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1 미니스커트를 입은 저승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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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1 미니스커트를 입은 저승사자

  Act.1 미니스커트를 입은 저승사자
 
  짧은치마에 가슴이 드러나 보이는 청잠바를 입은 짧은 커트머리의 귀여운 아가씨.
 
  영호가 꿈속에서 본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하지만 그 여자는 여전히 그의 침대 머리맡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꿈치고는 너무 현실적이잖아. 저 여잔 진짜 같은데.’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이 그 여자의 모습은 정말로 선명했다. 영호는 꿈속에서도 혼자 생각하며 의문에 빠져있었다.
 
  ‘어쩜 꿈이 저토록 선명할까? 꿈은 흑백이라고 했는데, 저 여자의 현란한 옷은 분명 칼라잖아.’
 
  영호는 마냥 신기한 듯 침대에 누운 채로 여자를 올려다보고 만 있었다.
 
  “자자, 그만 일어나요. 그렇게 죽은 개구락지 쳐다보듯 보지 말란 말이에요. 그러잖아도 가뜩이나 열 받아있는 영혼한테.”
 
  여자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귀를 후벼팠다. 정말 생생한 꿈이었다.
 
  ‘내일 문 선배에게 이야기 해줘야겠군.’
  “빨리 일어나지 못해요? 난 지금 바쁘단 말이에요.”
  여자의 목소리가 커졌다.
  영호는 두 눈을 치켜들고 여자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여자의 무서운 표정에 순간 겁을 먹고 말았다.
 
  ‘무슨 꿈이 이렇게 내용이 없지? 무조건 일어나라니.’
  “이건 꿈이 아니에요. 그러니 빨리 일어나요, 빨리.”
  ‘으, 얼굴도 못생긴 게 목소리 하난 크네.’
  “뭐라고요? 내 얼굴이 못 생겼다고요? 뭐, 이런 자식이 다 있어? 빨리 일어나지 못해!”
 
  여자는 두 손으로 침대를 잡고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영호는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일어나는 순간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영호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아가씬? 누구요? 그리고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죠?”
  그렇게 말하면서 주위를 획획 돌아보았다. 혹시나 같이 들어온 동료들이 없는가 해서였다. 하지만 주의는 아무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여자 혼자 도둑질이라니 배짱한번 두둑하군. 그런데 도둑질하러 들어왔으면 조용히 물건만 훔치고 달아날 것이지 나는 왜 깨웠담.’
 
  영호는 흠칫했다.
  어디선가 신문에서 강간을 하고 다니는 여자들에 대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숙맥인 덕에 아직 동정임을 자랑하는 그는 덜컥 겁이 났다.
 
  “내참, 별 이상한 생각을 다하는 아저씨잖아? 여하튼 일어났으면 나를 따라와요. 서둘러야하니까.”
  여자는 영호의 생각을 읽고있는 듯했다.
 
  “서두르다니, 뭘 서둘러요?”
  “어휴, 지겨워라. 이런 걸 일일이 설명하고 다니니까 오늘도 늦게 퇴근하지. 하루 업무량을 줄여달라고 하던가 영혼 가이드북을 만들어 달라고 건의를 하던가 해야지, 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영혼 가이드북이라니? 혹시 미친 여자 아닐까?’
 
  “미쳤다니? 아저씨,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네? 이렇게 예쁜 미친년 봤어요?”
 
  영호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여자가 자신의 생각을 읽고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어떻게? 난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커트 머리 아가씨가 피식 웃었다.
  “그 설명 오늘만 해도 벌써 47번째네요. 어휴, 정말이지 내가 직접 영혼 가이드북을 하나 만들어서 가지고 다니던지 해야지, 원. 잘 들어요, 아저씨. 영혼한테는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 안 해요. 영혼 자체가 생각덩어리니까요. 생각하는 순간, 곁에 있는 영혼은 그 생각을 느끼게 되죠. 인간들 세상에서 말하는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거예요. 이해하셨죠? 이해 못했어도 대충 새겨들어요.”
 
  “영혼? 인간들 세상? 도대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아휴, 이 답답한 아저씨야. 아저씬 죽었어요. 지금 아저씨가 느끼는 것은 영혼이라고요. 나는 아저씨 영혼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고요. 아시겠어요?”
 
  “저승사자? 아가씨가? 저승사자라면 검은 삿갓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
 
  “그건 옛날 저승사자 얘기고요, 요즘 저승에서도 패션 자율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요. 아휴, 아저씨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네. 자 빨리 가요.”
 
  “아니 가다니, 어딜?”
  “어디긴 어디예요. 저승이지.”
  “저승? 그럼 내가 영혼? 그럼 난 죽었단 말인가요?”
  “당연하죠. 침대를 봐요. 아저씨가 누워있죠? 저게 바로 아저씨 껍데기예요.”
 
