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8 음모 속의 희생양

> 자작소설 > 영혼

Act.8 음모 속의 희생양

  Act 8. 음모 속의 희생양
 
  쥬리는 피곤한 기색으로 맞은편에 있는 영혼을 바라보았다. 바라보고는 있었지만 쥬리에게는 상대방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주위는 온통 암흑이었고, 상대방 역시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검은 옷으로 치장을 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가라앉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해 보이는 구나, 쥬리.”
  쥬리가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각오했던 일이라서...”
  “처벌은 견딜 만했니?”
  쥬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약한 너에게는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저승에서 당하는 처벌의 고통은 이승 때의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 이승에 있었을 때의 고통을 최대한 꺼내어 마음을 괴롭히는 일이니까. 너에게 벅찬 일을 시켜서 미안하구나.”
 
  “견딜 만했어요. 다만...”
  쥬리는 어느새 울먹이며 말하고 있었다.
  “다만, 제 친구가 내 앞에 나타나 말없이 쏘아 볼 때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어요. 미안하다고 몇 번이고 말했지만 친구는 쏘아보기만 할 뿐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내 자신이 너무 저주스러워요. 그녀에게 너무 못할 짓을 했다는 생각에 자꾸 눈물만...”
 
  결국 쥬리는 눈물을 쏟아 붓고 말았다.
  상대방은 측은한 듯 쥬리의 등을 달래듯 어루만져 주었다.
  “미안하구나. 그렇게 까지 친구를 생각하는 지 몰랐어. 그렇게 커다란 고통이었다면 너 대신 다른 저승사자에게 부탁할 것을 그랬구나.”
 
  상대방의 말에 위로가 된 듯 쥬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으며 말했다.
 
  “이제 끝날 일인 걸요. 괜찮아요. 그 처벌 때문에 내가 친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요. 이제는 괜찮아요. 마음이 가라앉았어요. 고마워요, 위로해 주셔서.”
 
  “너처럼 슬픈 가슴을 안고 있는 영혼이 얼마나 될까? 그들의 슬픔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픈 영혼들을 볼 때마다 나는 빨리 이 일을 끝내야겠다는 결심이 서. 그래서 그들을 다시금 이승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돌려보내고 싶어진단다.”
 
  “정말로 염라가 사라지면 이승으로 돌아 갈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지.”
  “하지만, 영혼은 이승 때의 죗값을 치러야만 다시 이승으로 내려 갈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염라 한 명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규칙이 바뀔 수가 있는 건가요?”
 
  “염라에게 무슨 말을 들은 모양이구나?”
  “대답해 주세요.”
  “그의 말을 믿어선 안돼. 그는 뛰어난 화술을 가지고 있는 자야. 오랜 세월동안 염라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그 뛰어난 화술로 윗분들에게 좋게 보여서이지. 게다가 그는 야심도 큰 자란다. 그 자는 이곳 저승의 최고 자리에 굴림 하면서도 그에 만족하지 않고 윗분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세력을 키우고 있어. 저승에서는 위험한 존재이지. 육체에서 벗어난 영혼들을 가두어 놓고 지옥의 형별을 주도록 만든 것도 염라이고, 애매하게 죽은 영혼들을 저승사자로 만든 것도 염라란다. 저승에서의 모든 규칙을 만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야. 윗분들 역시 염라의 이런 규칙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분도 계시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폐시키지 못한 것은 염라의 화술 때문이지. 염라가 사라진다면 그가 만든 규칙 역시 사라지게 되어 있어. 그렇게 되면 너는 저승사자라는 직위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친구의 곁으로 돌아가 지나간 일들을 사과할 수 있게 되는 거란다.”
 
  “죄송해요. 잠시나마 의심을 해서.”
  “괜찮아. 누구나 품을 수 있는 의심인 걸, 뭐. 그보다는 우리의 일을 서둘러 진행시켜야지. 네가 한 일은 아주 커다란 도움이 되었단다. 영혼을 잘못 데려오는 사건 때문에 염라는 한동안 우리 레벨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거야. 그만큼 우리 조직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지. 정말 장한 일을 했어.”
 
  “그 영혼은... 문영호 씨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원래는 윗분들에게 보고가 올라가게 되어 있어. 그렇게 되면 윗분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재판을 열게 되지. 문영호가 잘못 데려오게 된 영혼이라 판결되면 그는 원래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가게 되는 거야. 하지만 간신 같은 염라가 그 일을 윗분들에게 보고할 리가 없지. 자신에게 피해가 되는 일은 절대하지 않는 작자이니까. 아마도...”
 
