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04. 하나의 사정(事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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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04. 하나의 사정(事情)

행복 카페 이야기

Happy Cafe Story

이야기 넷

하나의 사정(事情)

이정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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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기 전에...
 
  사설BBS: 90년도 초에는 하이텔이나 천리안 같은 대중 통신서비스가 전국적이질 못하고, 일부 유명 도시에서만 가능했다. 대신 사설BBS라는 것이 유행하다시피 했는데, 사설비비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컴퓨터에 호스트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운영하는 아주 작은 통신서비스였다. 연결된 전화선도 하나뿐이어서 한 명이 접속해 있으면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도 못했다. 이 사설비비는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쉽게 모여 이야기할 수 있었고, 누구라도 어려움 없이 만들 수 있었기에 90년도 초에 많은 인기를 얻은 통신매체였다. 하지만 대중 통신서비스가 점점 전국망이 되면서부터 하나둘 사라지더니 지금-90년도 말-은 그 흔적도 찾기 힘들어졌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온천수’는 그러한 사설비비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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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이라는 것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묘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 채팅(Chatting)이라는 통신 대화에 매료되어 버린 뒤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통신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버렸다.
 
  서로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아이디와 이름뿐인데도 서로 친밀감을 느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했고, 내성적인 나에게는 또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디 July7, 이름은 나하나. 성별은 물음표.
  그-어쩌면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사설 비비에스의 하나인 ‘온천수’에서였다. 사설비비라고는 하지만 한꺼번에 접속할 수 있는 로드가 8개였고,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처럼 여러 명이 채팅을 할 수 있는 멀티채팅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나는 비싼 사용료를 내며 하이텔이나 천리안에서 채팅하기보다는 이곳에 자주 들러 같은 도시에서 통신을 하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하나’를 알게 된 것도 그쯤이었다.
 
  어느 날인가 ‘온천수’에 접속을 해 보니 노드(Node)를 점령하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은 아쉬운 기분이 들어 동호회 쪽으로 가 보기로 했다.
 
  동호회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행복동호회’였다. 많은 소설과 게시물이 있다는 것 외에 내가 이 동호회를 선호하는 이유는 ‘행복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동호회장이, 내가 자주 가는 행복카페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동호회의 게시물을 읽어보던 중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유난히도 게시물을 많이 올린 것에 호기심을 품었다. 그 사람은 ‘나하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고,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듯 올려놓은 시와 소설이 하나같이 애틋하고 풋풋한 신선한 과일과도 같았다. 나는 밤을 새우며 하나가 올려놓은 게시물을 모조리 읽어내려 갔다.
 
  그리고 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접속된 사람들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July7이라는 아이디는 접속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접속을 끊고 이불을 뒤집어 쓴 다음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함을 품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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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에도 어김없이 온천수에 접속하여 접속사항을 살펴보았다. 나와 채팅을 했던 몇 명이 있었기에 채팅방으로 초대를 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은근 슬쩍 하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 나하나. 물론 알고 있어요. 수수께끼의 인물이죠. 본명이 아니라고도 하던데.”
 
  “남자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게시물을 엄청 올리더군요.”
  “여자 아닌가요? 난, 여자라고 믿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남자라고 하데요.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여자 이름 같은데, 난 잘 모르겠다. 그런데, 넌 왜 하나 님에게 관심을 갖는 거니?”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가짜 아이디라고 하더군요. 내 생각에도 그럴 거 같아요. 익명성! 통신의 장점이자 단점이죠.”
 
