 했다. 그 때 삐삐가 진통하기 시작했다. 나는 삐삐를 덮고 있던 쇄타를 젖히고 삐삐번호를 살펴보았다. 익숙한 전화번호였지만, 누구의 번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가게의 카운터로 가 전화기를 잠깐 쓰겠다고 하고는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행복 카페입니다.”
  그제야 행복 카페의 전화번호라는 걸 알았다. 그럼, 또 삐삐팅인가 보구나.
 
  “호출하신 분요. 호출번호는 9142입니다.”
  전화를 받은 주인이 손님 중에 호출한 사람을 찾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약간 허스키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호출하셨어요?”
  “네. 낙서장에 있는 거 보고했어요. 심심한 사람만 치라면서요?”
 
  “심심하신가 봐요? 친구들이랑 같이 있지 않아요?”
  “같이 있는데, 별로 재미없어요. 그래서 친 거예요. 지금 몇 살이에요?”
 
  “24살요.”
  “우와, 왜 그렇게 많이 먹었어요?”
  “글쎄요, 살다보니 그렇게 먹게 되었네요. 왜요? 너무 늙어서 벅차요?”
 
  “아뇨. 그 정도 나이까지는 극복할 수 있잖아요. 호호.”
  “그 쪽은 학생 같은데 몇 학년이에요? 1학년?”
  “미쳤어요?”
  “그럼, 2학년?”
  “미쳤어요?”
  “3학년?”
  “맞아요, 3학년. 올해 3학년 올라가요.”
  “에게. 그럼 2학년 맞잖아요. 아직 3월 달 안 지났으니까 2학년이죠.”
 
  “새해니까 3학년이 맞아요. 근데 뭐하시는 분이세요?”
  “백수예요.”
  “우와, 백수면 돈 많겠다.”
  “백수가 왜 돈이 많아요?”
  “돈이 많으니까 백수 하는 거 아닌 가요? 얼굴은 잘 생겼어요?”
 
  “글쎄요. 내 딴엔 잘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은 추남이라고 하데요. 그러는 그 쪽은 미녀예요?”
 
  “아뇨, 못 생겼어요.”
  “피이, 그러면서 남의 얼굴은 왜 물어봐요?”
  “내가 못 생겼으니까 남자는 잘 생긴 사람을 만나야죠.”
  “후후.”
  “지금 어디예요?”
  “후배랑 닭갈비 먹던 중이었어요.”
  “우와, 좋겠다.”
  그리곤 할 말이 없었다. 나는 이쯤에서 전화를 끝내기 위해 말했다.
 
  “지금 후배가 기다리고 있어서 그만 해야겠네요. 나중에 심심하면 다시 삐삐 치세요. 저는 새벽 2시나 3시쯤에 자니까 그 전에 하면 될 거예요.”
 
  “늦게 주무시네요? 알았어요. 안녕히 계세요.”
  딸깍. 전화를 끊고 후배에게로 돌아오자 후배가 호기심 썩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삐삐팅이었다는 말과, 별로 가망 없다는 말을 해 버렸고, 우리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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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다. 텅빈 방안에는 컴퓨터 두 대와, 침대와 책꽂이 3대가 놓여 있었고, 차가운 기운과 함께 담배 냄새가 방안에 고여 있었다. 조금은 허탈감에 빠져, 컴퓨터를 작동시키고 편집하던 소설을 불러내어 다시 재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삐비빅 하는 소리가 울리자 무의식적으로 삐삐를 쳐다보니 처음 보는 전화번호가 나타났다.
 
  “누구지? 이런 시간에.”
  나는 멀찌감치 있는 전화기를 댕겨 옆으로 옮겨 놓은 다음에, 수화기를 들어 삐삐의 LED에 박힌 번호를 눌렀다.
 
