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01. 장미를 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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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01. 장미를 피는 남자

행복 카페 이야기

Happy Cafe Story

이야기 하나

장미를 피는 남자

이정세 지음

 
  내일로 바짝 다가온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로 거리가, 가게에서 새어나오는 캐럴과 다정한 연인들과 끼리끼리 몰려다니는 헌팅 족들로 붐비고 있을 무렵, 한적한 구석에 위치한 행복 카페의 안은 입구에 조그마한 트리가 반짝이며 손님을 맞고 있을 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었다.
 
  조금은 퇴색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살리려는 카페 주인의 배려로 오늘밤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경음악이 조용한 볼륨으로 안을 메우고 있다.
 
  언제나처럼 카페 안의 손님은 조용함을 즐기는 사람만이 있을 뿐, 요즘 주가가 오르고 있는 대중가수들의 캐럴을 요란하게 틀어놓은 시내의 다른 카페처럼 손님들로 바글거리지는 않았다.
 
  더욱 조용함을 느끼고 싶은 손님들을 위해 일부러 조명의 불빛을 연하게 해 놓은 구석의 자리에 한 남자가 쓸쓸하게 앉아있다. 그는 입에 문 길고 가느다란 담배의 맛을 음미하는 듯 조용하게 빨고는 긴 연기를 내뿜었다.
 
  그가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깊어 가는 이쯤에 카페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손님이라는 것이 주인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고독을 방해하기 싫은 듯 주인은 바텐더에 앉아 낮에 지나갔던 손님들이 남긴 잔을 닦고만 있었다.
 
  방울 소리가 주인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방울을 진동케 만든 문이 살며시 열리고 한 여인이 들어왔다. 짙은 화장과 어스름한 조명 때문인지 그 여인은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어서 오세요.”
  그녀는 카페에 익숙한 지 주인의 형식적인 인사는 무시한 채 자신의 지금 기분에 어울리는 자리를 물색하면서 한동안 제자리에 서있었다. 적당한 자리를 발견한 듯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소리가 ‘라스트 크리스마스’의 음악과 조화를 잘 이루었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한쪽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잠시 주춤거렸다. 그 주춤함도 잠시, 그녀는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고 남자에게로 걸어간다.
 
  남자는 막 담배의 마지막 연기를 빨아 마신 뒤에 새로운 담배를 꺼내려던 순간이었다.
 
  그는 자신의 빈 앞자리에 앉는 여자에게 잠깐 눈을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로 시선을 내렸다.
 
  이제는 무감각해진 담배 연기가 다시 폐 속을 파고들었다. 몽롱함이 기분 좋게 찾아왔다.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
  여인은 이미 자리에 앉아있음에도 말을 걸기 위해 형식상 예의를 차렸다.
 
  “······.”
  남자는 말없이 담배의 맛을 음미했다.
  “고민이 있으신가 봐요?”
  “······.”
  “괜찮다면 제가 그 고민을 들어줄 수 있을까요?”
  “······.”
  “말이 없으신 분이시군요.”
  “······.”
  “장미를 좋아하시나 봐요? 장미는 주로 여자들이 많이 피우는 담배인데.”
 
  그는 장미가시가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것처럼, 한순간이긴 했지만 눈을 들어 그 여자를 주시했다.
 
  “저도 장미를 즐겨요. 괜찮다면 저도 한 대 주시겠어요?”
  남자는 갈등을 하는 듯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빨간색의 담배갑을 꺼내 여인에게 건네주었다. 여자는 가늘고 긴 담배를 하나 빼내어 빨간 색의 입술에 갖다댄다.
 
  주인이 물 컵을 가져와 여인의 앞에 내 놓는다.
  여인은 남자의 앞에 놓여진 것과 같은 것을 주문했다.
  장미의 앞부분이 빨갛게 물 들으며 여인의 눈이 가느다랗게 빛났다. 여인 역시 몽롱함을 음미하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장미는 가시가 매력이고, 이 장미는 길고 가느다란 것이 매력이죠. 마치 길고 가느다랗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담배 같아요. 그렇게 생각지 않으시나요?”
 