  사람들의 말은 천차만별이었다. 뜻밖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하나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고, 성별에 대해선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른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점점 하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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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서란에 올라온 하나의 글을 통해 그-또는 그녀-가 현재 대학생이며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까지는 알아낼 수가 있었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그가 올려놓은 시와 소설이 대부분 여성취향이라는 점에서 여자일 확률이 높다고 믿었지만, 낙서란의 몇 군데에서 술을 마시고, 락카페를 가고, 당구를 친다는 내용이 있어 어쩌면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은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자신을 감추면서 통신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단순히 장난을 하기 위해 거짓 아이디를 만들어 게시물을 수없이 올린다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통신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거짓 아이디를 만드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바로, 장난을 치기 위한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남자가 여자 아이디를 만들어 남자를 유혹하는 이른 바 게이족들이나, 사람들에게 욕설이나 장난의 메일을 보내는 메일족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려 독특한 아이디로 들어와 장난스런 게시물을 올리는 게시물족들의 공통점이 바로 장난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의 경우에는 그게 아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실한 증거도 남겨놓지 않았을 뿐더러, 장난 메일을 보낸 적도 없고, 게시물 역시 충실하게 올려놓는다.
 
  사람들의 말 그대로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新장산곶매 동호회’의 동호회장인 동호와 채팅을 하던 도중에 하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 역시 하나라는 인물에 호기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자료를 수집하여 정체를 파악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약간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하나 님은 여자일까요?”
  “여자일 확률이 80퍼센트는 될 거예요. 그렇다고 남자일 경우를 배제할 수는 없죠.”
 
  “정말 수수께끼의 인물이네요. 그렇게 정체를 밝히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아마 무슨 사연이 있겠죠. 하지만, 조만간 정체가 밝혀질 겁니다.”
 
  “그래요? 어떻게요?”
  “지금 가입된 회원 중에 용의자가 몇 명 있어요. 지금 일일이 전화해서 알아 볼 생각이에요.”
 
  나는 동호의 말에 은근히 기대가 되는 한 편,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을 동호가 파헤쳐 버린다면, 통신을 그만 둘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역시 하나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동호가 밝혀내기를 은근히 바라게 되었다.
 
  그렇게 수수께끼에 둘러싸여진 하나를 채팅실에서 만나게 된 것은 그의 존재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게 된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그는 중간고사 때문에 일주일 동안 접속을 못했다는 말을 모니터에 디스플레이 시켰다.
 
  나는 이것저것 잡다한 이야기를 하며 그의 호감을 사려했다. 우선은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을 듯 싶었기 때문이다.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그리고 어쩌면 그의 말속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화면을 들여다보며 채팅에 열중했다.
 
  그러던 중 동호가 채팅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자신의 학교 이야기를 하던 하나가 화들짝 놀라며, 이만 가봐야겠다며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붙잡을 뜸도 없이 나가버린 하나가 남긴 말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나에게 동호가 말을 걸어왔다.
 
  “역시 하나 님은 나를 보면 도망가네요. 내가 너무 집요하게 추적했나 봐요.”
 
  “하나 님의 정체를 밝혔나 보죠?”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짐작이 가요. 정숙현 님이라고 알죠?”
 
  “ADAMS인가하는 아이디 쓰시는 분요?”
  “네. 하나 님은 그 분 친구예요.”
  “그럼 그 분에게 물어보면 되겠네요.”
  “아뇨. 물어봤는데 철저하게 숨기던데요. 아마 하나 님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 거 같아요.”
 
  동호는 하나의 정체를 밝혀야겠다는 굳은 의지를 한참동안 이야기한 다음에 이야기를 마치고 채팅방을 나가버렸다. 나는 접속한 사람들을 살펴보고 하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접속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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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하나를 채팅실에서 만난 것은 일주일 뒤였다.
  나는 동호가 하나의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었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어 잠깐 동안 통신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왜, 그렇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죠? 무슨 이유가 있나요?”
 
  “서로 대화를 하는데 성별이 굳이 필요할까요?”
  그 한마디에 나는 키보드를 두들기던 손을 멈추어야 했다. 하나의 말은 사실이었고, 너무나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대화를 하는데 성별이 중요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해지는 것은 왜일까? 상대가 남자일 때, 상대가 여자일 때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서로 틀리기 때문일까?
 