  영호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침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침대에는 영호 자신이 고스란히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영혼 없는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한 거예요. 자! 이제 가요.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지체했어요.”
 
  “말도 안돼. 내가 죽다니. 어제까지만 해도 문 선배랑 같이 술을 마셨는데. 그리고 미스 한과도 이야길 나누고...”
 
  “누구나 다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하지만 곧 익숙해 질 거예요. 자, 빨리 가요. 조금 있으면 해가 뜬단 말이에요.”
 
  “아냐, 이건 꿈일 거야. 분명 꿈이 맞아!”
  “멍청한 소리 그만해요. 이건 꿈이 아니라고요. 자꾸 ‘Ghost’의 패트릭 스웨이즈 흉내 낼래요? 빨리 가지 않으면 해가 뜬단 말이에요.”
 
  아가씨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해가 뜨면 어떻게 되기에?”
  ‘해가 뜨면 내가 다시 육체 속으로 들어갈지 몰라.’
  “멍청하군요. 육체에서 나온 영혼은 쉽사리 육체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해가 뜨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아저씨? 저도 마찬가지고 아저씨도 마찬가지로 햇빛에 타 버린다고요. 그렇게 되면 영혼마저 사라지는 거죠. 깨끗하게.”
 
  “말도 안돼.”
  “안돼도 할 수 없죠. 그게 사실이니까. 어떻게 하실래요? 여기 계속 계시다가 사라지실래요, 아니면 저랑 같이 저승으로 가실래요?”
 
  영호는 아가씨의 얼굴을 찢어지도록 바라보았다. 짧게 커트한 머리 밑으로 두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저승사자치고는 예쁘군.’
  “호호, 고마워요.”
  ‘이크, 생각을 읽을 수 있다고 했지.’
  “읽을 수 있는 게 아니고 들을 수 있는 거예요. 느낀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인가? 뭐 여하튼 생각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요. 물론 이승에 있을 때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그런데 아가씬 너무 사람 같군요. 저승사자도 영혼일텐데 그렇게 보이질 않네요.”
 
  “영혼 눈에는 영혼이 이승 때의 사람처럼 보여요. 영혼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아까 말했잖아요. 사람이 영혼을 못 보는 것도 영혼을 보려고만 해서 그런 거죠. 간혹 사람들 중 몇 명은 느끼는 감정이 발달해서 영혼을 느끼기는 하지만 역시 일부분이죠. 영혼이 되면 느끼는 감정이 무척 발달하기 때문에 영혼이 쉽사리 보이는 것이고요.”
 
  “저승은... 어떤 모습이죠?”
  “호호, 이제 조금씩 현실을 받아들이시네요. 그건 가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지금 많이 늦었다고요.”
 
  아가씨가 손을 내밀었다. 영호는 망설이면서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 버렸다.
 
  “자, 그럼 저승으로의 여행을 시작해 볼까요. 안전벨트를 꼭 매주세요. 출발!”
 
  영호의 손을 잡은 저승사자는 손쉽게 창문을 뚫고 베란다로 나갔다. 얼떨결에 창문을 통과한 영호를 바라보며 저승사자가 말했다.
 
  “이제부터 잘 들어요, 아저씨. 아저씬 영혼이에요. 무슨 말인지 아시죠? 영혼은 하늘을 날아다녀요. 슈퍼맨처럼 자유롭게 날수 있다는 말이에요. 자신이 사람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영혼이라 생각해요. 그럼 쉽게 날수 있을 거예요.”
 
  영호는 오피스텔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5층 높이이기는 했지만 현기증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설마 여기서 뛰어내리는 건 아니겠죠?”
  “뛰어내리는 게 아니고 날아가는 거예요. 자, 가요.”
  저승사자 아가씨는 서슴없이 창가에서 발을 떼어버렸다. 손을 잡고 있던 영호도 덩달아 창가에서 발을 떼고 말았다. 순간 영호는 그녀의 손을 놓치고 아래도 곤두박질쳐졌다.
 
  “으아아아악. 빌어먹을, 영혼은 무슨 영혼이야. 내가 영혼이라면 무게를 느낄 이유가 없잖아? 혹시 누가 날 자살한 것처럼 꾸미려고 저 여잘 고용한 거 아냐?”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말아요.”
  떨어지는 와중에서 옆을 보니 아가씨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공중에 떠있는 그녀의 모습은 영호가 보기에도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영호를 잡아 주었기 때문에 떨어짐이 멈추었다.
 
  “그러기에 손을 꽉 잡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하긴 떨어져도 다치는 일이 없기는 하지만.”
 
  “고, 고마워요.”
  “아저씬 정말 구제불능이네요. 무게를 느끼는 건 사람일 때의 느낌이 계속 남아있어서 그래요. 아무튼 서둘러요. 날수 있을 때까지 제가 잡고 가야할 것 같네요. 시간이 좀 걸리긴 하겠지만.”
 