  낯익은 목소리가 고막을 자극했다.
  “저예요, 아까 삐삐 쳤던 여자애.”
  “아, 정말 다시 쳤네요.”
  “어머, 그럼 안 칠 줄 알았어요?”
  “네. 솔직히 기대도 안 했어요.”
  “기대도 안 했다니 괜히 쳤나봐.”
  재미있는 아가씨였다. 학생인 그녀와 2시간 정도 의미 없는 대화를 계속하면서 모처럼 만에 많은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없어 이야기 상대가 없던 나는 그 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터쳐 버리려는 듯이 쉴새없이 말을 했고, 그녀는 웃으며 재미있다고 했다.
 
  “오빠, 나 이제 자야겠어요. 내일 오후에 다시 전화할래요?”
  “그럴께. 잘 자.”
  새벽 1시 조금 넘어서야 전화를 끊었다. 조금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와 오빠, 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약속까지 했으니 의외의 삐삐팅 성과였다. 상대가 조금 어리기는 했지만, 어차피 대화 상대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하고는 잠자리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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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오후에 대우 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컴퓨터 통신으로 알게 된 장문구 씨라는 전도사님과 만나기로 했는데, 나도 나오라는 내용이었다. 할 일도 없고 해서 1시에 약속 장소로 갔다. 머리를 짧게 깎은 장문구 씨와 대우 씨를 만나 몇 십분 이야기를 하고, 문구 씨의 의견으로 우리 집에 가기로 했다.
 
  너저분한 나의 방으로 온 그들에게 그 동안 내가 수집했던 자료와 프린터 물을 보여주고, 몇 가지 프로그램을 설명해 주는 동안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시계를 보니 오후가 넘어서 저녁 시간이 다 되어 갔다. 나는 어제 그녀와 약속했던 전화를 걸지 못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그들은 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하게 되면, 대우 씨가 가만히 있지 않고 옆에서 끼여들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차마 전화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녁 7시 무렵이 되어 그들이 가자 나는 수화기를 들고 그녀의 집 전화번호를 쳤다. 그녀가 받았다.
 
  “어머, 오빠? 금방 전화했네요?”
  “응? 그게 무슨 말이야?”
  “방금 오빠한테 삐삐 쳤어요. 아직 안 갔을 텐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통으로 맞추어 놓은 나의 삐삐가 책상 위에서 요통을 쳤다. 번호를 보니 그녀의 집번호였다.
 
  “세상에. 난 그냥 생각나서 전화한 건데. 너도 금방 삐삐 쳤었구나.”
 
  “응. 어쩐지 삐삐 치자마자 전화벨이 울리더라.”
  “우린 텔레파시가 통한 거 같은데, 후후.”
  그렇게 20분 정도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너무 오래한 거 같아 그녀에게 말했다.
 
  “이 전화는 아버지 사업 때문에 저녁에는 전화가 많이 오거든. 나 전화하는 거 들키면 얻어맞을 지 몰라. 그러니까 이따가 11시에 내가 다시 전화할게.”
 
  “알았어, 오빠. 기다릴게.”
  약간 아쉬움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11시가 되기만을 기다렸다. 밤이면 우리 집에 전화가 올 곳이 없었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써도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11시가 되자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어제처럼 2시간 정도 통화를 했다. 여전히 재미있는 통화였다. 특별한 내용 없이 내가 겪었던 지난 일들과 그녀의 친구들 이야기를 서로 교환하며 그녀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가 농담조로 말했다.
 
  “오늘은 내가 더 많이 이야기한 거 같다. 앞으로는 통화 내용 녹음했다가 말을 더 많이 한 사람 소원 들어주는 내기를 해야겠어.”
 
  “피이. 그래 오빠가 나 보다 더 많이 말했다. 인정해. 무슨 소원 원해?”
 