  나는 절로 한숨을 내쉬며 키보드를 쳤다.
  “하나 님 말이 맞아요. 대화를 하는 데에 성별은 중요하지 않지요. 그럼, 이제부터는 하나 님의 정체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을게요.”
 
  “고마워요. 정말로.”
  그리고, 아무런 꺼리낌 없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자신이 요즘에 들어 겪은 이야기들과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하나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단순히 수수께끼의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아닌 진정한 대화상대로 하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하나 역시 즐겁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자신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즐거운 대화가 몇 시간 지속되자 그는 이제 그만 자야겠다며 작별인사를 하고 접속을 끊었다. 나 역시 접속을 끊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이 들 때까지 나는 하나를 떠올렸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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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로 하나와 대화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는 매일같이 일정한 시간에 접속을 하였고, 나 역시 그 시간에 맞추어 접속을 한 뒤 그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간의 가치관과 고민거리, 그리고 최근에 본 영화와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를 교환했다.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하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 간에 그와의 대화는 재미있었으므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날이 보름 정도 지속되자 한번쯤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렇게 좋은 대화 상대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마음을 하나에게 은근 슬쩍 내비치자 그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오늘을 마지막으로 채팅을 그만해야 할 듯 싶네요.”
  “아니, 왜요? 제가 만나자고 한 것은 그냥 얼굴을 보고 싶어서이지 동호 님처럼 정체를 밝히려 하는 게 결코 아니에요. 비밀은 지킬게요.”
 
  “미안해요. 난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럼, 이제 저와의 채팅을 끝내실 건가요?”
  하나는 한참동안 반응이 없었다. 이것으로 하나와의 대화는 끝이 나는 건가? 아쉬웠다. 너무나 아쉬운 이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막연하게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나가 남자라면 좋은 친구로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여자라면 좋은 여동생으로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여태까지 하나와 나누었던 대화들, 분명 재미있고, 유쾌한 대화들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는 허전함이 있었다. 상대의 성별조차 모르고,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조건하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그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채팅을 마지막으로 하나와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쉬운 마음이 조금 있을 뿐, 더 연장시키고픈 마음은 없었다.
 
  하나가 친 문장이 화면에 표시되었다.
  “그렇게 저를 만나고 싶으신가요?”
  “그래요. 만나고 싶어요.”
  “만나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이렇게 채팅으로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나 보죠?”
 
  “채팅으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한계가 있잖아요. 난 하나 님과 좀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하나 님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상관없어요. 몇 개월 동안 많은 분들과 채팅을 해왔지만 하나 님처럼 제 마음을 이해해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분은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쉽게 친근감이 느껴졌고요. 그래서 만나고 싶은 거예요. 그게 그렇게도 힘든 부탁인가요?”
 
  “만나면, 후회하실 거예요.”
  “후회는 하지 않아요. 좋은 친구를 만나는데 후회를 왜 해요?”
  또다시 하나는 반응이 없었다. 무척이나 망설이고 있구나 하는 추측이 들었다. 하나가 친 문장이 보였기에 나는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그럼, 좋아요. 하지만 저와 약속을 해 주셔야 할 것이 있어요.”
 
  “약속이 무엇인데요?”
  “저와 만난다는 이야기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요. 저와 만나고 나서도요. 그리고 저와 만나고 나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주세요.”
 
  “좋아요. 약속할게요.”
  그와의 채팅이 이것으로 끝나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잘 풀리게 되자 마음이 즐거워졌다. 이제 그를 만날 수 있게 된다는 즐거움이 눈을 통해 머리로 들어오게 되자 입이 저절로 웃음을 띠게 되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약속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정하였다.
 
  날짜는 1월 13일 금요일, 시간은 오후 3시, 장소는 행복카페로 정했다. 하나는 잘 알겠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나 역시 약속 날짜와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컴퓨터 옆에 늘 챙겨놓는 메모지에 메모를 해 놓았다.
 