  예쁜 여자의 손을 잡고 하늘을 나는 것도 괜찮다고 영호는 생각했다. 그녀가 킥킥 웃었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을 읽은 모양이다.
 
  ‘생각하는 걸 다른 사람이 안다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군.’
  미니 스커트 입은 저승사자와 영호는 건물들 위로 치솟아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도시의 밤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역시 영혼이 된 것일까? 라는 생각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직 실감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아가씨 이름은 뭔가요?”
  “이름? 그건 왜요? 어차피 조금 후면 헤어질텐데. 그래도 가르쳐 드리죠, 뭐. 쥬리예요, 쥬리. 귀여운 이름이죠?”
 
  “얼굴만큼이나 귀엽군요.”
  “호호, 고마워요.”
  “저승은 먼가요?”
  “멀다고 하면 멀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죠.”
  “에매한 대답이군요. 그런데 저승은 어떻게 가죠? 이렇게 한없이 올라가면 우주로 나갈텐데.”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이죠. 사람들이 사차원 입구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예요.”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래요. 참으로 신기하죠? 구름이 원래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이지 않게 하려는 연막 같은 거래요. 호호, 하긴 저도 전에는 그럴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요.”
 
  “전에는? 그럼 아가씨도 전에는 사람?”
  “후후, 그래요. 전에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말하는 쥬리라는 아가씨의 얼굴에 그림자가 생겼다. 영호는 모르는 척했다. 저승사자인 쥬리도 자신이 사람이었을 때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
 
  “가끔 비행기들이 그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곤 하죠. 아직 시스템이 완벽하지 못한가 봐요. 저승으로 통하는 입구를 다른 곳에 만들기가 힘들어서인지는 몰라도.”
 
  “버뮤다?”
  “많이 아시네요. 버뮤다에 입구가 좀 밀집되어 있어요. 그곳으로 비행기나 배, 심지어는 전함까지 들어오곤 해요.”
 
  “그럼 그런 것들은 어떻게 되나요? 다시 돌려보내지 않나요?”
  “불행하게도 영혼이 아닌 것들이 그 입구를 통해서 들어오면 나가질 못해요. 그러니까 시스템이 불안한 거죠, 버그인지는 모르지만. 원래는 영혼들만 출입을 해야 하는데, 쩝. 잘못 들어 온 것들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하는지 저도 잘 몰라요. 그런 것들만 처리하는 담당 부서가 있어서 그곳에서 처리하거든요.”
 
  “재밌군요. 저승에도 시스템이니 버그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다니...”
 
  쥬리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영호는 자신이 점점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조금씩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영혼이 된 것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엔 놀라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냥 담담할 뿐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려고 고개를 들어보니 미니 스커트를 입은 쥬리의 모습이 보였다. 미니 스커트 사이로 분홍색 팬티가 보였다.
 
  ‘저승사자도 팬티를 입는군.’
  “어머? 이 엉큼한 아저씨!”
  ‘이크, 실수다.’
  “호호호.”
  구름이 점점 가까워 졌을 때, 영호는 멀리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았다. 순간 영호는 쥬리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으아악.”
  깜짝 놀란 쥬리가 떨어지는 영호를 붙잡았다.
  영호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벌써 아침이잖아. 태양이 떴어요. 이봐요, 아가씨. 태양이 떴단 말이에요.”
 
  쥬리가 영호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런데요? 그게 어때서요? 아침이 되었으니까 태양이 뜬 건데 그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쥬리의 대답에 영호는 당황했다.
  “뭐라고요? 아까 그랬잖아요. 영혼은 태양을 쏘이면 사라진다고.”
 
  “아, 그건 거짓말이에요. 정말 믿은 거예요? 순진하셔라.”
  “거짓말? 아니, 세상에. 그런 거짓말을...”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요. 아저씰 빨리 데려가야 나도 그만큼 쉴 수가 있으니까요. 밤새도록 아저씨 같은 영혼 데리러 다니느라고 녹초가 되었다고요. 아저씨가 하도 가지 않으려 하기에 살짝 거짓말했을 뿐이에요. 화나진 않았겠죠?”
 
  “맙소사. 아가씨를 따라오지 않았으면 난 육체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거야. 그렇죠?”
 
  “바보 같은 아저씨네. 육체에서 영혼이 나오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건 사실이에요. 내가 거짓말 한 건 햇빛에 닿으면 영혼이 사라진다는 것뿐이라고요. 낮에도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영혼들은 햇빛에 모두 사라지게요. 머리 나쁜 아저씨가 속은 거예요. 호호호.”
 