  “글쎄. 뽀뽀 정도라면 좋겠는데.”
  “알았어. 까짓 거 해 줄게.”
  “정말?”
  “물론이지. 그 정도쯤이야 못해 줄라고.”
  “이야, 이거 기대되는데.”
  “어디다 해주길 바래?”
  “당연히 입술이지.”
  “후후, 알았어. 만나면 해 줄게.”
  “근데 막상 만났는데 내가 못 생겼으면 어쩌려고 그래?”
  “뭐 어때. 오빠 소원이라는데 들어줘야지.”
  “응? 그럼 네가 못 생겼으면?”
  “후후, 그럼 이야기해. 나 못 생겨서 뽀뽀 받기 싫다고.”
  “알았어. 기대 되는 걸. 빨리 만나고 싶어진다.”
  그 날의 전화 내용은 괜히 설렘을 만들어 준 듯했다. 사실 그녀의 말이 농담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너무 진진 하게 이야기를 해서 믿고 싶어졌다. 그 날 밤은 정말이지 설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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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안에 걸려있는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이 정도면 잘 생긴 편이 아닌가?’
  이번에는 안경을 벗어 보았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이 희미해서 얼굴을 바짝 들이밀고 보았다. 역시 괜찮은 얼굴 같았다. 땀구멍이 조금 커서 거칠한 듯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추남은 아니잖아?
 
  거실로 나가 커다란 거울에 몸을 비추어 보았다.
  ‘이 정도면 날씬한 축에 끼지 않나?’
  나는 옆으로 몸을 돌려보았다.
  ‘읔, 조금 찌긴 쪘군.’
  그래, 옆모습은 볼품이 없기는 했다. 배가 좀 나왔고, 허리와 엉덩이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다. 얼굴은 그런 데로 괜찮은데 몸매가 영 안 따라주니, 쩝. 그러고 보니 얼굴도 그렇게 잘난 편 같지도 않다. 머리 스타일도 너무 개성이 없고, 어렸을 때 생긴 흉터가 아직도 얼굴에 남아 있다. 배에 힘을 주어 날씬하게 보이려 노력해 보았지만, 역시 뚱뚱한 몸매는 어딜 가지 않았다.
 
  ‘읔, 난 뚱뚱한 게 아니고 통통한 거란 말이야!’
  그렇게 몇 번 거울을 들여다 본 뒤에 언제나처럼 살을 빼야겠다는 결심과 함께 부엌으로 들어가 심심풀이로 먹을 것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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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내와 조금 동떨어진 곳에 사는 그녀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시내로 나온다는 말을 들은 것은 토요일 오후였다.
 
  “오빠, 저녁 때 잠깐 만나자.”
  “응? 근데, 난 약속이 있는데. 4시에 누구랑 만나서 어디에 가기로 했거든. 돌아오면 저녁 8시나 9시가 될 텐데. 어쩌지?”
 
  “그래? 좀 실망이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내 삐삐 번호 가르쳐 줄 테니까 돌아오면 삐삐 쳐라.”
 
  “그래, 알았어. 근데, 정말 만나면 뽀뽀 해주는 거야?”
  “당연하지. 정말로 해 줄게.”
  으으, 그냥 약속을 취소해 버릴까? 하지만, 그렇다고 공짜로 보는 영화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처음 보게 되는 사람에게 뽀뽀를 해 주겠다는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도 힘들고 말이다.
 
  나는 오늘 만나기로 한 현희 누나와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겨우 떼를 써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여자란 이유로 여태까지 돈 내고 영화 본 적이 없다는 현희 누나의 표정은 달갑지 않은 듯했다. 그래도, 뭐, 공짠데.
 
  내가 살고 있는 온양이란 도시가 워낙 작은 도시인데다가 영화관도 그리 좋지가 못했다. 그래서 좋은 영화 있으면 주로 옆 도시인 천안으로 잘 가는 편이다. 옆 도시라고 해 봐야 버스 타고 30분이면 가기 때문에 그렇게 먼 곳도 아니었다.
 
  시외 버스에 올라 옆자리에 앉은 누나랑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천안에 도착을 했다. 우리는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고, 다행이 영화 시작될 무렵에 자리를 찾아 앉을 수가 있었다.
 
