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05. 의견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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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05. 의견일치

행복 카페 이야기

Happy Cafe Story

이야기 다섯

의견일치

이정세 지음

 
  현수가 미연이라는 여자랑 첫 데이트를 갖은 것은 가을이 막 시작된 9월 첫째 주 토요일 오후이다. 그들은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라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행복카페의 구석에 마주앉아 키위 쥬스를 홀짝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통통한 얼굴의 미연이 물었다.
  “지금 나오는 음악이 무슨 음악인지 아세요?”
  듬직한 체구의 현수가 대답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요.”
  미연이 웃을 때 보이는 보조개를 살짝 내비치며 말했다.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 라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곡이에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중 하나죠.”
 
  안경 너머로 웃는 눈길을 주며 현수가 말했다.
  “그래요? 그럼 나도 이곳을 앞으로 즐겨 들어야겠네요, 하하.”
  현수와 미연은 같은 건물에 있는 두 사무실에 각각 근무하는 총각, 처녀이다. 한 건물에 같이 붙어있는 탓에 그들은 자주 얼굴을 마주했고, 간단한 인사말 정도는 오고가는 가벼운 사이로 발전해 갔다.
 
  현수는 평소 미연을 좋게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도 아니고, 몸매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숨겨놓은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녀가 좋아 보였던 것은 그녀의 평소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
 
  현수가 있는 사무실에는 복사기가 없었기에 미연의 사무실에 있는 복사기를 사용하기 위해 자주 찾아갔다. 그 때마다 미연은 반갑게 맞아주었고, 음료수가 있으면 한 잔씩 건네주곤 했다.
 
  현수는 그런 미연이 마음에 들었고, 어제 저녁 퇴근 시에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리고, 미연은 흔쾌히 승낙해 주었던 것이다.
 
  현수와 미연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둘이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고 말았다.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둘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하하하.”
  “호호호.”
  “먼저 말하세요.”
  “먼저 말하세요.”
  둘은 다시 같은 말을 동시에 했다. 현수와 미연은 다시 웃었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미연이 말했다.
  “우리는 마음이 맞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하하.”
  현수는 문뜩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미연에게 제안을 했다.
  “미연 씨. 우리 앞으로 이러는 게 어때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연이 물었다.
  “뭐를요?”
  “앞으로 미연 씨와 제가 다섯 번 동안 의견일치를 본다면 결혼하기로요.”
 
  “어머? 호호, 재미있겠는데요.”
  “세 번 의견일치를 보면 손을 잡고, 네 번 의견일치를 보면 입맞춤, 다섯 번 의견일치를 보면 결혼하는 거예요.”
 
  “엉큼하게 시리. 좋아요. 그렇게 해요. 지금 한번 의견일치 했으니 앞으로 두 번만 더 의견일치를 보면 손을 잡는 건가요? 호호. 앞으로 조심해야겠네.”
 
  “하하, 자, 그럼 영화 보러 가실까요?”
  현수와 미연은 영화를 보고 그날 저녁 늦어서야 헤어졌다. 물론 다음 데이트 날짜는 정해 놓은 뒤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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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 현수와 미연은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현수는 묘하게 들떠 있었다.
 
  “잘 보내셨죠?”
  미연의 물음에 현수가 즐겁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미연 씨도 역시?”
  “물론이에요. 오늘은 어디로 놀러갈까요?”
  현수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이렇게 할까요? 여기 메모지가 있으니까 자기가 가고 싶은 데를 적는 거예요. 그래서...”
 
  미연이 말을 가로챘다.
  “그래서 의견이 일치하면 하나가 또 채워지는 건가요? 호호. 그렇게 해요, 그럼.”
 
  현수와 미연은 메모지에 오늘 자신이 가고 싶어하는 곳을 각각 적었다.
 
  “독립 기념관.”
  “독립 기념관.”
  “우와!”
  “우와!”
  둘은 마주보고 웃었다. 그들은 또 한번의 의견일치는 본 것이다.
 
  “앞으로 한번만 더 채우면 손을 잡아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네, 호호.”
 