  13일의 금요일까지는 이틀 남아 있었다. 서양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13일의 금요일 날에 수수께끼의 하나를 만나게 되다니 기분이 묘해졌다. 나는 접속을 끊고, 자리에 누워 하나가 어떤 사람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남자일까? 여자일까? 어떤 모습일까? 그러는 사이에 나는 잠이 들었고, 꿈속에서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꿈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모습은 키가 크고, 긴 생머리의 예쁜 여자였다. 다소곳이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은 채팅 할 때의 분위기와 거의 똑같았다. 차분하고 조리 있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모습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을 때, 자명종이 울려 나는 잠에서 깨어야 했다.
 
  잠이 깨버린 그 순간까지도 꿈속에서 본 하나의 모습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즐거운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가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점점 커지게 되어 13일의 금요일을 더욱 기다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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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의 금요일이 되자, 컴퓨터를 다루는 직종에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특별휴가를 얻어 쉬게 된 이유가 컴퓨터 바이러스에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어이없는 미소를 지으며 하나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가게 되었다. (주: 이 당시에는 바이러스가 극성이었고, 백신에 대한 인식이 약했던지라 실재로 특별휴가로 하루 쉬는 직장도 있었다.)
 
  행복카페의 분위기는 다소곳이 나를 맞이해 주었고, 나는 평소 안면이 있는 주인에게 가벼운 인사를 한 뒤에, 입구가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아침부터 시작된 묘한 설렘 때문에 주체할 수 없던 나는 입구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약속시간보다 5분 일찍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 역시 일찍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인지 눈길이 자꾸만 입구 쪽으로 쏠리었다.
 
  검은 면바지에 초록색 티셔츠를 입고 오겠다던 하나의 모습은 약속시간이 가까워지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초조함을 이겨내기 위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 때, 문이 열리고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아가씨가 모습을 들어냈다. 청바지에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평범한 그 여자는 누구를 찾는지 카페 안을 서성이더니 나에게로 눈길이 쏠렸다. 나는 그 여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나의 눈길을 피하더니 다른 빈자리에 앉았다.
 
  당황하며 그 여자가 앉은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하나가 아닌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나올지 미리 이야기를 해 놓았으니 하나라면 나를 알아보았을 텐데. 역시 하나가 아닌가 보구나.’
 
  약속 시간이 5분이 지났다. 나는 다시 그 여자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 여자의 상대방도 아직 오지 않은 듯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자리에서 일어나 그 여자에게로 다가가 물어보았다.
 
  “저, 혹시 하나 씨가 아닌가요?”
  “아닌데요.”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원래 자리로 돌아와 쑥스러움에 빨개진 얼굴을 맹물을 마심으로써 진정시키려 했다.
 
  다시 문이 열리고 초록색 티셔츠를 입은 아가씨가 들어왔다. 나는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둥그런 얼굴에 살이 찐 듯해 보이는 그 여자는 카페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얼굴에 여드름과 주근깨가 범벅이 되어있어 그리 깔끔한 얼굴이라 할 수 없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 역시 나를 알아보고는 내 쪽으로 오는 것이었다.
 
  “혹시...”
  “하나 님인가요?”
  “맞아요.”
  아니기를 바랬던 나는 그녀가 하나임을 밝히자 조금은 무안해졌다.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 때문이었을까? 어제 밤 꿈속에서 나타났던 얼굴과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그녀의 모습에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그녀가 자신을 만나면 실망을 할지 모른다는 말을 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나는 커피를 시켰고, 그녀는 애플 파르페를 시켰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하나가 여자였다는 사실에 감사를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작은 고민에 빠졌다. 하나가 그런 나에게 말했다.
 