  나는 힐끔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잘하면 8시전에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10분 7시에 영화가 끝났다. 현희 누나는 이 곳에 사는 언니 집에 가야 한다면서 손을 흔들며 사라졌고, 나는 서둘러 온양으로 향하는 시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계를 보니 7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중간에 사고만 나지 않는다면 7시 30분에 도착할 듯 싶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다는 설렘과 더불어 뽀뽀를 받는다는 기대감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와 함께 약간의 두려움도 생겼다. 가뜩이나 몸이 뚱뚱하다고 놀림을 받는 판인데, 티에다가 두꺼운 조끼마저 걸쳤으니 남들이 보기에는 강호동이나 김형곤 쯤으로 볼 것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찬바람 때문에 머리도 헝끄러져 있을 테고, 얼굴도 말이 아닐텐데.
 
  그런 걱정을 하는 사이에 버스는 내가 사는 온양에 도착을 했고,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긴장을 해서인지 오줌이 마려웠던 것이다.
 
  나는 역전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서 공중화장실에서 일을 본 다음, 그 곳 거울을 통해 대충 머리를 다듬고, 밖으로 나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들어간 나는 전화카드를 넣고, 수화기를 든 다음, 그녀가 알려준 삐삐번호를 누르고, 내 삐삐번호를 눌렀다.
 
  지갑을 보니 돈이 별로 없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선배, 후배랑 어울려 며칠동안 계속 당구며, 커피숍에 갔으니 먼지만 날수밖에. 어쩔 수 없이 몇 푼 남아 있지 않은 통장을 털기로 하고, 은행으로 향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로부터 삐삐가 왔다. 나는 삐삐번호를 한번보고는 은행으로 들어가 현금 카드를 이용해 5만원이란 돈을 찾았다. 설마 이 돈을 다 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하는 게 좋으니까 찾을 수 있는 만큼 찾아 먼지 나는 지갑을 채우고는 공중전화로 향했다.
 
  예상했던 대로 삐삐를 친 곳은 소주방이었다. 전화를 받은 종업원이 귀가 어두운 듯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나 말한 끝에 겨우 그녀와 통화를 할 수가 있었다.
 
  “오빠야? 지금 어디야?”
  “시내야. 어디니?”
  “여기 동아리 소주방.”
  “그래? 그럼 어떻게 할까? 내가 그리로 갈까?”
  “글쎄. 지금 남자 친구도 같이 있거든.”
  “어? 그래? 그럼 하는 수 없네.”
  나는 약간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그럼, 오빠. 소주방 앞으로 올래? 잠깐 얼굴이라도 보게.”
  “그래, 알았어.”
  “지금 밖에 나가 있을 게. 빨리 와.”
  그녀를 만나는 시간이 바짝 다가오자 가슴이 더욱 심하게 요동을 쳤다. 그냥 담담한 마음을 가지려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자 걸으면서 담배를 하나 입에 물었다. 평소 같으면 어찔하던 담배연기가 왜 그렇게 싱겁게 느껴지는지.
 
  모퉁이를 돌아 ‘동아리 소주방’에 도착하니 입구에 여자들이 한 무더기 있었다. 나는 당황하며 그녀에게 옷차림을 물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서로 친구들처럼 보이는 그녀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주위를 맴돌면서 그녀를 찾기 시작했다. 고2이므로 약간 어린 티가 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열심히 얼굴을 들여다보았지만, 그녀의 목소리와 매치 되는 얼굴은 아쉽게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무리를 지었던 여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한 여자만이 남게 되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표정.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나 차갑게 보였고, 전화의 목소리로 상상했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선뜩 말을 걸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소주방 안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이크, 저 여자였던 거 같은데.’
  다시 불러 세울 수도 없었기에 나는 잠시 망설이다 근처 공중전화로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그리고, 소주방으로 전화를 걸어 다시 그녀를 찾았다. 그녀의 목소리-아까 소주방으로 들어가던 여자의 얼굴과는 너무 대조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왜 안 와? 기다리다가 추워서 그냥 들어왔잖아.”
  “어? 나와 있었어? 나 소주방 앞에서 기다렸었어. 못 봤니? 우중충한 옷에 조금 통통하고, 안경 낀 남자.”
 
