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9 또 하나의 슬픈 영혼

> 자작소설 > 영혼

Act.9 또 하나의 슬픈 영혼

  Act.9 또 하나의 슬픈 영혼
 
  “누나, 무슨 고민거리 있어?”
  쥬리는 말을 걸어온 용희를 힘없이 바라본다.
  “기운이 없는 거 같애. 피곤해서 그래?”
  “아니, 그냥.”
  “말해봐. 내가 누나 고민 들어줄게.”
  용희는 친절하게 말하며 쥬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저승사자들의 휴식공간’이라 불리는 이 공원은 이승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꽃들과 나무들로 장식이 되어 있어 이승에서의 향취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싶어하는 저승사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쥬리는 자주 이곳 벤치에 앉아 꽃들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저승에서는 이곳이 가장 간섭이 없고, 이승을 그리워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무슨 고민이야, 누나? 또, 친구 생각나서 그래?”
  용희는 저승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친구이자 동생이었다. 용희 역시 그녀처럼 슬픈 사연을 가지고 저승으로 오게 된 슬픈 영혼이었고, 그 때문에 더욱 동질감을 느껴 가까운 사이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쥬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친구의 애인과 함께 죽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었고, 용희 역시 가난한 부모님의 약값 때문에 죽게 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쥬리는 조용하게 용희가 죽게 된 이야기를 들어주었었다.
  애초부터 가난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용희는 가난이라는 것이 몸에 배어있었다. 학교를 다닐 때에도, 친구들이랑 어울릴 때에도 그는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늘 생각하였고, 그 때문에 많은 학우들이나 친구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부모님을 원망한 적은 없었다. 그는 모든 일을 덤덤하게 받아들였고, 나이가 들면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을 호강시켜 주겠다는 다부진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런 그의 꿈을 그가 채 성년이 되기도 전에 이뤄야 한다고 결심을 하게 한 것은 아버지의 사고소식을 전해 듣고 나서다. 폐병으로 인해 거동조차 힘겨워 하는 어머니와 막노동으로 겨우 생활비를 보태는 아버지를 둔 용희에게 그 소식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도 같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버지의 생명은 무사했지만 허리가 부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막노동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면서부터 용희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생활로 뛰어들었다.
 
  무엇보다도 위안이 된 것은 그가 일하는 작은 공장의 사장으로부터 그의 성실성과 착한 심성을 인정받은 일이었다. 다정다감하게 공장 직원들을 대하는 사장은 용희에게 늘 잘 대해 주었고, 자신의 공장보다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까지 소개시켜 주었다.
 
  용희는 벅찰 정도의 목돈이 되는 적금을 부을 수 있게 되었고, 조만간 아버지와 어머니를 치료시킬 수 있다는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1년을 생활한 용희는 적금이 만료되는 날 은행을 찾아갔다. 매일 찾아와 저금을 하는 용희를 알아본 은행원 아가씨가 웃으며 돈을 건네주었다. 용희는 한없이 기뻤다. 이로써 아버지와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이 그에게 커다란 행복을 주었기 때문이다.
 
  용희는 돈을 가지고 은행을 나섰다. 낯선 젊은 남자가 용희의 손에 들려져 있는 돈가방을 낚아챈 것은 바로 그때였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소매치기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도와주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용희는 있는 힘을 다해 젊은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 돈가방은 부모님의 생명이라고 생각한 그는 아무 것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젊은 남자를 뒤쫓았고, 젊은 남자 역시 사력을 다해 도망쳤다.
 
  젊은 남자가 막다른 골목에 갇혀 버리자 용희는 가빠오는 숨을 헐떡이며 남자의 앞에 섰다.
 
  “돈 줘요. 그 돈은 내 돈이란 말이에요. 우리 부모님을 고칠 돈이라고요.”
 
  “빌어먹을 자식. 끈질기군.”
  용희는 남자에게 달려들었지만 남자가 휘두르는 주먹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다시 일어나 덤볐지만 역시 배와 가슴에 고통만을 더해줄 뿐이었다. 실력의 차이를 느낀 용희는 남자의 다리를 잡고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제발, 돈을 돌려주세요. 그 돈이 없으면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 가신단 말이에요. 제발 돌려주세요. 일부분이라도 돌려주세요. 제발.”
 
  용희의 애원하는 목소리는 점점 울음으로 변하고 말았다.
  젊은 남자는 자신의 다리를 꽉 잡은 용희를 떼어놓을 수 없음을 알고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날을 새워 그의 등에 사정없이 꽂아버렸다.
 