  말로는 큰일이라고 하지만 미연은 즐거운 모양이다.
  현수와 미연은 그날 엑스포 구경으로 하루를 보내고. 다음 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현수는 일주일 내내 즐거웠다. 시간만 나면 미연의 사무실을 찾아서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점심때면 어김없이 막간 데이트를 나누곤 했다. 그 둘의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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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점심 시간이었다. 둘은 사무실 직원들의 눈총을 받으며 밖으로 나와 가까운 공원을 찾았다. 첫 데이트하던 날 제안한 것이 있어 아직은 팔짱을 끼거나 어깨동무를 하지는 못했지만, 둘의 사이는 연인사이 못지 않게 다정해 보였다.
 
  벤치에 앉은 뒤 둘은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미연이 먼저 말했다.
 
  “현수 씨 지금 무슨 생각해?”
  “바보 같은 생각.”
  “무슨 바보 같은 생각?”
  “세 번째 의견일치는 언제 하나 생각했지.”
  “어머!”
  미연은 자못 놀란 표정이었다. 현수가 의아하게 쳐다본 것은 당연하다.
 
  “현수 씨도 그 생각했어? 사실은 나도 그 생각했는데...”
  미연은 그 말을 하고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정말? 그럼 세 번째 의견일치를 본 거네. 서로 같은 생각을 했으니, 하하.”
 
  미연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점심 시간이 끝나가자 그들은 팔짱을 끼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현수는 마냥 좋았다. 그는 미연이 일부러 현수의 생각을 물어 본 뒤, 자신도 그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거짓말 한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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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이후였을 것이다. 둘은 만날 때마다 묘한 흥분됨을 느끼게 되었다. 아마도 네 번째 의견일치가 생겨 입맞춤을 할지 모른다는 설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입맞춤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둘 다 네 번째 의견일치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현수는 가급적 말수를 줄이는 눈치였고, 미연 또한 데이트 장소나 시간 약속을 정할 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무조건 현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괜히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가 그게 현수의 생각과 일치하게 되면 23년 동안 간직한 입술의 순결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연이 현수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은근히 그걸 바라는 지도 모르겠다. 단지 겉으로 그걸 들어내놓기 싫을 뿐. 그런걸 내숭이라고 하는 듯 싶다.
 
  어느 수요일 밤중에 현수는 잠도 오지 않아 미연이네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들은 자주 전화통화를 했었던 것이다. 미연이네는 통화중이었다. 어디 친구랑 통화중이겠지 하고는 잠시 뒤에 다시 걸었지만 역시 통화중이었다.
 
  ‘전화를 오래 하는 걸.’
  10분 후에 다시 전화를 했지만 역시 통화중이었다.
  ‘밤 11시인데 이렇게 오래 전화를 하다니 이상한걸.’
  다시 10분 뒤에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그 때도 통화중이었다.
  ‘도대체 누구랑 통화하는 거야? 누구랑 하는데 이렇게 오래하는 거지? 나하고 할 때도 이렇게 오래 한 적이 없는데.’
 
  현수는 은근히 화가 났다. 이런 밤중에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자신 외에 또 있다는 것이 그로서는 화가 날만한 일이었다. 미연과 통화하는 상대가 여자든 남자든 현수는 화가 났다.
 
  마지막으로 10분 뒤에 다시 전화를 걸었고, 어김없이 들려온 통화중 신호음에 수화기를 꽝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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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아침 현수의 기분은 엉망이었다. 오전 내내 자기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에만 열중했다. 동료가 뜻밖이라는 듯 말을 걸어왔다.
 
  “여어, 현수 씨, 오늘은 아래 사무실에 안 가나보네? 1시간이 멀다하고 가던 양반이 웬일이래?”
 
  “아래 사무실에 자주 가서 뭐합니까?”
  그렇게 말하는 자신이 밉기는 했지만, 미연한테 화난 것은 사실이었다.
 
  ‘점심시간에 따져봐야겠군.’
  점심시간이 되어 현수는 미연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미연이 웃으며 맞아 주었다.
 
  “현수 씨 오전에 왜 한번도 안 왔어? 출장 갔었어?”
  “아니.”
  “그럼 왜? 무슨 일 있었던 거야? 현수 씨 올까봐 커피 끊여놓았는데.”
 
  “어제 밤에 전화했어.”
  “몇 시쯤에?”
  미연은 현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자신도 모르게 웃는 얼굴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11시.”
  “11시? 어머.”
  현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 왜 이렇게 놀라지? 설마 그 시간에 전화한 상대가 남자인 거 아냐?’
 