  남자의 무거운 입을 열어보겠다는 의도적인 질문이었지만 남자는 침묵을 깨기 싫은 듯 연기를 내뿜고 다시 빨아들였다.
 
  여인은 남자를 이해하겠다는 듯이 자신도 입을 다물고 장미의 맛을 음미했다.
 
  주인이 설탕과 프림이 들어있지 않은 블랙커피를 여인의 앞에 내놓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여인이 남자에게 라기보다는 자신에게 말하듯 작게 속삭였다.
  “장미와 블랙. 묘한 매치예요. 마치 정열적으로 타오르는 여자와 시한부 인생을 사는 무거운 남자를 연상시키죠.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인데도 이 세상 무엇보다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실제로도 잘 어울리죠. 비록 결과는 불행이었지만요.”
 
  여인은 은연중에 자신의 과거를 살짝 들추어냈다.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냉담하다. 여인의 이야기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모퉁이만을 응시한 채 여인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여인에게는 남자의 그 무행동이 더욱 말하기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듯했다.
 
  “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이야기할게요.”
  여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소중한 추억의 덩어리를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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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남자를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지만 따뜻하고 인정이 많다는 것을 눈빛으로 알게 되었죠. 무척이나 조용한 사람이었기에 이야기하기도 편했고, 며칠이 되지 않아 나의 마음을 그 사람에게 스스로 주게 되었어요.
 
  우리는 시간이 허락하는 때면 종종 이렇게 조용한 카페를 찾아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그것이 생활에 찌들린 나에겐 행복, 그 자체였어요.
 
  그 사람은 생활도 안정되지 않은 가난한 글쟁이였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았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항상 내 앞에 있을 때마다 품고 다니는 알 수 없는 우울함과 고독감을 나와의 이야기로 해독시키고 있다는 즐거움이 좋았으니까요.
 
  내가 술집에서 많은 뭇 남성들을 접대하는 그런 직업에 있다는 진실을 솔직히 털어놓았을 때도, 그는 이해해 주었어요.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아니 사랑할 수 없다고 말했어요.
 
  “제가 술집에서 일하는 싸구려 여자이기 때문인가요?”
  “당신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인가요?”
  그 사람은 간단하게 말했어요.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슬펐어요. 하지만 왜 그렇게 말하는지는 묻지 않았어요. 언젠가 그 사람 스스로 말해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죠.
 
  언제나처럼 그는 우울함과 고독감에 휩싸인 채로 카페에서 나를 만났어요. 바로 조용한 이 카페 안에서였죠.
 
  우리들이 처음 만났던 카페도 이 카페였어요.
  손님도 없고, 내부 장식도 현란하지 않았지만, 왠지 포근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에 그 사람과 자주 만났던 곳이죠.
 
  사람은 가끔 이유도 없이 우울할 때가 있어요.
  그 우울함으로 거리를 돌아다닐 때 이 카페를 발견했어요. 무엇보다도 카페 이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행복 카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평소 돌아다닐 때에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날은 눈에 띄더군요. 행운이 안에 있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섰죠. 그 때도 오늘처럼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었어요.
 
  안으로 들어서니 주인 외에는 사람이 없더군요.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으려 할 때, 그 남자가 눈에 띄었어요. 한 쪽 구석에서, 남자들은 창피하다고 피지 않는 장미를 피고 있는 남자였어요.
 
  우울함과 고독감에 쌓여있는 그 모습이 왠지 말을 걸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 남자의 테이블로 갔어요. 그것이 그 사람과의 첫 만남이었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고 하던가요?
  그 남자를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말하더군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를.
 
  “이제 우리들의 인연을 마감할 때가 온 거 같습니다.”
  나는 슬펐어요. 헤어짐에 대한 것 보단 그 남자의 곁에 늘 있는 우울함과 고독감을 말끔하게 씻어주지 못한 채 떠나야 한다는 슬픔이 더했죠.
 
  “당신은 장미와도 같이 정열적인 여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쓰디쓴 블랙커피와 같답니다. 이제 곧 차갑게 식어버릴 시한부 인생을 가진 남자와도 같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때문에 더욱 사랑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더욱 슬픕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이란 걸 선물로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고 그 사람은 떠났어요.
  우습죠?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이란 걸 선물로 주고 싶지 않다며, 이별을 하고 만 거예요.
 