  용희는 등에 뜨거운 뭔가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고, 눈이 침침해져 옴을 알고는 정신을 차리려 애섰다. 하지만 감겨오는 눈을 도저히 뜰 수가 없었다.
 
  “그건 아버지와 어머니의...”
  용희는 그렇게 죽고 말았다.
  “부모님이 어떻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저승에 온 지 4개월이 지나도록 부모님 생각이 떠나지 않아요. 저한테 배당된 지역이 제가 살던 곳과는 너무나 멀어서 시간을 내어 갈 수도 없거든요. 누나 구역이 제가 살던 곳과 멀지 않으니까 누나가 대신 가서 봐 줄래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쥬리는 그렇게 해 주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용희가 살던 곳에서 그의 부모님을 지켜본 쥬리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러나오고 말았다.
 
  죽으면서까지 다리를 꽉 불들은 용희 덕분에 뒤늦게 쫓아온 경찰에 의해 소매치기는 잡히게 되었고, 그 돈은 용희의 부모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부모는 자신들의 무능력 때문에 아들이 죽었다고 한탄을 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쥬리가 용희에게 그 이야기를 해 주자 그 역시 눈물을 흘렸다.
  “바보같이. 당신의 아들은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그렇게 울기만 하시면 어떻게 하라고. 내가 저승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쥬리는 용희의 슬픔을 달래주었다. 그녀 역시 슬픈 사연으로 저승에 오게 되었으므로 용희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쥬리가 친구를 그리워하듯, 용희 역시 부모님을 그리워했다.
 
  용희는 평소 때에는 용케 자신의 슬픔을 감추었고, 지금도 유쾌하게 말을 걸고 있었다.
 
  “친구가 보고 싶은 거지? 그치, 누나?”
  “응. 그것도 그렇고...”
  “그럼 다른 고민거리도 있어?”
  쥬리는 영호를 떠올렸다.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누가?”
  “응? 아, 이런. 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걸 잊었구나.”
 
  “피식. 누나는 나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아직도 생각을 컨트롤 못하잖아. 그건 그렇고 그 영혼은 누구야? 누나 애인?”
 
  “애인은, 무슨. 그냥 며칠 전에 내가 데려왔던 영혼이야.”
  “그것 가지고 그렇게 풀이 죽어 있는 거야? 하긴, 나도 처음에는 산 사람의 영혼을 데려오는 일이 꺼림직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죽여서 데려오는 것은 아니잖아.”
 
  “그렇지. 하지만 왠지 그 영혼이 불쌍해.”
  “불쌍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겠어.”
  “그렇긴 하지만 그 영혼은 실수로 올라온 영혼이거든.”
  용희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누나가 잘못 데려온 거야?”
  “응.”
  “그런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해. 처벌을 받을 지도 모르는데.”
  “처벌은 이미 받았어.”
  “그래서 어제 누나가 보이지 않았구나. 고통스럽진 않았어?”
  “지금은 걱정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그럼 고민할 거 없잖아. 누나가 잘못 데려온 영혼이야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텐데, 뭐.”
 
  “그렇지가 못하니까 그렇지.”
  “아니, 왜?”
  “모르겠어. 너무 복잡하게 일이 엉클어졌나 봐.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 나 때문에 그 영혼이 해를 입지는 않을까 죄책감이 자꾸 들어.”
 
  “다시 되돌아가지 않으면 그 영혼은 어떻게 돼? 지옥에 가게 되나?”
 
  “소멸될지도 몰라, 어쩌면.”
  “영혼도 소멸될 수가 있는 거야?”
  “응. 나도 들은 이야기인데, 영혼도 소멸될 수 있데. 죽는 건 육체뿐만이 아닌가봐. 영혼 역시 죽을 수 있다는 거야. 죽는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는 자아의식 자체가 없어지는 거니까 죽는다고 해야겠지.”
 
  “그럼 그 영혼은 누나 때문에 소멸되는 거잖아.”
  “응.”
  “그럼 안되지. 누나의 실수 때문에 그 사람은 죽은 건데, 그 영혼마저 소멸된다면... 말도 안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용희는 단정짓듯 말했다.
  “누나의 실수로 인한 거니까 누나가 책임져야 돼. 그 영혼이 소멸된다면 누난 죄를 짓게 되는 거라고. 한 영혼을 죽이게 한 살인자가 되는 거란 말이야. 누나가 이승에서 했던 일은 어쩔 수 없는 경우라고 쳐도 이번 것은 절대 그렇지 않아. 순전히 누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난 누나가 살인자가 되는 건 싫어.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역시 넌 좋은 애야.”
  용희는 칭찬하는 말에 배시시 웃었다.
  쥬리는 용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시 살인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용희는 쥬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자 화제를 바꾸었다.
  “누나, 레벨에 대해서 알아?”
  쥬리는 용희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꺼낼까 망설이자 용희가 다시 말했다.
 