  “실망하셨죠?”
  “아뇨, 천만에요. 전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는 않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 한구석엔 실망스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금만 더 얼굴이 괜찮았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역시 여자 분이셨군요?”
  “제가 여자라는 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차분하고 조용하게 말하는 하나의 목소리는 맑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두 가지의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하나는 목소리가 예뻤지만 얼굴은 그렇지가 않았다.
 
  나는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오늘이 13일의 금요일이라는 건 아시죠? 그래서 특별한 사람을 만나니 기분이 좋아요.”
 
  “저도 그래요.”
  채팅실에서 이야기를 하던 분위기 그대로 하나는 이야기를 꺼내었고, 나는 그 이야기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콜라와 파르페가 내왔지만, 나는 콜라를 마시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가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얼굴을 보며 콜라를 마시기가 힘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콜라의 맛이 상한 것처럼 느껴질까 봐 두려웠는지도.
 
  하나는 여전히 미소를 지었고, 나 역시 겉으로는 미소를 지었다. 하나의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그 어떤 여자보다 뛰어났다. 그녀의 얼굴이 못해내는 일을 이야기의 분위기로 커버하려는 듯 그녀에게서는 묘한 마법 같은 것이 작용하는 듯 싶었다. 하지만, 얼굴이 조금만 더 예뻤더라면. 몸이 조금만 더 날씬했더라면.
 
  하나와의 이야기는 서서히 통신 쪽으로 흘렀고, 하나의 뒤를 쫓기에 여념이 없는 동호에게로 옮겨졌다. 하나는 동호에게는 절대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말라는 당부를 했고,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사실 오늘 이렇게 만나는 것도 얼마나 꺼려했는지 몰라요. 나올까 말까 많이 망설였어요. 그래서 조금 늦은 거고요.”
 
  “만남을 그렇게 피할 이유가 없잖아요?”
  “맞아요. 만남을 피할 이유는 없죠. 하지만...”
  하나는 말을 끝맺지 못했지만,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갔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나를 처음보고 실망이란 단어가 먼저 튀어나왔으니 말이다.
 
  거의 4시간 동안 앉아있었을까? 이제는 앉아있는 형태로 몸이 굳어버린 듯했다. 나는 굳어져 가는 몸을 펴기 위해 몸을 뒤척였고, 하나 역시 마찬가지인 듯했다. 하나가 이만 나가자는 말을 했기에 나는 승낙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찻값은 제가 낼게요. 만난 기념으로요.”
  나는 만류했지만, 그녀는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어 지불하고 말았다. 나는 무안한 마음을 가지고 그녀와 함께 카페를 나와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로 나왔다. 예의 상 저녁이라도 함께 하자고 했지만, 그녀는 이만 가봐야 한다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녀와 함께 걸으며 이상하게도 나와는 상관없는 거리의 사람들에게 신경이 쓰여졌다. 작은 키에 뚱뚱하고, 촌스러운 옷을 입었으며, 얼굴에는 여드름과 주근깨가 다닥다닥 나있는 여자와 함께 걸어가고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 녀석은 저걸 여자라고 달고 다니는 거야?”
  “남자가 좀 아깝다. 저 여자도 참 뻔뻔하게 그 꼴을 하고 괜찮은 남자를 차고 다니네. 훗.”
 
  “못 볼 것 봤군. 저것도 얼굴이라고.”
  나의 신경은 점점 거리의 사람들에게 쏘여졌고, 나란히 걷던 나의 몸은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그녀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녀는 그걸 알아차렸을까?
 
  “오늘 만남, 정말 즐거웠어요.”
  “저도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거죠?”
  하나는 웃음으로 답했다. 형식상 입에서 나온 말을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해 졌다.
 
  그녀는 버스가 오자 손을 흔들며 몸을 실었고, 나는 허탈함과 실망감을 앉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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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에 돌아와서도 머리 속은 온통 하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와 나누었던 오붓한 대화들, 그리고 채팅 할 때와 마찬가지로 느꼈던 잔잔한 그녀의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이 흔히 비유해서 말하는 메주 같은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저녁 시간을 그냥 보내게 되었다.
 