  쥬리는 상대방이 말을 망설이자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알고 싶니?”
  “네.”
  “염라는 머리가 좋아. 이건 인정을 해야 해. 그는 아마도 원래 데려와야 할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올 거야. 그리고 그의 죗값에 따라 처벌을 하겠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컴퓨터 기록에 남을 텐데요.”
  “이승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승에서도 뒷거래라는 것이 있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저승도 이승과 비슷한 체계를 가지게 되었지. 이승이 먼저인지 저승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항상 공존하고 있단다. 염라는 그것을 이용해서 문영오의 영혼을 입수하게 될 거야. 이승에는 이승에서 떠도는 영혼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 있단다. 우리들은 그냥 엑스라고 부르는 그 자는 이승으로 비교하면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 격에 해당되지. 염라와는 천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 상부상조를 하고 있어. 하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은 관계야. 염라는 엑스에게 문영오의 영혼을 가져달라고 부탁할거야. 엑스가 문영오의 영혼을 빼온다면 컴퓨터 기록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지지. 염라는 그 정도로 영악한 자야.”
 
  “그렇군요. 그럼 문영호 씨는 다시 육체로 돌아가게 되나요?”
  상대방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염라에게는 영혼을 육체로 돌려보내는 권한이 없어. 그러니 다시 되돌아간다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지.”
 
  “그럼?”
  “염라에게 있어 문영호는 눈에 가시야. 게다가 엑스를 통해서 문영오의 영혼까지 얻게 되면 더욱 불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지. 염라의 입장에서는 문영호가 사라지는 것이 편하겠지.”
 
  쥬리가 놀라며 말했다.
  “그럼 문영호의 영혼을 소멸시킨다는 말인가요?”
  “그래.”
  “어쩜. 그런 일을...”
  “큰일을 위한 작은 희생으로 생각해.”
  “하지만, 그 영혼이 너무 불쌍해요. 결국 저 때문에 사라지게 되는 거잖아요.”
 
  “쥬리 때문이 아니야. 우리 때문이지. 그는 소멸되지만 우리는 염라를 제거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피곤해 보이는구나. 처벌 때문에 무척 고생을 했을 텐데. 이제 그만 가서 쉬도록 해. 네가 한 일은 많은 동료들이 장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쥬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데려왔던 순진한 문영호의 영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죄책감이 앞섰다. 그녀는 어떻게 하든 그를 구하고 싶었다.
 
  “그를 우리 조직으로 끌어드리면 어떨까요?”
  “문영호를 우리 레벨에?”
  “네. 어차피 사라질 영혼이라면 우리 조직으로 끌어들여도 별 탈이 없잖아요. 한 영혼이라도 더 늘어난다면 그만큼 힘이 세어질 테니까요.”
 
  “네 말도 일리는 있다만, 그렇게 되면 염라의 신경이 다시 우리들에게 쏘여지게 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끝장이 될텐데. 너무 위험한 일이야. 하지만 일단 고려는 해 보마. 넌 역시 마음이 곱구나.”
 
  “꼭, 그를 도와줘요.”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의 대화는 끝이 났다.
  방을 나오면서 쥬리는 문영호 때문에 다시 괴로워졌다.
  염라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실수인 척하면서 엉뚱한 영혼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문영호가 소멸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쥬리는 왠지 죄를 짖는 기분이 들었다.
 
  --------------------
 
  영호는 초조함이 극도로 달했다.
  거의 24시간동안 그는 독방과도 같은 방에서 혼자 보냈다. 그 사이에 염라의 부름을 받기는 했으나 고작 5분만에 면담은 끝나고 말았다.
 
  “저는 언제쯤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까?”
  “미안하게 되었구먼.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게 되었군요. 지금 저승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거든. 나로서는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인데, 그건 바로 나에게 불만을 품은 영혼들 때문이지. 하지만 금방 해결 될 거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다른 일은 제쳐 두고라도 자네를 이승에 되돌려 보내는 일은 적극적으로 이행할 테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죠?”
  “길으면 하루나 이틀 정도. 될 수 있는 한 빨리 돌려보내도록 노력할 테니 그렇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돼요.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기 전에 저승의 시간을 한껏 느껴보도록 해요. 이승으로 되돌아가서 친구들에게 저승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재미있지 않소? 친구들이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벌써 면담이 끝난지 하루정도 지난 듯한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전화기를 들어도 안내원은 기다려보라는 말 뿐 영호를 기쁘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저승으로 와서 얼마쯤 시간이 흘렀는지 계산해 보았다. 이틀 정도. 이틀이면 시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까? 시체가 썩는데 며칠이 걸리지?
  영호는 가슴이 점점 답답해 옴을 느꼈다.
 
  --------------------
 
  염라는 겟슈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어서 오게. 앉게나.”
  “얼굴에 심기가 가득합니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레벨에 대한 것도 신경 쓰여 죽을 지경인데, 영혼을 잘못 데려오는 사건까지 겹쳤으니... 그리고 이제는 엑스에 대해서도 신경이 쓰이는 군.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당할 뻔한 일을 듣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네. 그들이 벌써 그 정도까지 세력을 키웠을 줄은 예상치 못했거든.”
 