  “저승사자가 거짓말이라니. 세상에.”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아요. 저는 밤에만 영혼을 나르고 낮에는 쉬는데, 아저씨 때문에 이렇게 아침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잖아요. 나도 아저씨 때문에 손해가 많다고요.”
 
  “죽은 것보다 더한 손해가 있을 라고.”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간이 있었다는 걸 알았으면 좀더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미스 정의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고 저승으로 갈 수도 있었잖은가 말이다. 문 선배나 미스 한이 한 말을 확인 해 볼 수 있는 찬스였는데.
 
  “다 온 것 같네요.”
  쥬리는 영호를 이끌고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쥬리는 익숙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곳에 저승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는 건가.’
  “여기예요. 여기로 들어가면 곧바로 저승이에요.”
  쥬리가 손가락질하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냥 안개 같은 구름뿐이었다. 저승의 입구는 저승사자에게만 보이는 것인가?
 
  “자 빨리 들어가요.”
  “아니, 잠깐만.”
  “왜요?”
  “이곳으로 들어가면 저승이라고요? 그럼 이곳으로 들어간 다음에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긴요. 염라 아저씨가 알아서 판결한 다음에 지옥이나 천당으로 보내지겠죠.”
 
  “그리곤요?”
  “그 다음은 저도 몰라요. 나야 하급 저승사자니 내 일이 아닌 것은 알 수도 없거니와 알고 싶지도 않아요.”
 
  “다시 내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정말 없어요?”
 
  “여기까지 잘 오고 왜 그래요. 아까도 말했지만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거짓말.”
  영호는 문 선배가 보았다는 영화가 생각났다. 그리고 죽었다가 되살아났다는 해외토픽기사도 떠올랐다. 물론 쥬리는 영호의 그런 생각들을 모두 알아차리고 있었다.
 
  “물론 그런 경우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건 아주 희박해요. 일억 분에 일의 확률도 안 된다고요.”
 
  “하지만 그 정도 확률이라도 있으니...”
  “계속 이곳에 남아 있겠다는 말인가요?”
  영호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아저씰 겁주기는 싫지만 이 이야길 해줘야겠네요. 이승에 계속 남아있고 싶다면 아저씨 원하는 데로 해 줄 수 있어요. 저야 약간의 징계만 받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이승에 있는 다고 해서 반드시 육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이승에는 영혼을 잡아가는 자들도 있어요. 그 자들에게 잡히면...”
 
  쥬리는 손으로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다. 영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 말 역시 아가씨가 꾸민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설령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차피 죽은목숨인데 다시 죽을 일이 있겠어요?”
 
  “정말 구제불능인 아저씨네. 그럼 내가 잠깐 보여드릴게요.”
  그 말을 하고 나서 쥬리는 영호를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그의 가슴에 대었다. 쥬리의 손바닥이 잠깐 붉어졌다 싶은 순간, 알 수 없는 쇼크가 영호를 덮쳤다. 영호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이제 아셨죠? 영혼도 나름대로 고통을 느껴요. 그 자들에게 잡히면 그런 고통을 계속 느끼게 되죠. 그리고 영혼은 죽지 않는 대신에 사라질 수는 있어요. 이승에서 말하는 죽음과 같은 거죠. 다시 말해서 이승에서의 죽음은 육체의 소멸이고, 저승에서의 죽음은 영혼의 소멸이란 뜻이에요. 아시겠어요?”
 
  영호는 심한 갈등을 느끼기 시작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그들의 힘은 저승사자들 보다 못해요. 그래서 저승사자가 영혼을 데리고 있을 때는 접근을 못하죠. 하지만 간혹 저승사자 몰래 달아난 영혼들은 그들의 밥이 되고 말아요.”
 
  “저승에 간다고 해도 이 보다 좋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그건 그래요. 아저씬 정말 다루기 힘드네요. 좋아요, 그럼. 나도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는 영혼을 억지로 저승으로 데려갈 마음은 없으니 아저씨 맘대로 해요. 나 혼자서 저승으로 들어갈 테니 아저씬 남고 싶으면 이곳에 있어요.”
 
  쥬리의 표정은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영호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뜩 미스 정의 이야기를 해주던 미스 한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여자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왜 죽은 거지. 난 잘못한 일도 없는데. 왜 죽은 거야. 난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은데. 이것이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같이 가요, 아저씨. 그것이 아저씨에게 좋아요. 후회는 한번으로 족해요.”
 
  부드럽게 말하며 손을 내미는 쥬리의 모습이 왠지 슬프게 보였다.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연민마저 느끼게 되었다.
 
  영호는 쥬리의 손을 꼬옥 잡았다.
  “이제 저승으로 들어가요.”
  그 말과 동시에 쥬리와 영호는 저승의 입구로 몸을 들이밀었다.
 
  영호는 눈앞이 갑자기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저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이 확실하게 죽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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