  “요즘 저승사자 형이나 누나들은 레벨에 대해서밖에 이야기 안 해. 누가 레벨 같다느니, 레벨이 아니라느니, 염라가 곧 암살될 지 모른다느니, 염라가 사라지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느니 하는 말밖에 안하니까 재미가 없어. 설마 누나 레벨은 아니겠지?”
 
  쥬리는 뜨끔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 누나가 레벨 같니?”
  “아니. 누나는 레벨이 아냐. 그리고 레벨이 되서도 안되고.”
  “아니, 왜?”
  “레벨이 외치고 다니는 소리 있지? 염라가 사라지면 영혼들은 다시 이승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한 말. 그 말 순전히 거짓말이야.”
 
  “네가 어떻게 알아?”
  “생각해 봐, 누나. 염라는 순전히 이승에서 올라온 영혼들을 천당과 지옥으로 분류하는 역할밖에 못한다고. 천당과 지옥에서 일정한 기간동안 지낸 영혼은 염라보다 더 높은 분들에게 가게 되어 있어. 그 분들이 영혼에게 합당한 육체를 배정하고 이승으로 다시 돌려보낸다고. 그러니 염라가 사라진다고 해봐야 천당과 지옥으로 분류되는 일만 없어질 뿐이지 다시 이승으로 내려갈 수는 없는 거라고. 안 그래?”
 
  쥬리는 아차 싶었다.
  용희 말은 사실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레벨들이 외치고 다니는 말은 순전히 거짓말이야. 저승사자들에게 묘한 기대감을 가지게 해서 염라에게 반감을 가지도록 만들려는 속셈으로 그런 소문을 퍼치는 거 같애. 내가 아는 저승사자 형도 레벨인가 봐.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서 레벨이 되지 않겠냐고 하잖아. 그래서 난 싫다고 말했지. 그러니까 누나도 절대 레벨이 되지 말란 말이야. 알았지?”
 
  “응, 알았어.”
  “나 이제 그만 가야겠다. 이승으로 내려가서 영혼을 데려와야 할 시간이야.”
 
  “응, 그래. 일 끝나고 다시 보자.”
  “쉬어, 누나.”
  용희는 손을 흔들며 공원에서 나갔다.
  용희가 사라지자 알 수 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쥬리는 용희의 말을 되새김질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와이가 했던 말들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보기도 했다.
 
  “염라가 죽으면 넌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친구에게 이야기를 할 수가 있어.”
 
  그 말이 거짓말이었다니 쥬리는 믿기 힘들었다. 와이는 언제나 그녀에게 친절했다.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슬픔을 함께 하여 주었다. 그런 모든 그의 행동이 거짓이었을까?
 
  쥬리는 머리가 복잡해 졌다. 누구의 말이 옮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워 다시 한번 와이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저승사자의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다가왔던 한 남자. 포근하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같이 슬퍼 해주었던 남자. 그리고 염라가 죽으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말로 설레임을 주었던 남자. 문영오 대신 문영호의 영혼을 데려오라고 지시했던 남자. 실수의 처벌을 받고 슬퍼하던 그녀를 따스하게 감싸주었던 남자. 그리고 지금은 불신감으로 멀어진 남자. 와이...
 
  와이가 했던 말들과 용희가 했던 말들. 쥬리는 용희의 말을 믿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 남자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 자신을 원망했다.
 
  ‘용희가 아니었다면 난 그의 꼭두각시가 될 뻔했어. 나란 여자는 너무 한심해.’
 
  쥬리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제 결심을 해야했다. 슬픔을 받아들이기 전에 한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앞섰다.
 
  “누나의 실수로 인한 거니까 누나가 책임져야 돼. 살인자 누나는 싫어.”
 
  용희 말이 떠올랐다.
  ‘그래. 내 실수는 내가 져야 돼. 나 역시 살인자가 되기는 싫어. 제발 아직까지 무사해야 할텐데.’
  쥬리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워나갔다.
 
 
 

이전글 다음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