  그는 내가 찾아갈 수 없는 아주 머나먼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죠. 그 사람이 늘 가지고 다니던 고독감과 우울함을 나에게 선물로 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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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고 담배를 재떨이에 넣는다.
  살짝 남자를 쳐다보았지만, 눈길은 여전히 다른 곳에 있었다. 여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고마워요.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남자가 자신의 장미 담배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여인은 머뭇거리긴 했지만, 곧 그것을 받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남자의 입에서는 처음으로 말이 새어 나온다.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답례로 제 이야기를 해드리지요.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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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만난 것은 작년 오늘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마치 익을 대로 익어버린 새빨간 장미 같은 여자였죠. 언제나 짙은 화장 속에 슬픔을 감추고 웃는 얼굴로 나를 대해 주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태였고, 무기력으로 인해 살아갈 의욕마저 잃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녀는 나의 이런 무기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서 들었는지 끝없는 이야기로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지난 일들도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녀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 - 능력 없는 아버지의 술버릇과 남편이 아닌 딴 남자와 관계를 맺으며 생활비를 충당했던 어머니 속에서 자란 그녀의 어린 시절. 슬픈 자국들로 얼룩져 버린 학창시절 - 술 취한 동네 오빠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어두운 숲 속으로 끌려가 집단 강간을 당했던 분노를 억지로 삼키며 사람이란 존재를 저주했던 학창시절. 사랑의 쓰디쓴 배신감에 눈물로 밤을 새웠던 사회생활 - 몸과 마음을 홀딱 주어버린 첫 남자에게 버림을 받아 자살까지 기도하고 두 번 다시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했던 그 때의 일. 그녀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슬픔과 분노가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슬픔과 분노를 감싸주고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와 같이 있지 않은 시간에는 소주로 나의 무능함을 저주하며 잠을 지새웠지요.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사랑한다고 말하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여졌습니다.
 
  나는 그녀의 어두웠던 추억들 속에 또 다른 슬픈 추억을 더해주기 싫었기에 그녀의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고, 난 결심을 해야만 했습니다. 어느 정도에서 그녀와 이별을 해야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정도’라는 것이 언제쯤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 역시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으니까요.
 
  그녀와의 만남이 운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별을 더욱 망설이게 했습니다.
 
  1년 전 오늘, 난 고독감에 휩싸여서 이 카페의 이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저물어 갈 때 벨소리와 함께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고독함과 지친 표정의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우린 한동안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녀가 나의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린 지나간 추억들을 이야기하고 다음날 이 카페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장미를 즐겨 피는 여인이었죠.
  그녀에게 어울리는 단어였습니다.
  장미 같은 여인. 나는 항상 나의 시에 그녀를 생각하며 장미를 그려 넣었습니다. 그녀는 장미로, 나는 블랙커피로. 그녀에게 그 시를 들려주곤 했었습니다. 그녀는 좋은 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내가 두려워했던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해요.”
  나는 망설였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기에...
 
  “당신이 너무 가난하기 때문인가요?”
  ‘당신만 있으면 난 가난하지 않아요.’
  “제가 술집에서 일하는 싸구려 여자이기 때문인가요?”
  ‘당신이 그보다 더한 곳에 있다해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나는 조용하고 간단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슬퍼하는 대신 말없이 장미를 피우더군요.
  나는 내 자신을 저주하며 그녀에게 또다시 말했습니다.
  “당신은 장미와도 같이 정열적인 여자입니다. 하지만 나는 쓰디쓴 블랙커피와 같답니다. 이제 곧 차갑게 식어버릴 시한부 인생을 가진 남자와도 같죠.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때문에 더욱 사랑할 수 없는 내 자신이 더욱 슬픕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별이란 걸 선물로 주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고 나는 그녀에게서 떠나버렸습니다. 암이라는 저주스런 병을 저주하며,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를 저주하며 그렇게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녀가 생각나면 이 카페에 들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 자리에서 장미를 피곤합니다. 그러면 담배의 몽롱함이 그녀의 장미 같은 얼굴을 나에게 선사합니다. 하지만 점점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나옵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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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는 자신의 슬픔을 달래듯 담배를 살며시 빨아들였다. 그런 그의 눈을 여인이 조용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떠져 나올 것 같은 남자의 눈을 바라보며 여인도 눈물이 흘러나오려는 것을 느꼈다.
 