  “아, 본 거 같애. 그 사람이 오빠 였구나.”
  “그럼 그 아가씨가 너 였구나. 말 걸려다가 말았지. 지금 나올래?”
 
  망설이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왜 망설이는 걸까?
 
  “으응, 글쎄. 지금 친구들이랑 같이 있어서 나가기가 좀 그래.”
 
  “그러니?”
  “응, 그냥 다음에 만나자.”
  “하는 수 없지. 그럼, 잘 놀아.”
  수화기를 내려놓은 내 마음은 왜 이럴까? 괜히 허탈감이 들었다. 분명히 소주방 앞에서 서성거리던 남자는 나 혼자 뿐이었고, 그럼 당연히 내가 기다리던 그 남자라는 걸 알았을 텐데, 왜 먼저 말을 걸지 않은 걸까? 그리고, 아까는 나와서 기다리고는 왜 다시 못 나온다는 거지?
 
  “잠깐 본 내 모습에 실망을 했기 때문이니?”
  “맞아, 오빠는 너무 뚱뚱하고 못 생겼어. 앞으론 연락 알 할거야. 그러니 우리 집에도 전화하지마.”
 
  아마도 계속 이야길 했으면 이런 대화가 나왔겠지?
  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아주 많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 내 모습이 조금 뚱뚱하고 못 생겼기로 서니 며칠 밤새워 이야기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지는 뭐, 잘 생겼남? 젠장.
 
  그래, 그래. 나 뚱뚱하다. 그리고 얼굴도 못 생겼다. 그러는 너도 다른 여자들과 하나도 다른 바가 없구나. 사람은 외모가 아니고 마음이라고? 흥! 그렇게 말하는 여자가 나중에는 그랜저 탄 남자랑 결혼하더라. 에잇.
 
  삐삐팅 낙서보고 삐삐 친 여자이니 별수 없겠지 하면서도 조금은 미워졌다. 결국 요즘 여자들은 외모와 돈으로 남자를 선택하는구나 하는 시대 비판적인 마음도 들었고, 심하게는 그런 여자들을 찾아다니며 몽둥이로 뒤통수를 몇 대 갈기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
 
  앞으로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겠지? 그리고 내가 전화를 해도 안 받을 거야. 나는 알고 있지. 예전에도 그랬거든. 그녀는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아니었다.
 
  울고 싶을 정도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의 간단한 대화로 피어난 자그만 한-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는 사랑이었지만, 슬펐다. 빌어먹을 삐삐팅, 빌어먹을 여자들.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길에 맥주를 몇 병 사들고 왔다. 그리고 결심했다.
 
  “좋아, 내일부터 살 뺄 테야!”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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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화를 소설화한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이야. 실화를 서술하면 왠지 모르게 소설특유의 긴박감이 없고, 너무 소설화시키면 많은 허점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 걸 감안해 본다면 ‘추남일기-삐삐팅’ 역시 어딘가 모르게 부족한 면이 많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나’가 그녀와 마지막 전화를 했을 때, 받았던 충격을 충분히 글로서 표현하질 못했다.
  자신의 추한 외모(?) 때문에 여자가 멀리했을 때의 충격은 과연 어떤 것일까? 여러분은 그런 그의 심정이 이해 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모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마음이며, 마음은 첫인상에는 항상 감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여자들은 첫인상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듯했다. 외모와 재산으로 남자친구, 애인을 택하는 것이 비단 그녀들뿐만이 아니고 요즘 신세대 여성들이 지닌 특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성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만일-만일에 그대의 남자친구나 애인이 사고를 당해 얼굴이 흉하게 변하고, 재산마저 모두 잃어버린다면 그래도 그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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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을 주는 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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