  “왜 그렇게 놀래?”
  “아니, 나도 11시에 현수 씨 집에 전화했거든. 통화중이더라. 그래서 10분 후에 다시 했는데도 통화중이었어.”
 
  이번에 놀란 것은 현수 쪽이었다.
  “뭐라고? 그럼 그 시간에 다른 사람이랑 통화한 게 아니고 우리 집에 전화했었단 말이야?”
 
  “응.”
  “맙소사. 그럼 둘이 같은 시간에 서로의 집에 전화를 걸었던 거구나. 그래서 통화중 소리만 난 거고.”
 
  진지하던 얼굴이 눈 녹듯 사라지고 웃음으로 변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또...”
  “난 또? 라니?”
  “미연 씨가 다른 남자랑 전화하는 줄 알았지.”
  “피이. 남자들이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네. 그래서 오전 내내 나 보러 안 온 거구나? 그 까짓 거 가지고 화를 내다니. 실망인걸, 현수 씨.”
 
  “그래도 네 번째 의견일치는 봤잖아. 서로 같은 시간에 전화 건 거!”
 
  갑자기 미연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몰라.”
  그러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현수는 그 날 저녁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일단은 사무실로 돌아왔다.
 
  물론, 저녁 때 둘이 만나 으슥한 장소를 택해 입맞춤을 했다는 것은 물을 보듯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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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들이 기대하는 한 가지는 다섯 번째 의견일치였다.
  손도 잡았겠다, 입맞춤도 했겠다, 남은 것은 결혼 뿐 아닌가. 둘의 사이는 잘 익은 사과처럼 발그스름하게 익어 갔다. 하지만 한달, 두달이 지나도록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 미연은 이제 현수의 의견에 무조건 동의하였고, 현수 역시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디로 갈까?’ 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평온한 연인 사이가 된 거다.
 
  “저 영화 재미있겠는데?”
  “그럼, 그거 보러가요.”
  “저 옷 멋져요, 현수 씨.”
  “그럼, 들어가서 입어보자.”
  “어머, 귀여운 액세서리네.”
  “이거 얼만가요, 아저씨?”
  “저녁 때 뭐 할거야, 현수 씨?”
  “내일 있을 세미나 준비해야지.”
  “그래? 난 책 읽으려고 했는데. 일요일에는 뭐 할거야?”
  “당연히, 미연이랑 데이트해야지.”
  “안돼. 그날 나 친구 만나야 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거든.”
  “미연아, 지금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 안 해. 현수 씬?”
  “미연이가 무척 예쁘구나 하는 생각.”
  그들의 대화는 늘 쌍 이러했다. 다정한 대화이기는 했지만, 좀처럼 의견일치가 오지 않았다. 결혼이란 역시 힘든 일인가 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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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첫 키스를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현수는 직장 일로 출장을 갔다 오는 도중에 미연과 부딪혔다. 현수는 깜짝 놀랬다. 그도 그럴 것이 미연이 옆에 웬 남자가 서있었기 때문이다. 묘한 상황이었다. 현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미연을 지나쳐 옆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회사 동료일 수도 있지만, 회사 동료끼리 팔짱을 끼고 거리를 나돌아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현수는 갑자기 눈에 불이 확 붙는걸 느끼며 주먹을 꽉 쥐고 말았지만, 아무 말도 안하고 미연을 지나쳐 회사로 돌아왔다.
  “현수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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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연에게 전화가 걸려 온 건 퇴근 바로 전이었다.
  “현수 씨, 아까 왜 그냥 갔어? 화난 얼굴을 하고.”
  ‘뻔뻔한 여자군.’
  현수는 할 말이 없었다. 오후 내내 여러 가지 생각도 해봤다. 그 팔짱을 낀 남자가 미연의 남동생이거나 친척일수도 있는 일이므로. 하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아무리 동생이나 친척이라 해도 자신이 모르는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을 낀 채 웃으며 걸어가는 미연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이런 것이 질투라는 감정인가?
 
  “아까 그 남자 때문에 그래? 그 남자 사촌오빠야.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오빤데, 모처럼 서울 올라왔기에 이곳저곳 구경시켜 주는 도중이었어. 현수 씨한테도 소개시켜 주려 했단 말이야.”
 