  그녀가 조금만 더 예뻤다면, 조금만 더 말랐다면, 조금만 더 키가 컸더라면 하는 생각이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나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겉으로는 사람을 모습으로 평가하지 않는다고 말하던 나 자신이 막상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실망을 느꼈다는 것은 결국, 나는 위선자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위선자일까? 차라리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저와 만나고 나서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해 주세요.”
 
  “물론이죠.”
  마음속이 착잡했다. 그녀가 그 말을 한 이유는 못 생긴 얼굴에 있었던가? 왜 진작 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까? 미리 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실망하지 않았을 텐데.
 
  밤 10시라는 시간이 되자 나는 버릇처럼 ‘온천수’에 접속을 했다. 하나도 이미 접속을 했는지 채팅방을 만들고 나를 초대했다. 나는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 정말 즐거웠어요.”
  “저도요. 너무 일찍 헤어져서 섭섭한 걸요.”
  “다음에 또 만나면 되죠. 그런데 정말 저를 만난 거 후회하지 않으세요?”
 
  “왜요? 얼굴 때문에요?”
  “네. 사실 잘난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것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숨기신 건가요?”
  “통신을 하면서 그걸 절실히 느꼈어요. 제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저에게 많은 남자들이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만나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통신 처음 했을 때는 멋도 모르고 그 중 몇 명을 만났기도 했죠. 하지만 그 후로 저와 다시 채팅을 한 사람은 없었어요. 저는 실망했지만, 저의 얼굴을 탓하지는 않아요. 얼굴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정체를 밝히지 않기로 한 거예요. 일부러 남자인 척하면서 락카페에 가고, 술을 벌컥벌컥 마신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더 이상 저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없고요. 덕분에 안심하고 다른 분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역시 그랬군요.”
  “오늘 만난 것도 이별을 각오하고 만난 거예요. 저를 다시 만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어요. 그냥 좋은 친구를 만났다는 추억으로 남길 수 있어요.”
 
  하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통신에서 여자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남자들에 대한 하나의 조치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모습에 실망하고 그녀를 떠나던 남자를 피하기 위해 정체를 숨겼다는 말 역시 가슴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조차 그녀와 다시 만나는 것을 조금 꺼려할지 모르기에.
 
  “전, 하나 님이 좋아요. 그래서 이렇게 채팅을 하고 있잖아요. 이별 같은 것은 생각하지 말아요.”
 
  “좋은 분 같아요. 정말로. 고마워요.”
  그녀와의 채팅은 1시간 정도 더 지속되었다. 그녀의 분위기는 여전히 차분했고, 나는 그녀와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신비에 쌓여있던 하나와 했던 채팅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을 안 뒤에 하는 채팅은 어딘가 모르게 예전과 같지 않았다. 신비함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얼굴 때문일까? 예전처럼 대화의 매력에 쉽게 빠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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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도 모르게, 날이 갈수록 그녀와 채팅 하는 시간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녀의 채팅신청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너무 졸려서 이만 해야겠네요.”
  “방에 손님들이 밀려와서 이만 줄여야겠어요.”
  “워드 칠 일이 있어서 그만해야겠어요, 죄송해요.”
  “내일은 여행가서 못 들어올 지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몸이 영 좋지 않네요. 감기인가봐요.”
  나 역시 하나를 만났던 남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속물일까? 이러다가 하나와 멀어지게 되면 어떻게 하지? 그녀 역시 내가 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나와 다시 만나면 그녀를 피하지 않게 될지도 몰라. 그녀와 다시 한번 만나보자.
 