  “사실 저도 꽤나 당황했습니다. 잘못했으면 저도 당할 뻔했으니까요.”
 
  “우리가 너무 키워 준 것 같아. 애초 자네 의견대로 그들이 새싹일 때 뿌리를 뽑았어야 하는 후회도 든다네.”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들 덕에 윗분들의 신임을 얻은 건 사실이잖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위험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어. 더군다나 이런 어지러운 시기에는 더욱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수밖에 없잖나? 엑스와 레벨이 결탁할 수 있는 위험소지를 배제할 수는 없으니까.”
 
  “아직까지 그렇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공격 형태를 보니 저승사자들이 영혼에게 약간의 충격을 가하는 정도의 공격이었습니다. 아마도 엑스의 편이 된 저승사자들에게 공격기술을 배운 듯합니다. 레벨과 결탁이 되어 있다면 그들의 무기 역시 위협적이었을 텐데 제가 겪어 본 결과로는 아직까지 위험수위는 아닙니다. 하지만 레벨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어쩌면 조만간 그렇게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가 되겠지?”
  “네.”
  “아무래도 엑스는 이쯤에서 제거해 두는 것이 좋겠어. 자네 의견은 어떤가?”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한 인물이 있나?”
  “엑스의 기록을 살펴보니 이승에서 앙숙이었던 자들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에 아직까지 환생하지 않고 저승에 있는 영혼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쯤 지옥에서의 형벌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겁니다. 그를 고용하면 될 듯 싶습니다.”
 
  “형벌이 거의 끝나 가는 자가 쉽게 우리를 도와줄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 그 일은 자네가 알아서 해 주게. 그럼 엑스가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오는 즉시 해결하는 게 좋겠군. 언제가나?”
 
  “한 시간 뒤에 내려갑니다.”
  “이번에는 당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게. 자네가 당하는 것은 내가 원치 않으니까.”
 
  “어제 일은 제가 너무 방심을 해서 당한 겁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언제나 자네는 믿음직하군. 그리고, 레벨에 대해서 들어온 정보가 있다고 했던가?”
 
  “네. 그렇게 중요한 정보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레벨의 우두머리는 와이라고 불리는 자랍니다. 아직 그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궁 안에 있는 무리들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주로 갓 저승사자가 된 영혼들에게 접근을 해서 ‘염라를 죽이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말로 현혹시켜 레벨 조직에 들어오게끔 하는 듯합니다. 우리측에서 파견한 저승사자에게도 접근을 했습니다. 그들에게 알아낸 정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와이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더군요.”
 
  염라는 담배를 한대 물었다. 그는 고뇌에 찬 표정이었다.
  “아래쪽에선 엑스. 위쪽에서는 와이. 엑스와 와이. 꽤나 죽이 맞는 호칭이로군. 위험성이 있는 저승사자들에게는 미행을 붙였겠지?”
 
  “물론입니다. 조만간 레벨 조직에 대해서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올 듯 싶습니다.”
 
  “그래야지. 이거 불안해서 이제는 담배 필 맛도 안 나는군. 와이가 갓 저승사자가 된 영혼들을 현혹시킨단 말이지. 그렇다면 쥬리라는 아가씨도 그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겠군.”
 
  겟슈는 염라의 말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 문영호의 영혼을 쥬리가 일부러 데려왔다는 말씀입니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겠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무척이나 순진해 보이던데. 와이 정도라면 쉽게 같은 편으로 만들었을 테고 신참이라는 점을 이용해서 실수로 영혼을 데려오는 일을 시킬 수도 있겠지. 쥬리의 기록을 보니 이승에 하루빨리 가기 위해서는 그 보다 더한 일도 할 것 같던데.”
 
  “감시자를 붙여놓겠습니다.”
  “우선 문영오의 영혼부터 수거해 오게. 그 일부터 마무리 짓고 엑스의 일 또한 마무리지어 나가다보면 일이 쉽게 풀리겠지. 요즘은 잠도 못 잔다네.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레벨에 문영호에 엑스까지. 정말 미칠 정도라네. 서둘러 일을 해결하지 못해 자칫 잘못해서 윗분들의 귀에라도 들어가게 되면 무척 난감해 질텐데. 그런 일은 생각도 하기 싫군. 그 동안 쌓아올린 일들이 순식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될 테니 말이야.”
 
  “문영호는 어찌할까요?”
  “당연히 제거해야지. 문영오의 영혼을 수거해오는 즉시 없애 버리게. 엑스가 문영오의 영혼을 데려오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서 그때까지는 그냥 두어야겠지. 엑스가 문영오의 영혼을 미끼로 또 다른 흥정을 요구하더라고 웬만하면 들어주게. 우리 쪽에서 약간 손해를 입는다 해도 그 일만은 빨리 해결하고 싶으니까.”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 보게.”
  “네.”
 

이전글 다음글 목록