  좀 전까지만 해도 상대가 누구였던지 간에 화가 치밀었는데, 사촌오빠라는 말을 막상 듣고 보니 화가 누그러졌다. 현수는 속 좁았던 자신을 책망했다.
 
  ‘맞아, 내가 오해를 한 거야. 내 잘못이지. 너무 생각 없이 화를 낸 거 같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미연에게 말했다.
  “미안, 내가 오해한 모양이구나. 미안해. 음, 오늘 저녁은 내가 살께.”
  그 사건은 일단 그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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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사귀던 남자 없었어?”
  “현수 씨 갑자기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야?”
  “으응, 그냥.”
  “요즘 이상해 졌어. 사귀던 남자 없냐고 묻지를 않나, 미팅 몇 번했냐고 묻지를 않나. 현수 씨 대체 왜 그래? 나한테 무슨 불만 있는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러는지. 처음에는 너랑 참 잘 맞는 사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그런데 계속 의견이 맞는 게 없잖아. 나 이 영화 보고픈대 너는 저 영화 보고프다하고, 나는 한식집에 가 고픈데, 너는 일식 집에 가고파하고, 예전처럼 뭐가 안 맞는 기분이 들어.”
 
  “치이,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래. 사람이 언제까지 똑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하지만 6개월 동안 우리 의견일치 본 게 하나도 없잖아?”
  “없으면 어때. 서로 좋아만 하면 됐지.”
  “서로 좋아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뭐라고?”
  “아니, 아니야.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현수 씨,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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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말로 휴가 잡으려고 해. 현수 씨도 그날 잡자.”
  “안돼, 8월말에 중요한 프로젝트 있어. 거기에 내가 참여해야 나중에 승진 때 점수 얻을 수 있다고. 7월말에 하는 게 어떨까? 8월초나.”
 
  “하는 수 없지, 뭐. 현수 씨가 그러자면 그래야지. 8월초로 하자 그럼.”
 
  “대신에 휴가 때는 멋진 산으로 가자고. 재미있을 거야.”
  “산? 난 산 싫어. 바다로 가자.”
  “바다는 사람 많잖아. 사람 많은 건 질색인데.”
  “그래도 난 바다가 좋아. 휴가 날짜는 내가 양보했으니까 장소는 현수 씨가 양보해라, 응?”
 
  “하는 수 없지. 그럼 바다로 하자. 지루한 휴가가 안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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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에 의견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그 때마다 한 사람이 양보를 해서 다툼으로까지 번지지는 않았지만, 언제 다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휴가가 끝나고, 현수의 프로젝트가 무사히 끝나니 겨울이 되어 있었다. 현수와 미연의 마음속에는 슬슬 결혼이라는 단어가 자리를 하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한 살을 먹는데.’
  둘은 그렇게 결혼하고 파 했다. 근데, 아직 마지막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기에 결혼하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결혼하면 어디로 신혼여행 가는 게 좋을까?”
  “어머? 아직 다섯 번째 의견일치가 남았다고요, 늑대 아저씨.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휴우, 언제 다섯 번째 행운이 일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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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의견일치를 만들고자 하는 욕구가 그들 두 남녀의 가슴속에 잔뜩 묻혀 있었다. 그들은 그래서 더욱 자주 만났고, 더욱 많은 곳을 다녔으며, 더욱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상대방의 좋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아울러 상대방의 흉 또한 발견하게 되었다.
 
  “미연이는 너무 사소한 것에까지 신경 쓰는 거 같아.”
  “현수 씨는 너무 대담성이 없어 보여요.”
  “미연이 머리 반곱슬이구나. 반곱슬은 성격이 안 좋다고 하던데.”
 
  “현수 씨 손톱에 때 있다. 아침에 머리 안 감았구나? 손톱에 때 있는 거 보면 알아.”
 
  “미연이 이마에 흉터 있구나.”
  “현수 씨, 아침 먹고 이 닦았어?”
  “미연아, 너 너무 짧은 스커트만 입고 다니는 거 같다.”
  “돈 너무 많이 쓰지마, 현수 씨.”
  “그 귀걸이 비싸 보이는데.”
  “현수 씨 왜 담배 못 피워? 남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 멋지던데.”
 
  “저번 달 생각나? 그 때 너 술 너무 먹어서 회롱회롱하는 거 거 겨우 집까지 바래다주었잖아.”
 