  하나는 처음 때와는 달리 한번에 만남을 허락해 주었고, 며칠 뒤에 우리는 행복카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실망감이 조금은 줄어들거라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그녀를 또다시 본 순간 힘없이 꺾이고 말았다. 그녀의 모습은 처음 볼 때보다도 더 비참하게 나의 시야에 들어왔고, 이제는 얼굴을 정면으로 보기조차 역겹게 느껴졌다.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이야기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갔고, 나 역시 그녀의 분위기에 이끌려 또다시 몇 시간동안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조금은 따분한 시간이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뒤에 나누었던 채팅과 마찬가지로 따분한 시간이 점차적으로 나를 압박해 왔다. 그녀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따분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녀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이야기를 했고, 나는 이제 그만 나가자는 말로 그녀의 맥을 끊어 버렸다.
 
  카페를 나와 저녁을 하자는 말도 꺼내지 않은 채,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여전히 거리의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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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와 채팅 하는 시간들이 급격히 떨어진 것은 그 날 이후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와 채팅을 하던 시간이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씩 뜸해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며, 그녀가 매일 보내었던 메일 역시 뜸해져 갔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에게 답장을 보내는 일조차 힘겹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동호의 채팅신청이 화면에 표시되었다.
  “기뻐해 줘요. 드디어 하나 님 정체를 알아냈어요.”
  “그래요?”
  나는 시무룩한 기분으로 답변했지만, 동호는 기분이 좋은 듯 연식 타이핑한 메시지를 화면에 뿌리고 있었다.
 
  “네. 정숙현 님에게 악착같이 매달려서 겨우 알아냈어요. 물론 다 알아낸 것은 아니지만요. 예전에 숙현 님과 숙현 님 친구 몇 분과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거든요. 그때 나왔던 여자 중 한 명이 하나 님 같아요. 그런데, 제 기억으로는 실망스럽게도 얼굴은 영 아니었어요. 어때요? 기대에 어긋났죠? 하하, 사실 저도 얼굴이 못생겼다는 것에 기분이 이상해지더라고요. 그렇게 수수께끼의 인물이었는데, 이제는 수수께끼가 풀렸으니 그만 조사할까 봐요. 더 이상 조사해 볼 이유가 없어졌잖아요.”
 
  왜 사람들은 사람을 얼굴로 평가하는 것일까? 얼굴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하나의 얼굴을 보고 나서 실망을 했을까? 나 역시 그런 남자들처럼 속물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나는 위선자일까?
 
  하나의 모습은 ‘온천수’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그녀는 통신을 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그녀를 멀리하자 그녀가 먼저 눈치채고 떠나버린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신비에 쌓였던 하나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의 그 신비하고 재미있던 일들. 그것이 이대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을 내버려두어야 하나? 단지 그녀의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앞으로는 그녀와 그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이야기 나눌 수 없겠지?
 
  조금씩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날이 차곡차곡 쌓여갈수록 그녀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점점 그리움이 되어 찾아왔다. 나는 하나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좋아하는 감정을 쌓아갔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 나는 행복했고,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소중하게 느껴졌었다. 그런 것들을 그녀의 얼굴 하나 때문에 아낌없이 지워야 하는가?
 
  나는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그리고, 키보드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나는 위선자다. 나는 속물이다. 나 역시 다른 남자들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나는 바보다. 그리고, 내 자신이 미워 눈물이 났다. 나는 하나를 좋아한다. 그녀의 얼굴조차 나는 좋아해야 한다. 나는... 나는 하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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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을 하지 않은지 이 주일이 지난 듯했다.
  그 동안 통신을 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통신에 흥미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매일 같이 거르지 않고 하던 통신을 한순간에 그만두었지만, 이 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하고픈 욕구가 일어났다. 그 동안 알아두었던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라도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통신을 시도했다.
 
  하나가 접속해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로 기뻤다. 이제는 그녀를 만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있어 그녀의 흔적은 기쁨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채팅신청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내었고, 역시 반응이 없자 재차 보내었다.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그녀가 채팅방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죠?”
  전과는 달리 그녀의 말투는 쌀쌀했다. 나는 가슴 언저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할 말이 있어서요.”
  “그럼, 빨리 하세요. 지금 나가봐야 하거든요.”
  “내일 시간 있으세요?”
  “왜요?”
  “만나고 싶어서요.”
  “우리가 이제 만날 이유가 있나요?”
 