  “그 여인에게 들려주었던 시를 저에게도 들려 줄 수 있나요?”
  남자가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장미를 빨아들였다. 남자의 입에서는 사랑하던 그녀에게 들려주었던 시귀절이 조용하게 나오고 있었다. 여인 역시 남자가 읊어주는 시와 똑같은 시귀절을 흘려보냈다.
 
 
  “운명처럼 장미가 나에게로 왔습니다.
  슬픔의 이슬로 피어난 장미가 나에게 행복이란 이름으로 다가왔습니다.
 
  감당하기 힘든 사랑으로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나는 블랙커피를 마시며 어두운 나의 미래를 상상합니다.
 
  나는 블랙이기에 장미를 사랑할 수 없었고, 그 거지같은 진실에 가슴을 부둥켜안고 가슴이 찢어지도록 슬퍼하며 블랙은 장미를 떠나려 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곧 이별을 뜻함을 장미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나의 가슴에 박혔을 때 나는 이별을 고해야만 했습니다.
 
  장미의 아름답고 가슴아픈 추억 속에 또 다른 슬픔을 주기 싫었기에 나를 저주하며 나는 장미의 곁을 떠났습니다.
 
  오늘도 나는 장미를 피우며 그녀를 생각합니다.
  사랑하기에 사랑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원망하며 그녀의 그리움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장미는 블랙을 사랑합니다.
  블랙은 장미를 사랑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그들은 서로 먼 곳에서 슬퍼합니다.
  오늘도 나는 장미를 피우며 그녀를 생각합니다.”
 
 
  시는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흘러나왔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여인을 바라본다. 여인은 남자를 바라본다.
 
  그들의 눈에는 슬픔과 그리움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들은 상대방의 눈에 고여있는 슬픔과 그리움을 느끼며 마음속으로 서로를 위로했다.
 
  그들은 한참동안을 그렇게 마주보며 크리스마스 이브의 마지막을 보내었다.
  카페에는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조용하게 울리고 있었다.
 
  Fin...
 
  94.12.-- 원고시작
  95.01.-- 원고마침
  99.08.03 원고수정
 
  글을 올리고...
 
  담배를 배우게 된 지 10일이 지났다.
  담배가 익숙해져가니 담배의 길이에 불만이 생기게 되었다.
  밤의 외로움에 뒤척이며 잠 못 이룰 때 전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여고생이 내가 담배를 배웠다는 말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담배의 이름을 이야기하며 그 특성과 맛과 길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미는 징그럽게 줄어들지 않아요. 빨다가 지쳐서 죽을 거예요.”란 말을 듣고 다음날 장미를 구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여자 이야기면 눈에 생기가 도는 어떤 사람에게, “남자들은 장미를 안 펴요. 그건 여자들만 피는 거예요. 남자가 장미 피면 꼴갑이라고요.”란 말에 글을 쓸 때만 피기로 했다.
 
  장미 담배를 입에 물고 보니 짙은 화장, 붉은 입술을 가진 여인이 머리 속에 영상으로 잡혔고, 고독한 여인의 이미지와 함께 글로 써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94년의 크리스마스 이브. 그 날은 첫사랑과의 달콤했던 키스로부터 3년이 지난날이었다.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외로움과 고독감으로 밀려와 슬픔이 되고, 슬픔이 결국 담배로 전환되었을 때, 떠나가 버린 여인을 가슴에 앉고 괴로워하는 남자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장미를 피는 남자’를 쓰게 되었다.
  담배 연기의 몽롱함이 첫사랑을 잊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생각나게 하는 이 밤에 나는 다시 담배로 밤을 지새울까 한다.
 
  이별은 만남을 알리는 예고편이라고 하던가.
  이 짧고 형편없는 소설 속에서 나는 이별은 곧 만남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 속처럼 그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또 다른 만남은 못하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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