  “현수 씨. 제발 길거리에 침 뱉지마. 남들이 보잖아.”
  “미연아, 제발 단추 좀 잠가라. 허리 구부리면 옷 사이로 가슴 보인단 말이야. 칠칠치 못하게”
 
  “현수 씨. 남자가 너무 쫀쫀한 것 같아.”
  “미연아 너무 솔직한 건 안 좋아.”
  “현수 씨. 내가 과거 있을 거 같아 보여?”
  “미연아. 넌 아무래도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는 거 같다.”
  “현수 씨. 싫다, 그런 말할 때면.”
  “미연이 정말 싫다. 실망 주지마, 제발.”
  “현수 씨, 나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미연이 너 가끔 사람 짜증 나게 할 때가 있어.”
  “미안해.”
  “내 잘못이야.”
  작은 다툼이 많아 졌다. 다정했던 때를 생각하면 많은 발전이다. 앞으로 더 많은 다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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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그만 만나자.”
  먼저 말을 꺼낸 건, 역시 여자였다. 현수는 행복카페의 노란 불빛 아래서 빛나는 미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 말뜻을 새겨보았다.
 
  “왜?”
  “우린 너무 안 맞는 것 같다. 매일 만나면 싸우기만 하잖아. 뭐하나 의견이 맞아서 즐거움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
 
  “그건 인정하지만, 그 것 때문에 그만 만나자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솔직히 말하면, 집에서 결혼하래. 그런데 현수 씨는 아무래도 내 상대가 아닌 것 같아.”
 
  “그래? 그게 이유라면 하는 수 없지. 나도 더 이상 너랑 만나고 싶지 않아. 전에는 만나면 편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오히려 부담스럽고 불편해. 만나면 싸우기만 하고, 다투고, 아옹다옹하고. 이제는 그것조차 피곤하다고 생각하던 차였어.”
 
  “잘됐다. 현수 씨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말하기 더 수월하다. 나 내일 직장 그만 둘 거야. 헤어진 마당에 같은 건물에서 오다가다 만나면 불편할 것 같으니까.”
 
  “그래. 네 결정인데 말릴 수 없지. 네가 없으면 조금은 허전하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러길 바래. 나 역시 그렇게 될 거야.”
  둘의 헤어짐은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아무런 아픔도 없었고, 아무런 슬픔도 없었고,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자연스럽게 만나 듯 자연스럽게 헤어진 것이다.
 
  현수와 미연은 행복카페를 나와 잠시 동안 거리를 거닐었다.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데이트라는 걸 그들은 잘 알았다.
 
  미연이 말했다.
  “이제 헤어질 때가 다 됐다. 그 동안 즐거웠어.”
  “나도 그래. 즐거웠어.”
  “좋은 추억이 될 거야. 현수 씨 좋은 여자 만나 행복하길 바래.”
 
  “그래. 미연이도 좋은 남자 만나서 잘 살아.”
  “언젠가 또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 때 웃으면서 이야기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지. 현수 씨는 좋은 사람이니까.”
  “뭐하나 물어봐도 되겠어?”
  “응, 물어봐.”
  “정말, 나랑 헤어지기를 원해?”
  “정말이야. 현수 씨는?”
  “나도 방금 전까지는 그랬어. 헤어지고 싶었지.”
  “그런데, 지금은?”
  “뭐 느껴지는 거 없어?”
  “뭘 느껴?”
  미연은 의아하게 현수를 쳐다봤다. 그러다 이제 알았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현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설마...”
  “그래. 맞아. 우리 다섯 번째 의견일치를 본 거야. 서로 헤어지자는 거에 말이야.”
 
  “어머, 세상에. 그럼 우린 결혼해야 하잖아. 근데 서로 헤어지기를 원했는데. 이를 어째.”
 
  미연은 놀라 벌어진 입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잃어버릴 뻔한 현수의 다정한 두 눈동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둘은 한 동안 그렇게 멍청하니 봄의 햇살 아래 서 있었다.
 
  Fin...
 
  ...............................
  글을 마치고 나서
 
  ‘의견일치’는 참으로 만화 같은 이야기다.
  5번의 의견일치를 보면 결혼하겠다는 조건이 무척이나 만화적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랑하는 애인과 해볼만한 내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피해와 손해가 없는 내기라면 해 볼만하지 않을까?
  여러분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의견일치’같은 내기를 한번 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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