  그 말은,
  “내 얼굴에 실망한 다른 남자들과 별다를 바 없는 당신을 다시 만날 이유가 있나요?”
  라는 말과 다른 게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나갈까봐 서둘러 키보드를 두둥겼다.
 
  “이유가 있어요.”
  “이유가 뭐죠?”
  “만나서 이야기해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좋아요. 그럼 내일 1시에 행복카페로 갈게요.”
  그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서둘러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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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는 여전히 촌스러운 옷을 입고 맞은편에 앉아있었다. 그녀는 여드름과 주근깨로 도배한 둥그런 얼굴에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 있었다.
 
  “어제는 미안했어요. 사실 별로 채팅 할 기분이 아니었거든요. 제가 너무 쌀쌀하게 보였는지 걱정되네요.”
 
  “아뇨, 그렇지는 않았어요.”
  “미안해요. 이제는 만나지 않으려 했는데. 저를 피하는 거 이해해요.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제 외모 때문에 그러는 것도 알고요. 그래서 일부러 통신을 자제해 왔던 거예요. 앞으로는 통신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이제는... 더 이상...”
 
  하나는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상처를 받은 것이다. 자신의 외모 때문에 떠나간 많은 남자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못생긴 얼굴을 저주하며 흐느끼고 있는 것이다.
 
  “하나 님은...”
  나는 그녀의 흐느끼는 얼굴을 보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절대 못 생기지 않았어요. 난, 이제서야 알았어요. 하나 님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 분인지를.”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날 위로하지 않아도 돼요. 그럴수록 전 더 슬퍼진단 말이에요.”
 
  “결코, 하나 님을 위로하려고 꺼낸 말이 아니에요. 동정도 결코 아니고요. 난...”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하나 님을 좋아해요.”
  시간이 멈추어져 버린 것일까? 나를 보는 그녀의 모습은 정지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행복카페 안에 ‘만남’이란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나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이윽고 하나가 입을 열었다.
  “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전...”
  “하나 님을 좋아해요. 이건 진심이에요.”
  “하지만, 난, 난 이렇게 못 생겼는걸요.”
  “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난 하나 님의 외모마저도 좋아해요. 멍청하게도 난 이제서야 그걸 알았어요. 내가 하나 님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요.”
 
  하나는 말이 없었다. 대신 그녀의 눈에는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고, 카페 안은 ‘만남’의 노래 소리가 여전히 메아리치고 있었다.
 
  “...나의 운명이었기에, 바랄 수는 없지만 영원을 태우리.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아, 바보 같은 미소, 보이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나는 눈물이 고여있는 그녀의 얼굴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의 가슴속에 새겨지는 것을 느끼며...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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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마치며
 
  통신을 한지 얼마나 되었을까? 8년 정도. 짧게만 느껴지던 그간의 시간동안 통신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많은 것을 느끼었다. 통신 첫 모임 때 상상과는 달랐던 사람들의 모습-여자든 남자든-이제는 그런 거에 익숙해서인지 첫인상 따위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오류를 범하는 이가 있으리라.
 
  ‘하나의 사정’은 그런 남녀의 이야기이다.
  실재로 ‘온천수’라는 사설비비(지금은 없어졌지만)에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나하나’ 님을 상상 속으로 그려보며, 내가 겪은 몇 가지 경험을 혼합하여 단편을 구상했고, 이렇게 한 편의 소설로 남게 되었다.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한가? 얼굴도 모른 채 무조건 여자의 아이디만 쫓아다니는 남자인지는 않은지, 자신의 외모를 믿고 너무 설치고 다니는 여자는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 보았음 한다. 사랑은 외모가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말이다. <99.8 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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